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나는 그렇게 이쁜 여자애를 근래에 정말 처음 봤다.그 애는 얼굴만 예쁜 게 아니라 늘씬한 키와 몸매, 찰랑한 생머리, 거기에 젊음까지, 그야말로 퍼펙트한 아름다움이었다.
이제 겨우 스무 살 초반, 그 젊음만으로도 눈부시게 예쁜 나이에 외모까지 아름다우니 신은 너무 한 사람에게 몰빵을 하는구나 싶었다.그 애를 만난 건 벌써 5년 전이다.
우리는 규모가 작은 센터라서 상담사들이 주 1회 돌아가며 창구 안내업무를 담당했다.그 애는 내가 창구업무를 담당하는 날에 취업지원 프로그램 신청서를 제출하러 왔다.신청서를 접수할 때 몇 가지 요건 검토를 위한 정보조회 과정에서,그 애의 성이 세 번이나 바뀐 것이 좀 특이했다.며칠 후 그 애는 내 옆자리 동료 상담사 최쌤에게
배정되었다.
그 애가 최쌤과 첫 상담을 하러 온 날도, 그 애가 들어서자마자 공간이 다 화사해지는 것만 같았다.
저렇게까지 예쁘진 않아도 좋으니 나도 다시 20대로 돌아가면 좋겠다는 부질없는 생각을 하며 내 업무에 집중하는 사이, 그 애는 상담을 마치고 사라지고 없었다.
작은 소란은 그 직후에 벌어졌다.
당시 대체 계약직 상담사였던 킴이 최쌤에게 뭔가를 내밀며, 그 애가 민원인용 컴퓨터 데스크 위에 놓고 간 것 같다고 했다.
"이거 피임약 아니에요?"
당시 미혼이었던 킴은 최쌤에게 캡슐을 건네며 물었다.겉 상자는 없었지만 중년의 여성들은 그게 피임약이라는 걸 단박에 알 수 있었다.보통 3주 치의 작은 알약 21개가 한 캡슐에 들어있는데 1개를 복용하고 20개가 남아 있는 상태였다.
당시 민원인용 컴퓨터 사용자가 그 애뿐이었기 때문에 이 피임약이 그 애 것이라는 건 명확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애가 민망할까 봐 최쌤도 전화를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더 기얌할 노릇은 한 시간쯤 뒤에 벌어졌다.그 애의 남친이라는 20대 남자애가 그 피임약을 찾으러 온 것이다.너무도 당당하고 거침이 없어서 그게 더 우리를 당황하게 했다. 오호통재라.
남자와 여자의 사랑과 섹스, 그게 뭐 별건가. 당당하지 못할 이유는 하등 없다.다만 섹스라는 행위는 두 사람 간의 매우 사적인 행위인 만큼
그것을 드러내 놓는 것에 대해 우리는 기본적으로 쑥스럽고 민망한 감정들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에티켓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그게 꼰대 마인드라고 해도 별 수 없다.
하지만, 내가 진짜로 걱정하는 지점은 사실 그런 지엽적인 문제가 아니다.이제 겨우 한 알 까먹은 피임약이 충분히 아까울 수도 있고, 지가 좋아서 대신 찾으러 왔으니 그것도 문제 될 건 없다.
다만, 나는 이제 겨우 스무 살 초반의 아름다운 그 애가 어디까지의 명확성을 가지고 그토록 자유분방한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것일까가 궁금했다.
나는 문득 그 애의 성이 세 번이나 바뀌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그건 그 애의 엄마 역시 매우 자유분방한 삶과 사고방식의 소유자였음을 뜻한다.어쩌면 그 애는 남자를 만나고 섹스를 하는 것이하루 세끼 밥 먹는 행위만큼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으로 각인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고서야 남친을 보내 피임약을 찾아오게 하는 그 해맑은 당당함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대개의 경우라면 그까짓 피임약 몇천 원 주고 다시 사고 말지, 했을 것이다.아니, 애초에 피임약을 불특정 다수가 사용하는 공공기관의 책상 위에 꺼내놓을일 자체가 없을 것이다.
얼마 전 나는 불현듯 그 애가 생각나서 최쌤에게 물었다.
"그 애 말이야, 취업을 했어?"
"글쎄에~ 취업을 했던가? 그냥 취업 못하고 기간 만료돼서 끝난 것 같은데..."
최쌤은 말끝을 흐렸다.
나는 다시 또 물었다.
"그럼 그때 프로그램 참여해서 무슨 직업훈련을 받았어?"
"글쎄에~ 걔가 직업훈련을 받았었나? 기억이 안 나는데..."
최쌤은 또 말끝을 흐렸다.
그 애가 담당 상담사에게 아무런 임팩트도 남기지 못하고 기억 저편의 사람이 되었는다는 게 나는 안타깝다. 그토록 아름다운 그 애가 그저 우리에게 피임약으로만 기억되고 있다는 게 못내 씁쓸하다.
나는 그 애의 자유분방함을 존중한다.
다만, 그 애가 온전히 자기 몸의 주인으로 살아가고 있길 바랄 뿐이다.그애의 자유로운 영혼이 사뜩한 남자들에게 악용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