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은 없음
최선을 다하자는 건 우리 가족 가훈인데 최대한 하자, 가 아닌 최선을 다하자, 란 점이 꽤나 마음에 든다. 사실 가훈이라고 해서 붓글씨로 쓴 액자가 문에 걸려있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초등학교 때 언니가 가훈 써오라는 숙제를 받았는데 그때 엄마에게 물어보니 음 엄 음 '최선을 다하자'야~ 라 대답했고 다음 해 나한테도 똑같이 말한거다. 고학년 부터는 가훈보단 웃기고 의미없는 급훈 정하기에 버닝했으니 그 뒤로 가훈을 확인할 일은 없었다. 나는 고등학교 3년 내내 같은 친구들과 한 반을 썼는데 2학년 때였나 3학년 때였나 그 때 급훈은 디지몬 어드벤터 오프닝 가사였다. 그래 그리 쉽지는 않겠지.. 나를 허락해준 세상이란.. 손쉽게 다가오는.. 편하고도 감미로운.. 어쩌구 저쩌구. 그게 빽빽하게 쓰여서 액자에 걸려있었나? 아니 사실 후보에서 탈락해서 정작 다른 구절이 올라갔나. 정확하게 떠오르지 않지만 실제 급훈이었든 뭐든 재밌으면 장땡이고 결국 남아있는 기억이 실제로 굳어진다는 건 웃긴 일이다. 우리 가족은 뿔뿔히 흩어져 살다가 잠깐 모여사는 일을 반복했는데 함께 있다가 무엇이든 대충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우스갯소리로 최선을 다하자! 고 외치곤 했다. 우리 집 가훈이잖아, 어쩔 수 없이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최선이 최대보다 좋은 이유는 효율적이고 융통성있기 때문이고 그만큼 어느 정도 웃음으로 때울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이었다. 엄마딸과 내가 독립한 이후로 나머지 가족은 짧게 모여살았는데 그렇게 세 명이 모인 것도 굉장히 간만이라 용인집은 우리 다섯 명의 아지트 역할을 했다. 1년도 안되어서 다시 흩어지긴 했지만 아지트는 그대로 남아있기에 그럭저럭 각자가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데 주기적인 충전소가 된달까. 이 글은 점심먹기 전 10분만에 썼는데 어디 두고 보자는 기획도 필요 이상의 에너지를 들인 것도 아니지만 나름 적절한 짬에 적정량의 문장을 적었다는 점에서 우리집 가훈에 부합하는 아주 뼈대있는 글이라 할 수 있겠다.
* 지난 2월 개인 블로그에 적은 글을 휘리릭 뿅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