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의 속도와 나의 속도 사이, 동상이몽의 시간
# 프롤로그 : 일과 육아, 육아와 일 사이의 시간들
벌써 세번째 글이다. 두번째 글을 쓰고 나서, 숨을 한 번 고르고 나니 새로운 글이 시작되는 느낌이다. 제목을 띄워놓고 나자 일과 육아 사이를 종종거리며 오가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원래는 퇴사시점인 2021년 10월을 기점으로 세번째 글을 정리하려고 했다. 그런데 햇수로 5년에 가까운 시간을 한 문단에 7~8줄씩 10개 정도의 문단으로 정리할 자신이 없었다. 짧지 않은 시간이고, 하려고 하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너무 많았다. 마음을 추스려야 하는 일도 있었고, 새삼 다행이다 싶은 일들도 있었다. 그래서 팀을 이동했던 2019년 12월 이전과 이후로 시간을 나누어서 정리하고자 한다.
# 나의 속도대로 걷자, 회사와 멀어지기 시작했다 : 2017년 11월~2018년 12월
약속한 시간대로 본래의 팀으로 복직했다. 내가 떠나있었던 약 1년 3개월의 시간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신논현역에 있었던 회사는 광화문으로 자리를 옮겼고, 팀장은 물론 팀원의 변화도 있었다. 나는 기존의 업무와 사회공헌, 브랜드 업무를 부분적으로 담당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회사의 일에 적응했다 싶을 때쯤, 나는 회사와 나의 사이가 생각보다 벌어져 있음을 알았다. 당시엔 회사가 나를 앞서서 달리고 있다고 시작했다. 분기별로 실적 공시를 하며 빠르게 달리는 회사를 나는 아기를 키우는 엄마의 걸음으로 간신히 쫓아가고 있구나. 나는 뒤쳐져서 걷고 있구나. 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나의 걸음으로 걷고 있을 뿐이었는데.
이렇게 느린 걸음으로 회사를 쫓아가도 되는 것일까. 나의 속도에 대한 의문은 팀장과의 관계에서 비롯됐다. 새로 영입된 팀장은 나이가 비교적 젊고, 빠르게 승진한 케이스였다. 팀장이 보기에 나는 빠른 스퍼트가 필요한 플레이어였다. 남들보다 늦은 스물 여덟살의 나이에 신입사원이 되어 대리가 되자마자 휴직한 내가 못미더워하는 것이 느껴졌다. 뒤쳐졌다고 말하면 기분 나빠할 수도 있으니까, 내가 그렇게 말하지는 않을께. 근데 그렇게 늦게 뛰어서 어떻게 할거야? 라는 뉘앙스의 면담이 레퍼토리처럼 맴돌았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팀장은 내 속도가 느려서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본인이 원하는 속도와 방향으로 뛰지 않아서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이 문제였을까. 내가 팀장의 업무 제안을 거절했기 때문이다. 당시 홍보팀은 복직 이전과 다르게 팀의 부피를 키워가고 있었다. 기존의 언론홍보외에도 팀 업무로 대관업무(정부 및 공공분야의 이해관계자를 관리하는 업무)가 추가되었다. 문제는 담당자가 없었다. 당시 나의 선임들은 맡은 업무가 있어 새로 업무를 맡을 수 없었다. 팀장은 사내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대관업무도 해보라는 다소 이색적인 제안을 했고, 나는 거절했다. 내가 거절한 이유는 거두절미하고, 땜빵이 되기 싫다는 사유였다. 팀장은 후임을 뽑을 건데, 그 전까지는 이 업무를 김 매니저가 담당하면서 역량을 키울 수 있고 등등의 이유를 제시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이전까지 회사에서 이 업무를 해온 선임이 한 명도 없는 상황에서 업무를 맡을 경우 그림이 뻔했다. 적임자가 올 때까지 좌충우돌하다, 적임자에게 일을 넘겨주고 그동안의 성과는 인정받을 수 있는지 불투명한. 팀장은 나의 판단을 피해의식이라고 말했지만, (비난이었을지도) 나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어쨌든 나는 대관업무는 맡지 않았다.
대관업무 거절 후에도 나는 속도와 방향 면에서 회사와 엇박자를 내는 상황이 종종 생겼다. 나름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는 팀장은 본인의 유능함 만큼 팀이 담당하는 모든 업무가 최고의 성과를 내기를 원했다. 맞는 일이다. 팀이 인정받고, 내가 인정받기 위해서는 최대한의 성과를 이끌어내는 것이 맞다.나 역시 가지고 있는 최소한의 자원으로 최대한의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구성원 소통행사에는 최대한 많은 사람을 참여시키고 그 의미를 확대하기 위해, 열심히 메일의 문구를 수정하고 필요한 이미지들을 편집하고 간추렸다. 웹진에도 회사가 지향하는 바를 적정한 톤의 메시지로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 결과가 나쁘지는 않았다. 다만 결과를 끌어내는 과정에서 나는 생각보다 많이 소진됐다. 부제에서 보듯 나는 엄마로 돌아왔다. 크고 작은 업무 사이에서 실랑이와 줄다리기를 하면서도 나는 엄마라는 나의 자리를 놓을수는 없었다. 할 수 있는 수준의 엄마 역할을 놓치지 않으면서, 최상의 업무 성과를 위해 노력하는 것. 두 가지를 양손에 들고 회사의 속도에 나를 편입시켜가면서, 나는 서서히 소진되어 가고 있었다.
# 내 안의 균열과 팀 밖으로의 이탈 : 2019년 1월~2019년 12월
2019년이 시작됐다. 다시 변화가 있었다. 팀에는 내가 거절했던 대관업무를 담당하는 과장님과 언론업무를 담당하는 신입사원이 새롭게 합류했다. 새로운 팀원들의 합류는 긍정적인 기운을 불러왔다. 잘 맞는 팀원들과 일하는 즐거움도 좋았지만, 새로운 사람들의 새로운 시각이 내 업무를 다른 시각으로 보게 했다. 늘 익숙한 사람들이 동일하게 던져왔던 평가에서 벗어나, 객관적으로 나의 일, 팀의 일을 볼 수 있었다. 내가 해온 일들이 객관화가 되자, 나는 문득 한 걸음 내 일에서 멀어지고 싶어졌다. 대기업 홍보팀 일과는 신문스크랩으로 시작된다. 사업부에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수십개의 신문을 구독하고 키워드를 검색해서 스크랩한 기사를 PDF 파일로 만들어 직책자 및 임원에게 메일로 제공한다. 이 업무를 위해 7시 반~8시 사이에 출근하는 당번을 돌아가면서 맡는다. 하루도 빠지면 안되는 일이기에, 돌아가며 당번 일정을 짜는 것도 큰 일이었다. 이를 테면 이렇게 매일 책임감을 가지고 했던 일을 한 발짝 물러나게 보게 되었다. 필요한 일이고 중요한 일이지만, 내가 생각보다 불필요하게 나를 쏟아내며 일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그런 불필요함으로는 일을 발전시키고 성장할 수 없음에도 내가 너무 애쓴 것은 아닌지. 작은 틈 사이로 '다른 생각'이 밀려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큰 균열이 일어났다. 당시 매월 제작 중이던 웹진을 중단하고 새로운 플랫폼을 운영하게 되었다. 오래된 그룹웨어를 대대적으로 개편하면서, 새로운 플랫폼이 생겼다. 그룹웨어 개편은 IT기획팀의 일이었지만, 플랫폼에서 소통할 수 있는 컨텐츠를 만드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 이를테면 홈페이지 같은 공간의 메인 화면에 들어갈 뉴스와 컨텐츠를 제작하는 일이었다. 웹진을 외주업체와 함께 운영하고 있었지만, 여러 업무와 병행하기에 늘 허덕이는 느낌이었다. 이번호를 발행하고 한숨 돌리면 마감까지 2주이고, 그때부터 허겁지겁 사업장의 뉴스를 취합하고 인터뷰할만한 대상을 찾아다녔다. 웹진은 그룹웨어 페이지의 구석에 있어, 링크를 클릭해야 접속이 되었다. 그런데 새로운 플랫폼에서는 메인화면을 장식해야 했다. 마음의 부담이 밀려왔다. 반드시 (그럴듯한) 외주인력의 손을 잘 빌려야 겠다고 생각했다. 업체 입찰을 위해 구매팀과 IT팀의 협조를 받아가며 RFP(Request for proposal : 제안요청서)를 작성하고 예산을 짰다. 제안설명회를 거쳐 업체선정을 앞두고 최종보고를 했다. 결론은 No. 팀장은 업체없이 진행할것을 요구했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결과물을 다시 한 번 요구했다.
펑. 마치 팽팽하게 커진 풍선이 터진 느낌이었다. 지금까지도 충분히 소진되어 왔는데, 이 과정에서 다시 한 번 나를 쥐어짜서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 자신은 없었다. 당시 함께 일을 꾸려오던 신입 후배에게도 면목이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크게 낙심했다. 회사는 어떻게든 굴러가기에, 업체 없이도 플랫폼의 메인화면은 (신입사원의 노력으로) 굴러갔다. 안에서 시작된 균열은 밖에서 온 충격으로 더욱 커졌다. 그리고 2019년을 마지막으로 나는 자의반 타의반 홍보팀을 나오게 되었다. 이 과정 역시 대관업무와 사내커뮤케이션을 함께 하라는 제안처럼 독특한 과정으로 진행됐다. 홍보팀을 나갈 의사가 없음에도, 홍보팀을 꼭 나가야 한다는 것이 실장으로 승진한 팀장의 뜻이었다. 나는 그렇게 팀을 이동했다. 자신이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암시하거나 예상하는 순간이 뜻하지 않게 찾아올때가 있다. 2019년은 나에게 그런 순간이었다. 나는 그렇게 내가 커리어를 꾸준히 이어갈 것이라고 생각한 홍보업무에서 빠져나왔다. 예상했던 궤도를 이탈했다는 황망함으로 2020년이 찾아왔다.
# 에필로그 :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이 글은 나를 향해 있다.
지난 일을 쓰면서, 왜 당시에 하지 못한 이야기를 지금 하는가 라는 의문이 불쑥 들었다. 후회되는 일이나, 민망한 실수를 한 후에 소위 말하는 '이불킥'을 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럴때마다 나는 이 말을 곱씹었다. 이 글은 '나를 위한 글쓰기' 다. 회사에 불만을 토로하기 위한, 상사에게 반박하기 위한 글이 아니다. 이 글의 방향은 온전히 나를 향해 곧게 뻗어있다. 글의 부분을 보았을 때는 구부러진 모양의 길처럼 보일지라도, 이 여정의 최종 목적지는 나를 향해 있다. 그렇다면,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맞다. 때로 깊이를 알 수 없는 우물을 들여다보듯 막막할 때마다 나는 최종 목적지를 생각했다. 저 깊은 곳에 어떤 이야기와 마음이 있을지 모를지라도, 이제는 두려워하지 않고 물을 길어올리기로 결심했다. 나를 위해, 나의 마음을 위해. 이렇게 세번째 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