brunch

5월이 되면 묘지를 찾아오는 대학생들이 있었다

by 파르티잔


5월이 되면 묘지를 찾아오는 대학생들이 있었다. 초등학생 눈에는 이상하게 보였다. 그들은 묘비 앞에서 항상 노래를 불렀다. 묘비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아마도 그는 묘비 근처의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던 집에 살았던 것 같다. 그 집은 오랫동안 비어 있었다. 동네에는 외국으로 떠났다는 말도 있었다. 그 집에 몇 번 들어가 본 적이 있는데 집 안에는 모든 살림살이가 다 있었다. 지금 그 집터는 밭이 되었다.


506278003_23873787298907628_5232942929987788858_n.jpg?stp=cp6_dst-jpg_tt6&_nc_cat=104&ccb=1-7&_nc_sid=127cfc&_nc_ohc=fA80tU-Iw7EQ7kNvwHJVX-l&_nc_oc=AdmDnjyweMctZ1JJsmP0kQbT2koAPNxswamKU1lABowS7s4LTSC1QC3Ch_Oj_VxDJQk&_nc_zt=23&_nc_ht=scontent-ssn1-1.xx&_nc_gid=U5TlghwXUQDtOpxSbW2rTQ&oh=00_AfOiRQETfMMOe2wZqYXx9CVn_p7nR6z_tDHYBZqGxNcAHg&oe=68514E6F 이세종 열사의 묘지가 있던 동네 근처 김제시 연정동


그리고 훗날 그가 이세종 열사라는 것을 알았다. 전북대학교에 이세종 광장이 있다. 거기서 열린 집회에 참가한 적이 있다. 아마도 1996년 5월에 전북대학교에서 열린 한총련 출범식 때문이었을 것 같다. 나는 그때 이미 대학교를 졸업했었다. 아마 후배들이 참가한다고 해서 잠시 들렀던 것 같다. 그리고 7월에 나는 입대했다.


오늘 페북에 공연 소식을 올려서..


=============== 아래는 나무위키 자료다====


506416774_23873698938916464_317046089515218944_n.jpg?_nc_cat=104&ccb=1-7&_nc_sid=127cfc&_nc_ohc=yuuTKcD8XbIQ7kNvwHyTNLi&_nc_oc=Adl6EfFt3nGw8YR2dCubaQAPKT5iKWf80I7KNYX8pWQO82p7iFj-IExkmOL-UiPOtig&_nc_zt=23&_nc_ht=scontent-ssn1-1.xx&_nc_gid=ODsj4b4bsTvuqYtl1JabpA&oh=00_AfNFdYOv6fqKaBa2dnndhRIsMNY32kPFkKEQQaKjcYExwQ&oe=68514BF4


1959년 7월 16일 전라북도 김제시 연정동에서 태어났으며 김제중앙초등학교, 전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9년 전북대학교 농학과에 입학하였다.


이세종은 1980년 당시 전라도의 대학연합체인 '호남대학총연합회'의 연락책임자였다. 그는 5월 17일 밤 전북대 제1학생회관에서 농성을 하고 있었는데 5.17 내란으로 난입한 계엄군이 그를 쫓았다.


그는 회관 옥상까지 도망갔으나 18일 새벽 1시 두개골 골절과 간장파열로 사망한 채로 땅바닥에 발견되었다. 사인은 단순 추락사로 발표되었으나 주검을 맡았던 당시 대학교수는 추락 전의 집단폭행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참고로 이 때문에 그를 '5.18 최초 사망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1985년 전북대학교 학생회관 옆에 이세종을 추모하는 비가 세워진 이세종광장이 설립되었다.


이세종은 5.18 관련자로 인정받아 망월동에 묻혔다가 1997년 5월 국립 5.18 민주 묘지로 이장되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농업4법과 한국농업 문제 그리고 노동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