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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 Mar 23. 2023

이러지들 맙시다.

지난 2월 초 인사이동으로 우리 팀에도 타 센터 상담사 2명이 새로 왔다. 그녀들은 나보다 나이는 적지만,  모두 나보다 훨씬 더 오래전에 입사한 고참 상담사들이다. 그런데 그중 한 명,  S가 매우 독특한 캐릭터라는 걸 나는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이때의 '독특하다'는 의미는 단순히 개성이 강하다는 측면이라기보다 사실상 네거티브한 의미를 담고 있다. 지난 8년간 이런 종류의 독특한 부류들에게 몇 번 데어본 경험이 있는 나는, 그래서 직감적으로 처음부터 그녀와 적절한 거리감을 유지했다.


그녀와 나의 데스크가 많이 떨어져 있다는 게 다행스러웠지만, 나는 점심파트너인 동료 K로부터 매일 그녀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전해 듣게 된다. K는 그녀와 가까운 자리에 앉아 있는 이유만으로, 요즘 그녀로 인해 새로운 스트레스들이 생겼다.  이 글을 통해 그녀를 디스 하는 게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구구절절한 이야기는 생략하고자 한다.


고용센터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전반적으로 '취업알선'에 대한 의무가 있다. 구인구직팀이야 뭐 당연한 것이지만, 실업급여팀이나 국민취업지원제도팀에서도 자기가 관리하는 실업자들에 대해서 취업알선을 제공해야 한다. 솔직히 취업실적에 대한 책임은 구인구직팀에서만 지면 된다. 실제로 나는 혼자서 3년간  구인구직 업무를 하면서 센터 취업 실적을 이끌었고, 그래서 다른 부서의 동료들이 모두 태평성대를 누렸다.


하지만 한 번씩 유난스럽게 실적을 닦달하는 시절이 주기적으로 도래하는데, 그럴 때에는 구인구직팀뿐만 아니라 실업자를 일대일로 관리하는 부서 모두가 실적압박에 시달리게 된다. 실업수당을 다 타먹을 때까지 취업을 안 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어쩌라는 말이냐. 하지만 최근 3년여간 우리 센터는 실적 스트레스를 거의 받고 있지 않다.  


고용센터에서 취업알선을 진행하는 프로세스는 대충 이러하다.

일단 구직자가 지원하고 싶은 구인처가 선별되면 알선에 대한 동의를 받고 전산으로 알선처리를 해야 한다. 그래야만 나중에  채용이 되었을 때 센터의 알선 실적으로 인정된다.  전산으로 취업알선을 등록하면 자동으로 구직자에게도 알림톡이 가고, 구인공고를 올렸던 업체에서는 알선처리된 구직자들을 직접 컨택하여 연락을 취한다. 이런 시스템으로 인해 알선을 희망하지 않은 구직자를 알선하는 것은 추후 감사 대상이 될 수 있다. 모니터링 전담팀에서 매년 허위 알선행위를 점검하고 있지만 적발에는 한계가 있다. 모니터링으로 추출할 수 있는 요건이 너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저번달 취업알선 통계 봤어? S가 엄청 취업알선을 많이 했는데 옆자리에서 나는 S가 취업알선에 대해서 구직자들과 통화하는 소리를 단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어."

며칠 전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에 K가 매우 미스터리하다는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그래서 채용된 사람은 몇 명인데?"

내가 물었다.


"채용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는 게 신기하다는 거지."

K가 다시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S의 목소리가 기이할 정도로 작아서 통화하는 소리까지는 안 들린다 쳐도, 구인구직업무도 했었다는 그녀가 그렇게 다수의 취업알선을 진행했다면 그중 취업자가 한 건이라도 나와야 정상이다. 나도 그 점은 매우 의아했지만 그날은 흘려듣고 말았다.


그런데 어제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에 K가 다시 충격적인 얘기를 전했다.

"어제 나랑 A가 S한테 물어봤어, 취업알선을 많이 하셨던데 통화하는 소리는 거의 못 들은 거 같다고. 그랬더니 S가 뭐래는 줄 알아? 그냥 자기가 막 걸은 거래. 나중에 감사에서 문제가 되면 어쩌시려구요 하니까, 감사에서 문제가 되면 자기가 책임지면 된다는 거야. 구직자들이 이제 와서 딴소리하는 거라고 말하면 된다는 거야.  그렇게 말하는 게 나는 더 놀라웠어."


허걱.

나 역시 너무나 놀라웠다. 허위 알선행위 자체도 놀랍지만 그녀의 태도는 더욱 경악스러웠다. K와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렇게 말했다.


 "대체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데?!"


우리 센터는 현재 어느 누구도 취업알선 실적에 대한 압박을 받고 있지 않다. 시쳇말로 우리가 취업시켰다고 해서 수당을 더 받는 것도 보너스를 받는 것도 없다. 실적압박을 심하게 주는 관리자들의 경우는 통계표를 좍좍 뽑아서 보험설계사들처럼 닦달해대며, 취업알선을 많이 해야 취업자가 나올 거 아니냐며, 알선건수 자체에도 집착을 보인다. 하지만 분명히 말하건대, S의 행동은 지금 우리가 그런 정도의 압박을 받고 있는 때라고 해도 해서는 안 되는 짓이다.  우리의 행위는 사실 그대로를 반영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공공기관의 종사자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 원칙은 중요하다.


허위로 알선을 걸고 나서 알림톡을 받은 구직자로부터 항의를 받을 수도 있고, 실제 지원의사가 없는 구직자에게 면접요청을 했다가 사실을 알게 된 사업장으로부터 항의를 받을 수도 있다. 실업급여를 받고 있는 사람들의 허수 지원으로 힘들어하는 사업장들은, 국민취업지원제도 참여자들의 허수 지원까지 늘어나서 더 힘들어진 상태이다.  이 와중에 상담사들까지 허위 알선으로 일조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나는 오늘 아침 출근 직후 팀장님에게 이메일로 S에 대한 경고조치를 요청드렸다. 어차피 동료들의 말을 들을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대로 S를 방관하면 그녀의 행동은 계속될 것이 자명하다. 스스로 문제의식이 없는데 어떻게 멈출 수 있겠는가.


나는 팀장님에게 내가 직접 건의를 했다는 사실도 그녀에게 분명하게 전달하도록 요청했다. 안 그러면 그녀와 대화를 나눈 K와 A가 오해를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나는 이런 종류의 내부고발로 그녀와 관계가 껄끄러워지는 것을 별로 개의치 않기 때문이다. 관계보다 중요한 것은 원칙이 지켜지는 것이다.


나의 이메일을 받고 팀장님도 매우 놀라워했다. 따로 면담을 해서 주의를 주겠다고 했고, 앞으로 통계현황을 본인도 계속 모니터링 하겠다고 했다.


동료들의 모럴해저드를 방관하고 심지어 담합하는 행위는, 부끄럽지만 이곳에서도 비일비재하다.

어차피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정년퇴직하는 순간까지 자기 방식을 고수하며 살겠지만, 적어도 오늘은 꼭 이 말을 하고 싶다. 제발 이러지들 말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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