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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 Jul 22. 2022

직업상담사로서 최고의 순간은?

직업상담사로 일한 지 만 7년이 되어간다. 상담사로서 참 많은 순간들이 기쁘고 뿌듯하다.

무기력한 구직자가 상담을 통해 의욕적으로 변해갈 때, 혼자서 안되던 취업을 시켜서 구직자가 출근을 하게 되었을 때,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는 거친 구직자를 진심으로 포용했을 때, 그런 다양한 순간들이 나에게는 모두 의미 있는 순간들이다. 그들이 내게 문자로 혹은 이메일로 진심 어린 감사를 표해올 때도 보람을 느낀다. 하지만 내가 직업상담사로서 꼽는 최고의 순간은 한 명의 유능한 직업상담사를 발굴하고 배출해냈을 때이다.


많은 실업자들이 고용노동부에서 제공하는 내일배움카드를 통해서 다양한 직업훈련에 참여하지만 의외로 직업상담사 자격증 취득에 도전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직업상담사 자격증은  장롱면허도 많다고 하지만,

2차 필답형 실기시험의 난이도 때문에 일단 따놓고 보자 식으로 덤비는 구직자는 별로 없다. 비용이야 나라에서 대준다고 해도 인풋에 들여야 하는 시간과 본인의 노력이 만만치 않다. 그래서인지 햇수로 지난 8년간 내가 관리했던 구직자 중에 이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이 딱 두 명이다.



기억에 남는 30대 남자가 있다. 그는 첫 상담에서 나에게 직업상담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그의 얼굴은  일단 웃음기나 온기가 전혀 없었다. 무례하지는 않았지만 철벽을 치고 사무적인 말투가 몸에 배어 있었다.


두 번째 대면상담에서 심리검사 결과를 보고  나는 깜짝 놀랐는데, 검사 지표의 하나인 휴머니즘이  제로였던 것이다. 그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심리검사 결과를 봤지만 어떤 지표가 바닥을 떠나 아예 제로 상태인 경우는 그 남자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나는 그날 단도직입적으로 그에게 조언했다. 선생님은 직업상담사를 하면 안 됩니다,라고 말이다.


상담직은 이타심을 매우 필요로 하는 분야이다. 그가 검사도구에서 스스로를 아주 정직하게 평가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럽지만정말 자신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면 상담사가 되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제로상태의 휴머니즘이 부단한 연마와 노력을 통해 끌어올려질 수 있을까. 차라리 그는 다른 직업을 선택하고 준비하는 것이 빠르고  합리적일 것이다. 한 명의 직업상담사를 배출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자알 배출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다행히 그 남자는 직업상담사가 되겠다고 우기지 않았다.



상담 3년 차쯤 되었을 때 40대 여자분이 직업상담사 자격증을 따고 바로 취업을 했다.

간병인 전문 직업소개소에서 직업상담사 자격증 소지자가 필요했고, 그녀는 그곳에서 사실상 경리 역할을 했기 때문에  나로서는 제대로 된 직업상담사를 배출했다는 성취감이 전혀 들지 않았다. 취업알선과 심리검사 해석상담을 제공하지 않는 직업상담사를 나는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던 중 7년 만에 처음으로  진짜가 나타났다.

 2020년 12월 7일, 나는 박쌤을 처음 만났다. 당시 그녀는 만 46세였고, 여행사에서 10년 이상 재미있게 일했지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가장 타격이 컸던 여행업계에서 결국 실업자가 되어 고용센터를 찾아왔다.

첫 상담에서 그녀는 여행사 근무에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아주 막막해했다. 몇 달 쉬고 다시 여행사로 돌아가는 것을 당시로서는 기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첫 상담에서 그녀가 직업상담사로서 아주아주 탐이 났다. 인상, 목소리, 태도, 모든 면에서 그녀는 좋은 직업상담사가 될 자질이 충만했다. 나는 그녀에게 새로운 진로로 직업상담사를 강력하게 추천했는데, 처음에 그녀는 스스로에게 반신반의하며 자신 없는 모습을 보였다. 나는 당시 7년 차 상담사로서의 직감으로 물러서지 않고 그녀를 푸싱했다.


박쌤은 결국 나의 조언을 받아들여 직업상담사 자격증 준비에 들어갔다.

"제가 정말 잘할 수 있을까요 선생님?"

학원을 다니는 동안에도 통화할 때마다 그런 겸손을 보였지만 그녀는 1차, 2차 시험을 단번에 패스하고 6개월 만에 자격증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내가 업무에 치여 신경도 못쓰고 있는 사이에 그녀가 자력으로  취업까지 해버린 것이다. 일전에 쓴 <생생면접후기 2탄>에서 그녀의 취업 비하인드를 언급한 적이 있다.


박쌤은 현재 고용노동부 산하 민간위탁기관의 직업상담사로 근무한 지 만 1년이 넘었다.

그녀가 취업했다고 들뜬 목소리로 전화했을 때, 무엇보다 직장 분위기가 좋다는 말에 안심이 되었다.

1년 근속기간을 채우면 세 차례에 걸쳐 총 150만 원의 취업성공수당이 지급되는데, 그녀는 그때마다 맛있는 걸 사들고 와서는 감사의 표현을 잊지 않았다. 이렇게 반듯하고 좋은 사람이니까 내가 그녀를 직업상담사로 탐을 냈을 것이다.


지난 3월에 우리 부에서는 7년 만에 전국단위 공채가 있었다. 나는  박쌤에게 공채 정보를 제공하고 시험 준비를 하시도록 요청했다. 나는 진심으로 그녀와 같은 조직의 동료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박쌤은 또 언제 있을지 모르는 우리 부 직업상담사 공채에 지원하지 않았다.


"선생님, 저도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지금 우리 회사에 상담사 다섯 명이 있는데 그냥 우린 가족 같아요. 다섯 명이 똘똘 뭉쳐서 거의 어벤저스팀이 되었어요. 이제 실적도 나오기 시작하고, 이사님이 지사를 또 하나 내셨는데, 당분간은 회사를 키우는데 힘써보기로 했어요."


나는 그녀의 말에 더 이상 토를 달 수 없었다. 전화기 너머에서 그녀의 단단한 마음이 충분히 느껴졌다. 오히려 나는 어벤저스팀이 된 그녀의 직장 분위기가 부러울 지경이었다. 잘할 수 있을까요, 소심했던 그녀가 이렇게 훌륭한 직업상담사로 우뚝 선 것이다.


같은 소속이 아니지만 이제 그녀와 나는 업계 동료이다.

지난 6월에 취업 1년 사후관리기간을 마치고, 취업성공수당도 모두 지급하고, 비로소 어떠한 이해관계도 없는 상태가 되었을 때, 나는 그녀에게 처음으로 내 핸드폰 번호를 오픈했다. 선선한 가을이 되면, 맛있는 밥 한 끼 먹으며 폭풍 수다를 떨기로 약속했다.


직업상담사가 된 지 7년 만에 이렇게 유능한 직업상담사를 배출해낸 기억은 오래도록 나를 뿌듯하게 할 것이다. 정년퇴직 전까지 또 이런 인재를 발굴해내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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