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하며 자랐고, 이젠 이해하려 한다.
나에게 있어 아버지는 잘 기억나질 않는다.
한 가지 확실한 건 한 번 화가 나면 엄마만큼이나 무섭다는 것.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항상 피곤해 보였다. '눈이 어둡다' 이 표현이 맞을까? 잘 모르겠다.
집에 있는 날은 많지 않았지만 대부분을 안방 구석에서 자고 있었다.
엄마가 밥을 먹자고 아버지를 깨우라 하셨을 때, 방에 뛰어가 아버지의 얼굴을 건드리거나 위에서 짓누르는 겁 없는 행동을 했던 것이 생각난다.
지금 생각하면 한 대 때리고 싶었을 법도 하지만 아버지가 나를 때리는 일은 없었다.
과묵한 면이 있었다. 좀처럼 나에게 장난스러운 말조차 건네는 일이 거의 없었고, 동생이 있지만 아버지는 특히 나에게 무언가 기대하는 눈치였다. 장남이기 때문일까?
당시 버스기사셨던 아버지는 항상 새벽에 해가 뜨기 전에 나가셨다. 아직 집이 조금 어두운 시간대에 화장실이 가고 싶어 눈을 비비며 쌀쌀한 방을 나가려 문을 여는데, 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나가려는 아버지와 배웅해 주는 엄마가 보였다.
졸린 눈으로 꾸벅 인사를 하고 볼 일을 보고 다시 잤던 그날의 기억은 왠지 모르게 아직도 선명하다.
아버지는 노안이셨다. 나이대에 비해 굉장히 늙어 보이셨다.
엄마가 이야기해 주길, 어린 시절 아버지와 버스를 타는데, 버스기사가 나를 보며 이렇게 말했더랬다.
"할아버지랑 어디 놀러 가니?"
엄마는 재밌다는 듯이 나에게 말해주었지만, 아버지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그렇다고 늘 쉬는 날에 뒹굴거리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가끔은 나와 동생을 데리고 자전거를 탔었다.
내가 가진 몇 안 되는 아버지와의 좋은 기억.
아이들이 가기엔 조금 멀었던 거리지만, 아버지가 있으니 어떻게든 될 것 같아 따라갔다.
별로 친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아버지다. 어른이고, 가족, 내 편이다. 타인에 비해 마음이 훨씬 편했던 거겠지.
하지만 아버지와 함께할 때의 결과는 그리 좋지 않다. 자전거를 타고 가면, 늘 내 속도를 맞춰주지 않고 멀리 가버렸다. 등산을 할 땐 아이가 가기 위험한 길을 골라 굴러 떨어지기도 했다.
엄마는 그래서 우릴 데리고 아버지가 나가는 걸 그리 좋게 보지 않게 되었다.
늘 티격태격, 엄마와 아버지는 항상 그랬다. 엄마는 화가 많으신 분이다. 한 번 열받으면 어떤 말이든 내뱉는다. 그 말이 본심이든, 진심이든, 해도 되는 말이든, 안 되는 말이든, 엄마는 항상 말한다.
"그러게 성질 건들질 말아야지"
그때도 새벽이었다. 잠을 자다 엄마가 소리 지르는 소리에 눈을 떴다. 무서워서 몰래 방문을 슬쩍 열고 상황을 지켜보았다. 평소보다 훨씬 열받은 엄마는 욕을 하며 소리를 지르고 아버지를 위협한다. 아버지는 항상 질린 듯한 얼굴로 반쯤 포기한 채 듣는 둥 마는 둥 했었다.
생각해 보면 지금의 나와 비슷한 표정일지 모른다.
하지만 아버지도 사람이다. 감정은 있고, 쌓인 건 언젠가 폭발한다. 아버지가 화를 내며 물건을 부수고 엄마를 때린 일에 제대로 기억나는 건 두 번이지만 사실 훨씬 많다.
첫 번째 기억은 내가 아주 어릴 때, 동생이 갓난아기일 때다.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분명 엄마는 쓰러져있었다. 당시의 두껍고 무거운 TV는 바닥에 내동댕이 쳐져서 부서져있다. 바닥도 엉망진창, 동생은 목청 터지게 울고 있다. 씩씩대는 아버지와, 그 무거운 공기에 나는 압도되어 쥐 죽은 듯 가만히 있는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어릴 적 일이며, 트라우마처럼 각인되었다.
두 번째는 내가 당시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왜 싸웠는지는 모른다. 늘 있는 일이니까.
갑자기 아버지가 화가 나서 던진 술병이 벽에 부딪혀 깨졌다. 옆에 있던 의자로 엄마를 때리려 한다.
이마에 피가 흐르는 엄마는 도망간다.
나와 동생은 무서워서 다리가 떨렸지만 엄마를 찾아야 한다는 마음에 따라 집 밖을 뛰쳐나왔다.
다행히 엄마는 옆 집에 있었고, 나는 아는 동네 형 집으로 동생과 함께 뛰어갔다.
발바닥엔 술병 조각에 베여 피가 줄줄 새고 있었다.
집안은 엉망, 엄마도 맞았고, 결과적으로 나도 다쳤다. 경찰이 와서 사건은 정리되고 이후론 이혼소송이 진행되었다. 나는 아버지를 잘 모른다. 내가 아는 아버지는 엄마가 해준 말이 전부다.
이혼을 하고, 초등학교 5학년까진 학교에 아버지가 찾아왔고, 중학생 때까지 전화를 걸어왔다.
엄마는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오면 항상 본인한테 말하라고 했다.
그날은 밖에서 뛰어놀던 중 전화가 왔다. 주머니에서 전화가 받아진 걸까, 난 대화한 기억이 없지만 통화내역은 그대로 있었다.
엄마는 나를 미친 듯이 때리며 추궁했다. 나는 아니라고, 전화 안 했다고 몇 번을 말했지만, 엄마는 나를 때렸다. 욕하고 발로 걷어차고, 머리채를 잡혀 울고불고 싹싹 빌었다.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화는 가라앉았고 성인이 되어서 그날 아무 말도 안헀고 몰랐다고 말해도, 엄마가 사과하는 일은 없었다.
나에게 있어서 아버지는 어떤 존재였을까?
중학생 때 외할아버지가 했던 말을 나는 기억한다.
"그건 쓰레기야"
엄마도 아버지에 대해 좋은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결국 나는 그 해 여름, 술 취한 아버지에게 온 전화를 바로 끊어버렸다.
아버지의 친구가 전화해, 한 번만 이야기해 달라고 부탁해서 받았지만, 질릴 대로 질렸다.
나는 아버지를 차단했다.
성인이 될 때까지 내 안 좋은 습관이나 버릇이 나오면 엄마는 항상 말했다.
"지 아비 닮은 짓만 한다"
난 그 말을 제일 싫어했고, 지금도 싫어한다.
결국 나도 터졌다.
"왜 말을 해도 하필이면 그딴 새끼랑 비교하는데요?"
엄마는 나한테 미친 듯이 욕했다.
"그래도 니 아버지야"
나는 비웃었다. 한 번도 좋은 말은 해준 적도 없었고 욕만 해대 놓고, 내가 그 사람을 아버지라 부르길 바랐다면 오산이다. 그날 이후, 엄마는 가끔 아버지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하려 한다. 속 보이지만 아버지에 대해 조금은 알아가고 있는 듯한 기분이 증오와 교차하며 마음은 복잡해지기만 한다.
어린 시절, 어른들이 하는 말 대로 아버지를 그냥 나쁜 사람이라 낙인찍고 미워하기만 했다. 엄마가 나쁘게 말하니까, 할아버지가, 할머니가 그렇게 말하니까. 내가 본 것도 그런 것이니까, 하지만 이젠 안다.
물론 아버지가 엄마를 때린 건 옹호할 수 없는 잘못이다. 하지만 엄마도 아버지의 뺨을 때렸다. 늘 욕했다. 무시하고 성질대로 아버지가 고집을 꺾는 것만 바랬다.
지금의 내가 듣는 말을, 아버지는 아내한테 들었다.
내 존재의미를, 가치를 계속해서 부정하고 깎아내리는 말.
사람이 어디까지 비참해질 수 있는지 시험하듯 무정하게 순간의 감정 그대로 뱉어낸 아픈 말들.
부모님은 서툴렀고, 어른답지 못했던 것 같다. 진작에 이혼했으면 됐을 텐데,
자식이 있으니까 이혼하면 안 된다는 멍청한 소리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식으로 관계를 엉망으로 하고 자식들에게 폭력적인 모습만 보여줄 거라면, 진작에 이혼하는 게 낫다.
나는 부모님에게서 안 좋은 것을 물려받았다. 상처가 되는 말을 가볍게 내뱉고, 화가 나서 욱하는 성격을, 어쩌면 내가 엄마와 아버지보다 더 나쁜 부모가 될 수도 있다.
가끔씩 부모님한테 보이던 행동들이, 나의 행동 속에 묻어 나올 때, 나 자신을 혐오하게 된다.
그렇기에 나는, 감정을 조절하는 연습이 필요할 것 같다고 느꼈다.
더 나은 자신이 되는 길이기도 하고, 내가 느낀 슬픔을, 괴로움을 끊어내기 위한 길이기도 하다.
나는 이제 어른되어야 한다. 엄마도, 아버지도 미워하려 하는 게 아니라, 이해하려 한다.
그리고 착각하면 안 된다. '엄마라면', '아버지라면 그랬겠지.'라고 이해하는 것이지
'그럴 수 있다'처럼 감싸려는 것이 아니니까.
이런 괴로운 경험을 내가 타인에게 전하는 일이 없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