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번째 기후위기 속 마을 대화모임
6월 25일 ‘기후위기 속 마을 대화모임’ 날은 수원의 마을공동체들에게 아주 중요한 날이었어요. 대화모임 준비로 한 참 바쁘던 시간 ‘수원 마을만들기조례 폐지조례안’이 수원 시의회 본회의에 상정되어서 표결이 이루어지고 있었죠. 모두 방청을 할 수는 없어서 일부는 시청으로, 또 일부는 경기상상캠퍼스에서 대화모임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점심이 되기 전에 부결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우리는 모두 나르던 짐을 내려놓고 기쁨의 춤을 추었죠.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공동체들과 대화모임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안도할 수 있었어요.
옷을 사지 않을 결심
6월의 대화모임은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소연 작가와의 북토크로 시작했어요.
경기상상캠퍼스 생생1990 1층 마주침 공간에 핸드메이드로 만든 네트워크 현수막도 걸고, 희망샘도서관에서 오늘의 주제와 관련된 도서들을 가져오셔서 작게 전시도 해 놓았어요.
드디어 시작된 북토크!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의 저자가 어떤 옷을 입고 올지 저만 궁금했던 건 아니죠?
이소연 작가님은 30~40년은 된 어머니의 소매 없는 줄무늬 티셔츠와 중고거래로 얻은 7년 된 핑크색 진(Jean)에 다시입다 연구소의 21% 파티에서 교환한 벨트를 하고 왔어요. 모두 너무 세련되고 관리가 잘 되어서 오래된 옷으로 보이지 않았어요.
오래된 옷도 이렇게 멋지게 입을 수 있다니!!
궁금한 것이 정말 많았지만, 우선 어떤 계기로 옷을 사지 않을 결심을 했는지 물어보았어요. 작가님은 쇼핑을 정말 좋아했는데, 미국에서 인턴으로 일할 때 쇼핑몰을 돌아다니다 퍼(Fur)가 달려있고, 벨트가 포함된 하얀색 패딩점퍼를 발견하게 되었데요. 그런데 이 옷의 가격이 1.5달러였던 거죠. 너무 저렴한 옷 가격에 충격을 받은 작가님은 집에 돌아와 어떻게 이런 가격으로 옷을 팔면서도 경영이 되는지 호기심이 들어 찾아보고, 패스트 패션(Fast Fashion)과 관련된 여러 진실들을 알게 되면서 옷을 사지 않기로 결심을 했다고 해요.
우리가 옷을 사는 이유
모두에게 응원을 받을 줄 알았던 결심이었지만, 옷을 공유하며 입던 작가님의 언니에게도 이해를 받지 못하고, “네가 옷을 사지 않으면 내가 더 사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데요. 그래서 언니 같은 사람들을 설득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때부터 주변사람들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왜 옷을 사는지 인터뷰해 보았데요. 사람들은 옷을 사는 이유를 별로 생각해보지 않고 사는 경우도 많았고, 유행이 빨리 바뀌어서, 어떤 색이나 디자인의 옷이 없어서, 기분전환하려고 옷을 산다고 이야기했죠.
그런데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우리가 패스트 패션 브랜드(영미권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우리나라에서는 SPA* 브랜드로 일컫는다.)의 옷을 사는 압도적인 이유는 값이 저렴하기 때문이래요. 옷을 차로 한 번 바꿔보면, 집에 까만 차만 있어서 흰 차를 한 대 더 사지는 않고, 기분이 안 좋아서 집에 가는 길에 차 한 대 뽑지도 않죠. 우리가 저마다 옷을 사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렇게 합리화를 하지만 사실은 그 가격이 워낙 저렴하기 때문에 구매할 수 있는 거래요.
*SPA 브랜드 : 기획부터 생산, 유통까지 한 회사가 직접 맡아서 판매하는 의류 브랜드로 유니클로, H&M, ZARA, Forever21, 탑텐 등이 있다.
저렴한 옷 가격의 비밀
그렇다면 사지 않고는 못 베기는 저렴한 옷은 대체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요? 작가님을 저렴한 옷 가격의 비밀을 세 가지 알려주셨는데요. 첫 번째는 저렴한 재료였어요. 우리가 카페에 가면 플라스틱 컵에 음료를 담아 주잖아요? 그런데 매장에서 머그컵으로 먹을 때나 테이크아웃하기 위해 플라스틱 컵을 받을 때나 가격 차이는 나지 않아요. 오히려 할인을 해주는 경우도 있죠. 플라스틱은 가격을 안 쳐도 될 만큼 저렴하다는 이야기인데, 옷이 플라스틱과 다를 바 없었데요. 우리가 소비하는 패스트 패션 브랜드의 70%가 합성섬유였던 거죠.
이렇게 저렴한 원자재로 옷의 가격을 낮췄다면, 다음으로는 인건비를 낮춰야 했어요. 아무리 저렴한 원자재여도 옷을 만드는 노동자들에게 시급 1만 5천 원을 줬다면, 저렴한 옷은 만들어질 수 없겠죠? 결국 저렴한 인건비로 개발도상국의 인력을 활용했고, 그들의 근로환경은 정말 참담했어요. 작가님이 보여주신 방글라데시 의류공장이 있던 라나플라자 붕괴사고는 말 그대로 사람이 만든 재난이었어요. 외벽에 금이 가 있었고, 붕괴를 예측하고 있었지만 납품기일을 맞추기 위해 월급을 빌미로 1,100여 명의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몰았죠.
마지막은 대량생산 대량소비였어요. 여러 개 사면 주어지는 할인과 쿠폰들, 무료배송과 무료반품 등 우리가 혜택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기업이 이윤추구를 위해 싸게 만든 물건을 많이 팔기 위한 전략이었던 거죠. 결국 우리는 환경에 유해한 재료로 누군가에게 줘야 할 돈을 주지 않고 만든 저렴한 옷을 많이 사면 이득이라는 말에 속아 사고 있었던 거죠.
작가님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결국 우리가 이런 일을 막으려면 좀 더 관심 있게 이 문제를 들여다보고 선택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았어요. 옷을 사지 않으면 좋겠지만, 사더라도 케어라벨을 잘 보고 좋은 소재로 합리적인 가격의 옷을 소비하는 거죠. 요즘 그린워싱* 기업들도 많은데 눈속임이 아니라 정말 친환경적인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부터가 시작이겠죠?
* 그린워싱(Greenwashing) : 친환경적인 것처럼 홍보하지만 사실은 친환경적이지 않은 것
새 옷 사지 않고 새 옷 입는 법
아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실천이죠. 작가님은 옷을 사지 않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셨는지, 노하우 전수를 부탁드렸어요.
작가님도 옷을 사지 않기로 한 초반에는 너무 힘들었고, 2~3년 차 정도 되었을 때는 옷이 너무 사고 싶었데요. 하지만 책을 쓰면서 이 산업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게 되면서 이제는 그냥 안 사고 싶어 졌다고 해요. 오늘 북토크를 통해서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지만, 우리도 책을 자세히 읽어보고 깊게 이해해 보는 게 좋겠죠?
작가님이 추천해 주신 첫 번째 실천방법은 주변에 선언하는 거예요. “나 이제 옷 안 살래!”하면 주변 사람들이 관심을 주지 않는 것 같지만, 막상 지나가다 옷을 구경하거나 “저거 예쁘다.”라고 이야기하면 “야~ 너 안 산다며!” 그러면서 감시자 역할을 해준다는 거죠. 작가님은 이제 책도 쓰고 강연도 하게 되면서 정말 옷을 살 수 없게 되었는데, 우리도 SNS나 주변에 이야기를 해두면 알아서 주변 사람들이 나를 제어해 줄 거래요.
또 주변사람들이 옷을 챙겨주기도 한데요. 작가님도 엄마나 언니의 옷장을 살펴 옷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동료들이 옷을 사지 않는 작가님에게 자신들이 입지 않지만 좋은 옷을 추려 선물처럼 가져오는 거죠. 그래서 작가님도 당장 입을 수 있는 옷들을 가져오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옷을 가져와서 바꾸는 것을 하나의 문화로 만들었데요. 우리도 오늘 해보기로 한 공유 옷장과 비슷하죠?
미니멀리즘으로 유명한 곤도마리에의 말 중에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가 있는데, 작가님은 우리가 선진국에 태어나서 평범하게 커피를 마시고, 물건을 소비하고, 차를 타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탄소를 배출하고, 특권을 누리고 있는데, 심지어 구매했던 물건을 설레지 않는다는 이유로 종량제 봉투에 넣어 버리는 것은 지향하는 삶의 태도가 아니었데요. 그래서 다시입다 연구소의 21% 파티처럼 옷을 공유하는 문화를 체험해보았으면 한데요.
행사할 때 옷을 샀던 이유는 무엇이고, 어떤 이유로 내놓았는데, 어떤 주인에게 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옷의 사연이 생긴데요. 엄마가 준 옷, 친구들과 교환한 옷을 입고 어디를 방문하거나, 어떤 일을 할 때 입고 그 옷의 원래 주인들에게 이야기를 공유하는 것은 특별한 경험과 기쁨을 준다고 해요.
그리고 이렇게 좀 정리를 해봤는데도, 어떤 옷을 꼭 구매하고 싶다면 그때도 새 옷보다는 당근마켓이나, 아름다운가게, 기타 커뮤니티에서 중고로 구매해 보는 것도 추천해 주셨어요.
패스트 패션 기업 규제 정책의 등장
마지막으로 작가님께 지난 대화모임에서 나왔던 고민을 여쭤보았어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옷을 사지 않기로 결심하고, 열심히 활동할 수 있지만 패션과 관련된 기업이나 국가가 할 수 있는 노력은 뭐가 있을지 궁금했죠.
작가님은 기업이 선형경제로 이루어진 지금의 산업의 시작과 끝을 연결해 순환경제로 만들기 위해 폐섬유로 옷을 만드는 것을 시도해 보아야 한다고 이야기해 주셨어요. 우리가 분리수거할 때 복합물은 분리배출이 정말 어렵잖아요? 옷은 복합소재의 ‘끝판왕’이기 때문에 재활용이 굉장히 까다로운데, 이 비용을 옷으로 돈을 버는 기업이 마땅히 책임지라는 거죠.
유럽을 중심으로 정부에서도 이런 흐름을 만들기 위해 ‘생산자책임제도’라는 규제를 하고 있데요. 포장재나 전자제품 폐기물 처리에 도입한 EPR(Extended Producer Responsibility) 시스템을 의류업계로 확장한 거죠. 우리나라에서는 2022년에 검토를 해보겠다고 한 것이 마지막이라는데, 국제적인 흐름에 맞게 기업과 정부 둘 다 바뀌어야 할 것 같아요.
작가님은 개인의 실천은 정말 어려운 일이고, 때로는 지쳐서 포기할 수도 있는데, 그럴 때 탓하거나 스스로 너무 엄격해지면 금방 포기할 수 있으니, 조금씩 변해가는 것도 충분하다는 마음가짐으로 해보길 권하셨어요. 오히려 기업이나 정부가 훨씬 빠른 속도록 변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신다고요.
우리들의 공유옷장
재미있고 유익했던 이소연 작가님과의 북토크를 마치고, 네트워크는 2층 무아지경으로 자리를 옮겨 공유옷장을 진행했어요. 오늘 교환을 위해 가져온 옷의 가짓수만큼 교환권과 이야기 태크(TAG)를 받았죠. 잠시 둘러앉아 옷의 이름과 구입한 시기와 장소, 구입한 계기, 착용한 횟수, 공유하는 이유, 당부의 말까지 이야기 태그에 적어보는 시간을 가졌어요. 그리고는 모두 둘러앉아 가지고 온 옷들의 사연을 이야기했죠.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인 우리 네트워크처럼 옷의 사연도 모두 달랐어요. 이야기를 들으면서 달리 보이는 옷도 있었고, 교환해서 가져다주고 싶은 사람이나 가지고 싶은 이유가 떠올라 먼저 찜을 외치기도 했죠.
사연 공유를 마친 옷들은 옷걸이와 테이블에 배치되었고, 참여자들이 모두 나와 함께 옷을 둘러보고 교환권을 이용해 옷을 교환했어요. 1대 1 맞교환이 아니라 교환권으로 옷을 공유하다 보니, 선택이 자유로웠어요. 가지고 온 옷보다 교환해갈 옷이 적은 사람들은 교환권을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주기도 했죠. 옷교환에 성공한 참여자들은 옷을 입고 뽐내는 시간도 가졌고, 교환되지 못하고 옷걸이에 남은 옷들은 몇몇 참여자가 모델이 되어 착용하고 패션쇼를 하면서 재미있는 추억을 만들었죠. 교환되고 남은 옷과 소품들은 마을에서 의류 기부와 나눔이 가능한 곳으로 가져다 드리기로 했어요.
우리들도 앞으로 네트워크에서 서로 교환한 옷을 입고 만나 추억을 쌓아갈 수 있겠죠?
그러면 7월 대화모임으로 함께 가볼까요?
https://brunch.co.kr/@42dc291a39a243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