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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 May 23. 2022

나의 인스타그램 친구들

현재 나에게는 네 명의 인친이 있는데 그들은 모두 유명인이다. 물론 그들은 내가 누군지 전혀 모른다.

아주 오래전에 SNS를 끊었다가 최근에 인스타 계정을 만들었는데, 게시물을 올린다거나 소통 목적이라기 보다는 그저 누군가를 팔로잉 하기 위한 개설이다. 물론 스토커는 아니다. 흐흐.



나의 첫 번째 인친, 일러스트레이터 키크니님.

10년 만에 SNS를 다시 개통하게 만든 첫 번째 인물이다.

우연히 그가 출연한 예능을 보게 되었다. 그는 방송에서도 머리에 대따 큰 가면 같은 걸 뒤집어쓰고 출연해서 오히려 나의 이목을 더욱 주목시켰는데, 물론 나는 그런 류의 사적 자유와 익명성을 충분히 이해한다.

솔직히 말해서 그가 방송에 출연시켜 달라고 요청했을리 없고, 그 자신도 유명 예능 프로에 출연할 만큼  떡상 할 거라고 생각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인생이란 본디 예측 불가한 것.

그의 인스타그램 팔로워 숫자가 100만 명에 육박하니, 그의 타고난 재능은 소문이 안날래야 안날 수가 없었을 것 같다.

나는 그가 자신의 SNS에 올린다는 독특한 일러스트를 보기 위해 결국 계정을 만들었다.

그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잉한 첫날,

나는 그의 작품들을 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두어 시간을 훌쩍 머물렀다.

언어적 감각이 천재적인 그의 게시물들을 보며 웃다가, 뭉클하다가, 혼자 감정의 널뛰기를 했던 것 같다. 요즘도 주기적으로 들어가서 새로 올라온 일러스트를 보며 쉼의 시간을 갖는다. 그의 명성은 그저 재치 넘치는 언어유희 때문이 아니라 바탕에 깔린 따뜻한 휴머니즘일 것이다.

'좋아요' 버튼으로 오늘도 나는 응원을 대신한다.



나의 두 번째 인친, 봅슬레이 선수 강한 님.

꽤 오래전에 아이컨택트라는 예능에서 강한 선수를 처음 봤다. 그때 그는 어릴 적 자신을 버린 엄마를 만나기 위해 출연했지만, 정작 스튜디오에서 그의 앞에 마주 앉은 사람은 사설탐정사였다.

열네 살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은 여자는 그 아이를 버리고 새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다. 강한 선수가 봅슬레이 선수로 이름이 알려진 후에 그 여자는 먼저 만나고 싶다고 연락을 해놓고 또다시 마음이 헤까닥 변하여 연락을 끊어버렸다. 사설탐정사가 그 여자를 수소문해서 편지 한 장인가를 꼴랑 전달했던 것 같다.

나는 그날 방송을 보며 그 아름다운 청년의 상심 보다 생물학적 엄마라는 여자의 행동에 더 큰 분노를 느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다가 얼마 전 오은영 박사님의 상담 프로그램에 출연한 강한 선수를 다시 만났다. 나는 이 아름다운 청년을 까맣게 잊고 살았는데, 그가 훨씬 더 심리적으로 병이 들어 있는 모습을 보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그가 자기를 두 번 버린 엄마에게 받았을 상실감의 깊이를 제삼자인 나는 너무나 쉽게 간과했던 것이다.

신체적으로 너무나 건장한 청년이 친구들에게 애정을 갈구하는 모습이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의 우울은 지난 몇 년 사이에 더 크고 깊어진 것이다.

그는 착한 아이 컴플렉스에 빠진 사람 마냥, 자기를 두 번이나 버린 여자를 이해한다고 했다. 오은영 박사님은 그걸 반동 형성이라고 설명했고, 그가 사용하는 방어기제의 부적절함에 대해 조언했다.

저렇게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여자를 이해한다고? 제삼자인 나도 이렇게 화딱지가 나는데, 정작 버려진 당사자가 이해한다고? 차라리 연락을 하지 말았어야지, 그냥 새가정에서 낳은 자식들이랑 조용히 자기 혼자나 잘 살던가, 지가 먼저 만나고 싶다고 연락을 했으면 어쨌든 한 번은 만났어야지.

열네 살 나이에 겪은 일들과 그 삶도 신산스러웠겠지만, 적어도 두 번째 상처는 주지 말았어야지.


방송이 끝날 무렵, 강한 선수는 비로소 이렇게 본심을 말했다. 날 낳아주신 건 고맙지만, 다시 돌아간다면 저를 안 낳아주셔도 된다고.

그리고 이 아름다운 청년을 오은영 박사님이 마음으로 품으셨다. 오박사 님은 기꺼이 마음의 엄마가 되어 주겠다  하셨고, 결혼식 혼주석에도 앉으시겠다고 하셨다. 이 훈훈한 마무리에 나는 진심 안도를 했고, 나 역시 이 청년을 응원하고 싶어서 그의 인스타를 팔로잉했다.

지난 5월 6일에 올라온 그의 새로운 게시물은 오박사 님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오박사 님이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인 사자머리를 하지 않고, 진한 메이크업도 하지 않아서 처음엔 몰라봤다. 화장기 없이 머리를 틀어 올린 오박사 님과 환하게 웃으며, 정말 평범한 모자지간 같은 그 모습에 마음이 행복했다. 1,100개나 달린 댓글에서 두 사람이 똑 닮았다는 반응들을 보며 왜 내가 일케 흐뭇한 거냐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당신의 빛나는 청춘을 응원한다는 걸 그는 정말 온몸으로 느껴야 한다. 그러니 착한 아이 컴플렉스 따윈 개나 줘버리고 그대 이름처럼 무소의 뿔처럼 강인하게 당신의 삶을 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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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세 번째 인친, 양익준 감독님.

양익준 감독님을 팔로잉하게 된 계기도 오은영 박사님 상담 프로그램 때문이다.

양 감독님이 출연해서 자신의 공황장애와 우울에 대해서 호소하였는데, 아주 오래전에 그의 영화 '똥파리'를 너무 인상적으로 봤던 나는,

그리고 불타는 청춘에서 솔로들과 화기애애하게 어울리는 모습을 봤던 나는, 그가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마음의 병이 있는 사람이었다는 걸,

가정폭력의 피해자였다는 걸, 처음으로 알았다.

이 방송을 보고 나서  '똥파리'를 다시 봤다.

영화의 도입부에는 길에서 건달에게 맞고 있는 여자가 등장한다. 사채업자 밑에서 폭력적인 방법으로 돈을 받으러 다니는 또 한 명의 건달인 주제에, 영화 속 양익준은 그 장면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기어이 다가가서 여자를 때리는 건달 노무 새끼에게 죽빵을 날린다. 그리고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여자의 뺨을 한 대 치고 한심하다는 듯이 이렇게 말한다.  "왜 처맞고 사냐 인간아 ~"

오래 전이기도 하지만 나는 이 장면이 전혀 기억에 없었는데,  두 번째 봤을 때 이 장면과 대사가 매우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이러하다.


방송이 끝나고도 한참 후에 양 감독님은 자신의 인스타에 장문의 게시글을 올렸다. 대개는 출연진들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을 올리는데,  그는 그저 아주 긴 글로 방송 후 사람들이 보내준 응원과 격려에 대한 감사를 대신했다. 그 글에서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제 분노는 오로지 아버지에게만 있었던 것이 아니며 그 폭력이 가해지는 상황을 박차고 나가지 못해 그 폭력 속에 갇혀 버리게 만든 어머니에게도 화가 나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이 대목에서, 왜 처맞고 사냐고 빈정거린 영화 속 그 대사가 이해가 되었던 것이다. 물론 똥파리가 그의 실제 가족사를 모티브로 했다는 사실도 이번에 처음 알았지만 말이다.


방송 중에도 양익준 감독은 과호흡 증세가 와서 촬영을 중단하고 공황장애 약을 먹었다. 그 모습은 그대로 전파를 탔고 보여졌다.

나는 그의 인스타 게시물들을 보면서 비로소 이 사람이 얼마나 감수성이 넘치고, 얼마나 섬세한 사람인지 알았다. 그런 사람이 성장하면서 받은 이런저런 까닭 모를 폭력의 경험들이 그의 섬세한 자아를 얼마나 고통스럽게 했을지 생각하면 참으로 끔찍한 것이다.

나는 그가 써 내려간 글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댓글을 달았다. 감독님이 공황장애 약을 안 먹어도 되는 그날을 꼭 고대한다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파쇼를 경멸한다고. 이따금씩 들러서, 여전히 나는 '좋아요' 버튼으로 응원을 대신한다.



나의 네 번째 인친, 이슬아 작가님.

이슬아 예찬론을 쓴 내가 그녀의 인스타를 팔로잉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안타까운 건, 내가 그녀의 인스타를 접속하기 불과 얼마 전에 일간 구독자 모집이 종료된 것이었다. 하지만 뭐 이젠 나도 인친이니까 다음엔 그녀의 일간 구독자가 될 기회가 꼭 올 것이라 믿는다. 최근 가장 반가웠던 그녀의 신규 게시물은, 그녀의 아빠이자 각별한 친구인 웅이가 프리다이빙 강사가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동영상에서 웅이 씨가 물개처럼 유연하게 물속에서 흐느적거렸다.


'56년 동안 여러 직업을 거쳐 왔는데 정말로 하고 싶어서 택한 일은 프리다이빙이 처음이라고 해요'


나는 이 문장이 참 기뻤다. 먹고살기 위해 일해왔을 웅이 씨가 하고 싶은 일을 시작했다니 마구마구 응원하고 싶어 진다. 앞으로 그녀의 수필에서  웅이 씨의 새로운 활약상을 만나게 될 것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좋아요' 버튼으로 오늘도 나는 아낌없는 응원을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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