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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환자실의 엄마

일년만의 만남

by 밀리멜리

스무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인천공항에 내리니 카톡이 왔다.


[바로 병원으로 오기 바람]


다들 나를 기다리고 있단다. 중환자실에 엄마가 있고, 친척들이 모여 장녀인 나만 기다리고 있다는 상황은... 내가 가장 두려워하던 그 순간인가.


정신없이 입국수속을 하고 공항을 빠져나와 춘천으로 가는 버스표를 샀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몸이 저절로 흔들리며 눈물이 터져나왔다.


엄마가... 벌써?나한테 아무 말도 안하셨는데... 오늘은 아닐거야. 그건 알아. 오늘은 아니야.


버스터미널에 제부가 나를 픽업하려 와 있었다.


"고마워, 제부. 나 그런데 공항이랑 비행기에서 사람 많은 곳 있다 왔는데, 좀 씻고 옷도 갈아입어야 하지 않을까. 감염 걱정되는데."

"아이, 지금 그럴 단계는 지났어요. 마스크 줄테니까 쓰고 얼른 가야 해요."


그럴 단계가 지났다는 게 무슨 뜻인지 생각하려 들지 않고 제부의 차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중환자실 호출 버튼을 누르고 조금 기다리니 간호사가 날 바로 알아본다.


"캐나다에서 온 따님분이시죠. 손소독하고 들어오세요."


처음 본 중환자실은 카오스였다. 삐빅거리는 소리와 생명유지시키는 커다란 기계들. 환자들의 신음소리와 거무죽죽한 그들의 낯빛.


그렇게 변해버린 엄마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 뻔 했다. 동생이 투병하는 엄마의 사진을 찍어 미리 봤던 게 다행이다. 안그랬으면 일년만에 엄마를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넋놓고 울음을 펑펑 터트릴 뻔 했다.


"엄마, 나 왔어. 소영이 왔어."


멍하게 허공을 보던 눈이 커다랗게 열리며 놀라움을 품는다.


"오늘 온다고 했잖아. 나 휴가받아서 왔어. 엄마, 엄마 보고싶었어."


나는 그랬구나 피곤하겠다 하고 말하는, 아직도 놀라움이 가시지 않은 그 동그란 갈색 눈을 계속 바라보았다.


그 눈으로는, 여전히 내 걱정을 한다.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하는 지금까지 끊임없이 해온 그 일을. 그 지경을 하고도, 콧줄과 투석바늘과 호흡기를 꽂고서는 내 걱정을 한다. 내가 피곤할까, 회사는 어떡하고 왔는지, 내 몸은 괜찮은지... 당신 목숨이 간당간당한 순간에도 내 걱정을 하는 사람이다.


"엄마 손, 엄마 손 잡아도 되나? 손이 어디있지..."


이불 속 엄마의 손은 퉁퉁 부어 있다. 엄마 손은 그래도 따뜻하다. 주사바늘을 피해 손가락을 맞닿으니 엄마가 내 손을 잡아오는 게 느껴졌다. 그 힘이 고마웠다.


중환자실에 들어가도 울지 않겠다는 다짐은 지키기가 힘들었다. 엄마의 눈시울이 붉어지며 물이 차오르는 걸 보는 순간에는 나도 똑같은 반응을 보이는 걸 어쩔 수 없었다.


"엄마 나 엄청 건강하고 잘 지내. 휴가도 걱정없어! 공무원 철밥통이잖아. 엄마 괜찮아 질 때까지 여기 있을거야. 회사에서도 그래도 된대. 엄마는 엄마 생각만 해."


엄마의 눈은 그제서야 안심하는 빛이다. 나는 무슨 말을 더 해야 할지 몰라 그냥 그 두 눈을 바라보았다. 엄마한테 힘이 되어야 하는데.


"엄마, 나 결혼식에서 사위랑 춤추는 거 하자. 캐나다에서는 그렇게 한대. 결혼식에서 댄스. 엄마 춤출 때 입을 예쁜 드레스도 맞추자. 화려한 걸로."


엄마가 힘을 내어 끄덕끄덕 한다. 됐다. 드레스를 입은 엄마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엄마도 나만큼 이걸 원했으면. 그래서 좀 더 살아갈 힘을 얻었으면.


면회시간이 끝났다는 간호사의 말에 이제 가야한다고 하니 엄마가 고개를 도리도리하며 주사바늘이 꽂힌 퉁퉁 부은 손으로 내 손을 꼭 부여잡는다. 어디서 이런 힘이 나왔을까. 손을 뺄 수 없을 정도의 힘이었다.


"면회시간 끝나셨어요."


간호사의 재촉에도 정말 그 손을 뺄 수가 없었다. 나는 엄마의 그 손길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따뜻함. 붓기있는 손가락. 부드러운 감촉. 내 손을 꼭 잡는 힘. 그 생명력. 지금 이 순간 엄마가 살아있음.


어느 누가 그 손을 뿌리칠 수 있을까?그러나 해야 하는 일이다.


"엄마, 나 계속 이 벽 뒤에 있을게. 내가 옆에 있을거야. 지금은 밥먹으러 가볼게. 괜찮아?"


밥먹으러 간다는 말에 엄마는 그제야 손을 푼다. 중환자실이 아무리 외롭고 고통스러운 곳이어도 엄마는 딸내미 밥 한술 챙겨먹이는 게 더 중요하다.


왜 엄마와 더 시간을 보내지 못했을까. 그럴 수 있을 때.


고마워 엄마, 내가 올 때까지 버텨줘서. 우리 조금만 더 그렇게 버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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