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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Sep 10. 2024

나를 걱정해 주세요.

애정결핍

 나는 무남독녀 외동딸이다. 외가에서는 둘도 없는 '강아지', 세상에서 제일 예쁜 '강아지'로 둥기둥기 귀한 사랑을 받곤 했다. 남부러울 것 없이 큰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외가 방문은 일 년에 서너 번뿐이지만 외가에서 만큼은 마음껏 떼를 쓸 수 있는 공주이기도 했다. 




 국민학교 2~3학년 때의 일이다. 부부싸움이 아주 잦았던 부모님이 다툴 때면 집안살림이 부서지고 육체적 폭력도 오가곤 했다. 아주 어릴 때의 기억부터 성인이 되어서 까지 계속 됐던 두 분의 다툼은 어린 시절엔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 너무도 큰 공포였다. 두 분이 또 다투었던 날, 밤 새 울다가 지쳐서 잠이 들었는데 아버지가 나를 깨웠다.

 "네 엄마가 해주는 밥 먹기 싫으니까 나가서 너구리 라면 하나 사와라."

슈퍼로 달려가 너구리를 사다 드렸는데 아버지는 라면을 사 오랬더니 우동을 사 왔다며 라면을 집어던졌다. 나는 잔뜩 겁에 질려 소리도 내지 못하고 눈물만 뚝뚝 흘렸다. 아버지는 돈을 주며 다시 사 오라고 했다. 다시 슈퍼에 갔지만 너구리 라면은 너구리 우동 밖에 없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너무 무서웠던 나는 심부름을 위해 받은 돈을 들고 가출을 했다. 


 우리 집과 외가댁은 같은 서울에 있었지만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지하철을 한번 갈아탄 뒤 내려서 또 버스를 타야 갈 수 있는 먼 길이었다. 그 당시 지하철도 2호선까지 밖에 없었으니 서울 안에서도 복잡하게 길을 찾아가야만 했다. 너무 어린 나이.. 집으로 돌아갈 용기가 없던 나는 집을 떠나 외가댁으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지하철 역까지 갔고 역에서 지하철을 탔다. 한참을 달려가고 있는데 옆자리에 앉은 아주머니가 말을 걸었다. 

"얘,  혼자서 어디 가는 거야?"

"아.. 할머니댁에 가요."

"그런데 혼자서 가는 거니? 부모님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순간적으로 거짓말이 튀어나왔다.

"아~ 다 같이 할머니댁에 가기로 했는데 제가 자고 있는 사이에 부모님께서 먼저 할머니댁에 가셨어요. 그래서 저도 다 자고 일어나서 이제 가는 거예요."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 거짓말이었다. 얼굴엔 잔뜩 눈물자국에 잠옷 차림으로 전철을 탄 아이의 거짓말을 눈치채셨는지 그 아주머니는 날 도와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할머니댁은 어디인데? 가는 길은 잘 알고 있니? 어디서 뭘 타야 하는지 다 알아?"

자세한 사정은 더 묻지 않으셨고 이것저것 걱정 어린 질문을 계속하셨던 기억이 난다. 아주머니는 우연인 것처럼 내가 갈아타야 하는 역에서 같이 전철을 갈아타고 같이 버스정류장으로 이동까지 해 주셨다. 그리고 할머니댁이 있는 동네로 가는 버스가 몇 번인지, 어느 정류장에서 타고 내려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나 확인하신 뒤 떠나셨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생각해도 참 따뜻하고 좋은 어른을 만났던 것 같다.


 나는 한 번 간 길은 잊어버리지 않는 아주 길눈이 밝은 아이였던 데다 그분의 도움까지 더해 무사히 할머니댁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할머니는 갑자기 찾아온 날 보고 많이 놀라셨다. 어떻게 왔냐는 할머니의 물음에 또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늘어놨다. 엄마 아빠가 싸워서 혼자 나온 건 절대 아니고 그냥 할머니가 보고 싶어서 왔다고.. 어른들은 어린아이의 미숙한 거짓말을 늘 빠르게 눈치챈다. 할머니는 내가 너무 불쌍하다며 나를 안고 엉엉 우셨고 나도 울었다. 그리고 할머니에게 부탁드렸다. 내가 여기에 온 거 엄마 아빠한테 말하지 말아 달라고.. 혼날 것도 걱정되지만 그때의 내 마음엔 내가 없어져도 우리 부모님은 날 걱정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외할머니는 내가 외가에 혼자 찾아오게 만들었다며 집에 전화해 노발대발 화를 내고 부모님을 혼내셨고 난 마침 방학이었던 터라 일주일 정도 외가에서 지내다 날 데리러 온 엄마와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나의 첫 가출이었다. 

 



 국민학교 4학년, 5학년 때의 일이다. 당시 성인이었던 친구의 오빠가 여자친구와 롯데월드 데이트를 가는데 내 친구를 데려간다고 했다. 그런데 놀이기구를 타기에 짝이 맞지 않으니 친구 한 명 데려와서 같이 가자고 했다고 날더러 같이 가자고 했다. 오빠가 티켓도 다 끊어줄 테니 돈 걱정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정말 가고 싶었다. 그런데 부모님께 말하면 혼날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말없이 사라지면 우리 엄마 아빠도 날 좀 걱정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부모님께 아무 말하지 않고 친구의 오빠에겐 부모님 허락을 받았다고 거짓말을 하고 친구를 따라나섰다.


 친구와 같이 간 롯데월드는 너무 재미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먹어 본 구슬아이스크림의 기억, 너무 친절하고 상냥했던 친구의 오빠와 그 여자친구까지 너무 즐거운 시간이었다. 폐장을 하는 시간까지 신나게 놀고 집으로 돌아왔다. 밤 12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 나는 부모님이 얼마나 나를 걱정하고 있을까 조금은 기대(?)하며 집으로 들어갔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확 느껴지는 술 냄새.. 컴컴한 집안, 코 고는 소리.. 안방으로 가보니 술 상도 치우지 않은 채 두 분은 자고 계셨다. 나는 아빠가 깰까 봐 겁이 나면서도 엄마를 살살 흔들어 깨웠다.

"엄마, 나 왔어. 나 걱정했어?"

"응? 너 어디 갔었어? 방에서 자고 있는 거 아니었어?"

아.. 부모님은 내가 없어져도 모를 분들이 시구나. 내가 밤 12시가 되도록 집에 오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것도 모른 채 술에 취해 자고 있을 수가 있지. 

"엄마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나는 또 울었고 엄마는 술에 취해 있었기 때문인지 곧 다시 잠에 들었다.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되고 나니 내가 원하는 만큼 받지 못했을 뿐이지 두 분 모두 날 사랑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라는 걸  분명히 알게 되었다. 상처받았던 순간이기 때문에 더욱 머릿속에, 마음속에 깊게 새겨진 것일 뿐이지 그렇다고 부모님이 365일 내게 무관심했던 것도 아니었다. 부모님께도 힘든 시기와 상황이 있었던 것이고 마음의 여유가 없으니 어린아이의 속까지 살뜰히 챙기기야 어려웠겠지 하는 억지 이해를 해보기도 한다. 


 나는 결핍이 있어야 성장할 수 있다는 말을 좋아한다. 나는 평범하지 않은 아픔을 꽤나 겪었다. 심부름할 돈을 들고 무모하게 길을 나섰던 나는 혼자서도 길을 떠날 수 있는 용기를 얻었고, 부모님의 사랑을 테스트하려던 나는 나의 자녀가 내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사랑을 느끼게 해줘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의 아픔과 상처는 나를 한 뼘 더 성장하게 하는 영양분이었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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