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찜하고 정갈하며 아쉬운 나의 겨울밤
그러니까 이런 날은 너무나도. 여기가 아닌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데 그렇다고 어딜가고 싶냐고 물어보면 딱히 할 말도 없다. 사실 맘처럼 되지 않는 현실에 심술이 났을 뿐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들여서 짐을 싸고 길을 알아볼 생각은 추호도 없는 것이다.
왜 모든 건 미미하게 끝을 맺을까
서두의 그림이 끝까지 이어진다면 온 우주가 그 감각을 잊거나 잃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면 - 그 보다 중요한 건 아무것도 없다는 듯 공동의 목표가 유일하며 다른 이해관계나 모종의 섭리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면
하지만 지구가 그렇듯 세상의 중심은 내가 아니며 모든 것은 어떠한 중심도 없이 각자의 엉망을 고수하며 굴러간다 지켜낼 것도 바랄 것도 없이
그러니 정도와 상관없이 마무리 지어져야 하는 현실은 어찌보면 천만다행이다 알량한 책임이 더해지면 허무보다 부담감이 저녁과 새벽을 채우겠지 둘 중 어떤 게 더 나은지 지금의 나는 알 수 없지만 보이지도 않는 걸 읽어내려 애쓰는 것보다 힘빼고 몸을 맡기는 게 현명한 일일지도. 제일 못하는 일인데 다짐만 한다 바람빠진 풍선도 백개 천개를 모아 작은 방에 가두면 일사분란하고 성실한 애들로 보이겠지 시선 따위 중요하지 않다고 하지만 배부른 소리 나는 진짜 꿀벌이 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어떻게 부딪혀야 보통의 비행처럼 보일지 연구를 빼먹지 않는다 나의 빗나간 근면성실
얻은 것이 있는데 생각보다 써먹을 곳이 마땅치 않은 밤 아쉬움에 입맛을 쩝쩝 다시다 비싼 기계를 꺼내 지저분한 빈백에 누워 이상한 글이나 쓰는 자정 어제는 새벽 네시에 잠들었는데 지금의 난 저항도 없이 드러누워있다 뭐가 아쉬워서 잠들지 못하는지 어제의 나는 두시 쯤 벌떡 일어나 미친 사람처럼 방청소를 했던 것 같기도 필요 이상으로 네모지고 깔끔한 나의 방 사실 잡동사니가 아쉬운 게 널린 빨래가 아까운 게 쌓인 머그컵이 불안한 게 아니었는데 진정 원하는 게 뭔지도 모르고 헛발질만 하다 까무룩 잠드는 매캐한 겨울밤
* 지난 2월 개인 블로그에 적은 글을 편집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