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은 결코 극복할 수 없기에

하고픈 일과 겪어야만 하는 일

by 행주

그래 밥벌이를 하고 싶었다. 부모님 용돈도 드리고 사랑하는 조카들 뭐라도 하나 더 사주고 싶고 마흔 넘어 장가도 못간 놈이 돈 없어 손벌리는 꼴은 너무 싫었다. 십몇년전에 딴 기계 자격증과 경력 몇 년으로 기관을 오가며 근근히 일하며 먹고 살던 나에게 이제 원서도 내기 어려운 상황이 닥쳤다


누군가는 그냥 거기에서 밥먹고 살면되지 굳이 또 옮기려하나 할지 모르겠지만 내 꼴통같은 고향 대구가 뭐라고 징글징글한 도시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가득 담겨져 있기에 계명 네거리에 우리 먹던 그 소고기국밥이 그립다면, 그 시간이 그립다면 이해가 될려나. 하여튼 원서조차 낼수 없는 마흔 넘은 기능사 인생을 극복하기 위해 모자란 능력을 여름에 가득 태웠다.


주당비 교대근무에서 주간과 비번 시간을 타지의 학원에 소모하며 되지도 않는 용접을 콧구멍이 새까매질 정도로 하고 또 했다. 자질이 없다는 것. 절망 속에서도 해야하는 의무. 나는 확신되지 않는 미래에 의무라는 책임을 억지로 끼워넣었다.


회사에 오면 민호 형이 내가 부담스럽지 않게 자격증 별거 아니니 너무 신경쓰지말라했고

일상에선 단연코 현진이 형이 힘들어하는 나의 말을 안에 들어 있는 속말까지 깨끗이 씻어 소중히 내 그릇에 다시 담아줬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그런 것일까. 그래 형들은 형이었다.


한여름은 이름값하듯 폭염의 연속이었고 용접에선 꼭 하나씩 문제가 났고 용접이 잘되면 평행도가 문제였다. 이게 천직이 아닌 건 인정하겠지만 평생 기계로 경력을 쌓아왔는데 제발 기회를. 나의 자신감은 떨군 고개만큼 이었지만 시험당일 기도해준 사랑하는 사람들의 염원덕분이었을까. 누군가가 옆에서 잡아주는듯한 따뜻함을 느꼈다. 특히 용접을 할 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분. 감사함이었고 기도 같았다. 평상시 내 실력보다 더 나은 운이 좋았다는 표현도 괜찮았다.


시험의 끝나고 고마움이 며칠을 안갔다.

갑자기 고열과 복통이 찾아왔다. 개인병원의 약은 듣지 않았다. 오히려 병원을 찾다가 어지럼증으로 접촉사고까지 나고 회사에서 부모님 차에 실려 대구종합병원으로 왔다. 한번도 이렇게 입원한적 없었다. 두려움이 밀려왔다. 의지로 정신이 차려지지않고 소변이 나오지 않았다. 일단 방광이 터지기 직전이라 도뇨관을 삽입했고 소변이 2L이상 나왔고 단순한 이석증으로 알았던 어지럼증은 뇌에 염증이 생겼다는 진단이었다. 부모님과 누나 그리고 현진이 형에게 미안했다.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슬픔을 주는 것이 나에게도 상처니까. 회사에서 교대 근무를 하는 입장에서 나 때문에 고생하게된 동료들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항생제와 진통제의 계속되는 투약과 조절이 안되는 배뇨와 어지럼증. 무언가를 해냈다는 것은 거짓말 같았고

나는 더 겸손히 작은 삶을 이겨내야하며

그렇게 살고 싶다고 기도를 드렸다

최소 일주일.

일주일후 소변줄을 빼서 정상배뇨가 되어야 퇴원.

안되면. 아니 될것이다. 난 다시 일어날거니까.

지금 내가 처음 겪는 갈림 길에서 그냥 겪어야만 하는 삶을 겪고 있다. 결코 극복하려하지 않겠다. 다만 지극히 겪어내고 오롯이 내 삶의 회복을 겸손히 받아들이고 나에게 보내온 그 따뜻한 손을 기력을 차린 내 따뜻한 손으로 맞잡아 줄 것이다.

한없이 행복한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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