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옷장에 남겨진 온기를 읽다

뒤늦게 깨달은 엄마의 마음

by 엔도르핀 본비


봄은 진작에 문턱을 넘었건만, 나의 계절은 여전히 작은 옷방의 묵은 공기 속에 머물러 있다.

따듯해진 날씨에 얇은 외투를 꺼내기 위해 장롱 문을 열었다.


장롱의 첫 번째 칸은 그이의 몫이었다. 외출할 때 고민 없이 바로 찾아 입을 수 있도록 배려한 나의 마음자리였다. 사실 그는 늘 입던 옷만 고집하는 무던한 사람이었지만, 나는 철마다 그가 조금 더 근사해 보일 옷들을 골라 부지런히 그 칸을 채우곤 해, 첫 칸을 지나 옆 칸까지 차 있다.

남편의 옷 사이에서 정작 내 옷은 찾지 못해 다른 칸을 열어보지만, 그곳에도 역시 그의 흔적이 가득하다.

‘참 많이도 사줬네. 근데 왜 이렇게 안 입었니?’ 혼잣말을 내뱉다 보니, 출근 전의 분주함 사이로 먹먹한 슬픔이 차오른다. 바쁜 출근길 위에 서야 하기에 차마 다 쏟아내지 못한 감정이 가슴 끝에 걸린다.


이미 낡은 것들을 솎아내고 기부도 여러 차례 했건만,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옷들은 마치 나를 기다렸다는 듯 반갑게 얼굴을 내민다. 옷자락에 손을 대는 순간, 마치 그를 만난 듯한 온기가 손끝을 타고 전해졌다. 옷은 입는 사람의 형상을 기억한다고 했던가. 빼곡히 걸린 옷들 사이로 우리가 함께 통과해 온 삶의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흐른다.


승진을 기념하며 큰마음먹고 맞췄던 커스텀 수트, 큰딸의 상견례를 앞두고 설레는 마음으로 백화점에서 구입한 재킷, 서울 강남으로 가봉하며 맞춘 코트, 비싼 옷은 질색하면서도 몇 번을 망설이는 그를 위해 구입해서는 즐겨 입었던 검정 점퍼. 딸아이가 선물한 바람막이를 입을 때 "젊은 오빠 같다"며 아이들처럼 좋아하던 우리 가족의 미소가 그 점퍼에 여전히 걸려 있다. 하도 낡은 것만 입기에 반품 불가 엄포를 놓고서야 입혔던 남색 트렌치코트까지... 옷마다 주인과 함께한 남긴 추억이 역력하다. 손때 묻은 니트와 셔츠, 잠옷들을 가만히 쓸어내리다 문득 멈춰 섰다. 그리고 이제야 깨닫는다.


문득, 수십 년 전 엄마의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내가 엄마에게 했던 그 모진 배려가 얼마나 큰 잘못이었는지, 같은 처지가 되고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나는 이별을 준비할 시간이 적지 않았음에도, 여전히 그의 옷 한 벌 버리는 것이 이토록 아리고 사무치는데, 아빠의 흔적을 버리지 못하고 보물처럼 쥐고 있던 엄마를 보며 "왜 저렇게 짐을 안고 사느냐"라고 타박했던 나의 무지함이 가슴을 친다. 직접 그 상황이 되어보니 알겠다. 이것은 단순히 버리지 못한 짐이 아니라, 차마 놓지 못한 그 사람의 존재 자체라는 것을. 옷장에 남겨진 온기는 떠난 이가 남겨준 마지막 위로라는 것을.

나는 도대체 엄마에게 얼마나 큰 잘못을 했던 것일까. 엄마가 지키려 했던 것은 낡은 천 조각이 아니라, 그 사람과 함께했던 생의 한 조각이었음을 이제야 아프게 배운다.


비어 가는 장롱 속에서 여전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남은 옷들을 다시 깊숙이 밀어 넣는다.

‘그래, 이것들은 그냥 두자. 버리지 말고 가지고 가자.’

이 옷들이 내뿜는 온기가 있는 한, 그는 여전히 내 곁에 머물며 이 봄을 함께 건너가 주며, 다음 계절을 맞아줄테니.


2002년 3월 1일로 날을 잡은 장남의 결혼식을 코앞에 두고 행복에 젖어 있던 친정엄마에게 아빠의 죽음은 도둑처럼 찾아왔다. 1월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아빠는 급성심근경색으로 황망하게 곁을 떠나셨다. 마을 사람들이 멘 상여를 뒤따르며 할아버지 할머니 묘소 옆에 아빠를 묻고 돌아왔던 그 선명한 날들. 그 기가 막힌 슬픔 속에서 엄마는 충분히 울 시간조차 없었다.

자식들이라는 이름의 우리는 참으로 지혜롭지 못했다. 엄마의 슬픔을 덜어드린다는 구실로, 아빠의 유품을 서둘러 정리했다.

“아빠 옷이 있으면 자꾸 생각나서 더 힘들다”는 논리를 앞세워, 엄마가 천천히 정리하시겠다던 말도 무시한 채 아빠의 흔적을 모조리 치워버렸다. 엄마는 딱 한 벌만이라도 남겨두길 바라셨는데, 우리는 그 작은 소망마저 앗아갔다.

이제야 알겠다. 그때 내가 뺏어버린 것은 낡은 옷가지가 아니라 엄마의 ‘추억’이었음을.

전국으로 출장을 자주 다니셨던 남편을 출장 중이라는 착각으로라도 슬픔을 잠시 잊고 싶었을 엄마의 간절함이었음을. 그 옷에 얼굴을 묻고 아빠의 체취를 맡으며 따스한 온기를 느끼고 싶었을 엄마의 외로움이었음을.

붙잡을 옷 한 자락 없이 엄마는 밤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얼마나 사무치게 우셨을까. 엄마의 슬픔의 크기를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나의 무지함이 이제야 아리게 다가온다. 지금의 나보다 훨씬 더 황망했을 그 시절의 엄마에게 다가가, 말없이 안아드리고 함께 목놓아 울어드리고 싶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의 옷들을 정리하지 못한다. 빼곡한 옷들 사이를 손으로 쓸어내리며, 버리지 말고 그대로 두자고 다짐한다. 이것은 짐이 아니라, 내가 견뎌내야 할 그리움의 무게이자 엄마에게 미처 다 하지 못한 참회의 증거이기도 하니까.


건강하셨던 아빠의 갑작스러운 부재는 우리 삶의 궤도를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이별의 허망함을 목도한 뒤로, 그는 '함께하는 오늘'에 모든 것을 걸기 시작했다. 마치 내일은 없을 사람처럼, 그는 가족과의 여행을 계획하고 추억을 쌓는 일에 열을 올렸다.

2006년 서유럽 여행이 그랬다. 열흘이라는 긴 시간과 적지 않은 비용 앞에 망설이던 나와 달리, 그는 과감했다. 이탈리아 번화가 골목을 누비며 아이들에게 손목시계 하나씩을 채워주고 뿌듯해하던 그의 미소가 지금도 선명하다. 그 마음이 예뻐 홍콩 경유지 면세점에서 나도 큰맘 먹고 나의 비자금을 털어 그에게 시계를 선물했다. 그것은 단순한 시계가 아니라 그가 우리에게 준 사랑에 대한 나의 작은 응답이자, 나의 기쁨, 그의 자랑이었다.

세월이 흘러 잔흠집이 난 시계를 오버홀(Overhaul)하며 그는 종종 말했다.

"이 시계, 나중에 첫 사위 보면 주고 싶어."

당신을 위해 사준 것이니 당신이 차라는 나의 만류에도, 그는 자신보다 사위에게 더 잘 어울릴 거라며 허허 웃곤 했다.

그가 천국으로 떠나고 난 뒤, 긴 잠에서 깨어난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그의 유지를 받드는 것이었다. 그가 1년도 채 사랑해주지 못한 사위를 불러 시계를 건넸다. 손목에 차고 있지 않으면 멈춰버리는 오토매틱 시계의 특성상, 시계를 계속 움직이게 하는 자동 시계와인더 보관함까지 살뜰히 챙겨 보냈다. 시계와 벨트, 그리고 그의 자동차까지... 그 묵직한 것들에 그의 마음을 담아 보냈다.


얼마 후, 벚꽃 나들이를 간 큰딸과 사위에게서 사진 한 장이 도착했다. 사위의 손목에서 반짝이는 시계와 손에 든 차 키. 그의 바람대로 사위의 손목 위에서 시계는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가 곁에 없어도 그의 시간은 사위의 손목 위에서 딸을 바라보며 여전히 흐르고 있는 것만 같아 안도감이 들었다.

하지만 그 안도감 뒤로 막내딸의 한마디가 날카롭게 가슴을 파고들었다.

"엄마, 아빠의 추억을 그냥 두면 안 될까요?"

그제야 아차 싶었다. 엄마의 슬픔을 덜어주려 아빠의 유품을 서둘러 치웠던 그 옛날 나의 무지함을 이제야 참회하고 있었으면서, 나 또한 '그의 바람'이라는 명목하에 막내딸이 간직하고 싶었을 아빠와의 연결고리를 너무 빨리 떼어내 버린 것은 아닐까. 사위의 손목에서 빛나는 시계를 보며 흐뭇해하던 나의 마음 이면에, 아빠의 빈자리를 마주해야 했을 막내의 서운함을 미처 살피지 못한 것이 저리게 다가왔다.


옷장을 비우고 채우는 일, 유품을 건네고 간직하는 일. 이 모든 과정은 결국 남겨진 이들이 각자의 속도로 이별을 받아들이는 과정임을 다시금 배운다. 누군가에게는 '대물림'이 위로가 되지만, 누군가에게는 '머무름'이 치유가 된다는 것을.

이제 나는 비어 가는 장롱 앞에서 더 이상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누군가에게는 물려받은 시계가 아빠를 기억하는 방식이겠지만, 막내에게는 아빠의 냄새가 밴 셔츠 한 장, 늘 곁에 두던 작은 소품 하나가 아빠와 연결되는 생명줄일 수 있음을 알기에.


마음을 가다듬고 막내에게 조용히 말을 건네본다.

"막내딸아, 아빠 이름으로 너를 위해 작은 선물을 해줄게. 아빠가 너와 항상 함께 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볼래? 네 마음에 아빠의 온기가 선명하게 만져질 것을 찾아보자."


기억은 물건에 깃들고, 그 물건은 다시 살아갈 힘이 된다. 사위의 손목 위에서 힘차게 돌아가는 시곗바늘처럼, 그리고 막내의 품에 남겨질 아빠의 조각들처럼, 그는 우리 곁에서 각기 다른 모습으로 여전히 숨 쉬고 있다.

옷장 문을 닫는다. 그 안에는 아직 정리하지 못한 옷들이 가득하지만, 이제 그것은 짐이 아니라 우리 가족을 하나로 묶어주는 따스한 기억의 숲이다.

아빠가 남긴 사랑의 조각들을 하나씩 품에 안고, 우리는 비로소 각자의 속도로 이 봄을 건너갈 준비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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