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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 May 04. 2023

고용센터의 상담사들

직업상담사는 말 그대로 직업상담을 하는 사람들이다. 누군가 진로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도움을 주는 것이 주된 역할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고용노동부라는 특수한 조직에 소속된 직업상담사들은 훨씬 더 멀티 플레이를 해야 한다. 직업상담사 자격증을 따고 여기저기서 계약직으로 근무를 하거나 위탁기관에서 실적 압박에 시달리는 상담사들의 로망은 고용노동부 입직일 것이다. 일단 고용의 안정이 가장 큰 장점일 것이고, 실적에 대해서도 민간업체들만큼 시달리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단순하고 피상적인 생각으로 고용노동부 직업상담사를 바라보는 것에는 다소 우려를 느낀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공직자'로서의 마인드를 지녀야 한다는 것이고, 국가 조직의 일원으로서 해야 할 역할에 대해서 진지하게 접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9년가량 근무하면서 나는 '중재자'의 역할을 자주 수행해야 했다.  그 경험들 중 몇 가지를  나눠서 들려주고자 한다.


몇 년 전 구인구직업무를 담당할 때의 일이다. 20대 중반의 앳된 여자 구직자로부터 아침 일찍 전화가 걸려왔다. 그녀는 이력서를 지원한 업체의 사장님으로부터 폭언에 가까운 문자를 받았다며 울먹거렸다. 사장님은 구로구 거주자인 그녀가 성수동 쪽에 있는 자신의 회사에 지원한 것에 대해서 실업급여 허수 지원자라고 단정을 하고, 그따위로 살지 말라는 식의 문자를 거침없이 날린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도 모른 채 내게 억울함과 황당함을 호소했다.


그녀와 통화를 마친 직후 해당 기업 사장님에게 전화를 드렸다.

"이렇게 막 허위로 이력서 넣는 사람들  제재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고용센터에서는 어떤 제재를 하고 있습니까?!"

젊은 목소리의 남자 사장님은 여전히 화가 잔뜩 나있는 목소리로 대뜸 공격적인 질문을 하셨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녀는 사장님이 예상한 실업급여 수급자가 아니었다.


"사장님, 이 친구는 현재 실업급여를 받고 있지 않습니다, 정말로 사장님 회사에 들어가고 싶어서 거리가 먼데도 지원을 한 것이 맞더라구요."

"........."


전화기 너머에서 사장님의 당황스러움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사장님의 오해를 충분히 이해한다. 실업급여를 받고 있는 사람들의 허위 지원 때문에 이미 많은 사업장들이, 많은 사장님들이 똑같은 고충과 분노를 호소하고 있기 때문이고, 입장을 바꿔 나라고 해도 제도상의 허점에 화가 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장님의 입장을 충분히 공감해 드렸고, 그렇지만 문자폭언을 당한 구직자에게는 사과 문자라도 한 통 보내주십사 정중하게 요청을 드렸다. 자신의 실수를 깔끔하게 인정하고 이내 사과문자를 보내주셔서 이 날의 해프닝은 일단락이 되었다. 구인공고에서 허수 지원자들을 걸러낼 수 있는 몇 가지 팁을 전해드렸으니 그 이후 사장님이 똑같은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셨길 바래본다.


구인자와 구직자 사이의 중재는 이뿐만이 아니다. 가령 어떤 회사에 취업을 했지만 회사 측에서 고용보험 가입을 안 해주는 경우들이 생각보다 꽤 자주 발생한다. 이런 경우에도 나는 적극적으로 행정지도를 하는 편이다. 사장님들이 나의 전화에 대해 강압적이거나 권위적으로 느끼지 않도록 최대한 정중하게 설명을 드린다. 고용보험 가입이 안 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를 묻고, 고용보험을 가입해 주었을 때 회사가 받을 수 있는 이런저런 혜택들을 안내해 드린다.


나는 국가 조직의 일원으로서 상대적으로 정보의 우위에 있기 때문에 기업이나 구직자들에게 정보를 적극적으로 안내하고 전달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받을 수 있는 다양한 제도의 혜택들을, 그들이 몰라서 받지도 못하고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제도는 활용하라고 있는 겁니다. 받을 수 있는 건 받으시고 잘 활용하시면 되는 거에요."

그건 당신들의 권리이기도 하다,는 나의 어조에 누구도 비협조적이지 않았다. 제도를 악용하는 소수의 사람들 때문에 제도를 적극 알리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다. '행정지도'라는 단어는 뭔가 단속하고 규율하는 느낌을 주지만, 내게 행정지도란 말 그대로 '지도편달'인 것이다. 구인자와 구직자 양쪽이 모두 윈윈 할 수 있도록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할 수 있는 일종의 권위는 역시 내가 고용노동부라는 조직의 일원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소속이 주는 무게감 덕분에 사장님들도 기꺼이 협조해 주시는 측면도 분명 있을 것이다. 안 그러면 당신이 뭔데 이래라 저래라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고용고동부의 직업상담사는 소속이 주는 이런 권위를 막중한 사명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기업과 구직자들에게 더 나은 선택지를 줄 수 있도록 기여해야 한다는 뜻이다. 성실하고 친절한 중재자, 이것이 고용센터 상담사들의 진짜 포지션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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