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비 은혜
'조용한 절망'에 잠겨 살지 않은 김영하 작가의 외숙모의 삶을 끝으로 <단 한 번의 삶>의 책은 끝났다.
눈부시게 밝은 토요일이다. 나무의 새순이 수채화 느낌의 연둣빛을 뽐내고 세상은 온통 빛의 잔치라도 벌인 듯 찬란하게 일렁인다. 정성껏 차린 아침 식단을 마주하며 나를 다독여보지만, 창밖의 생기는 속도 없이 나를 앞질러 간다.
집안 가득 환기를 시키다 문득, 4월이 가기 전에 에어컨 점검을 하라던 그의 당부가 떠올랐다.
그가 남기고 간 일상의 숙제들이 마치 여전히 그가 이곳에 실존한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에어컨을 켰다. 어느 방은 시린 바람이 금세 차오르는데, 또 다른 방은 기계음만 공허할 뿐 바람이 시원찮다. 여름은 예고 없이 들이닥칠 텐데, 고장 난 냉기처럼 내 마음의 어느 구석도 온전치 못하다. 결국 AS 기사를 부르기로 하며, 그가 없는 빈자리는 무엇으로도 수리할 수 없는 상실감으로 대신 채웠다.
오늘은 도서관에 가려 마음먹었던 날이었다. 하지만 에어컨 점검을 계기로 잊고 있던 그의 또 다른 숙제가 생각나 서둘러 방향을 틀었다. 정성껏 감사 카드를 쓰고, 그가 생전에 그토록 아껴두었던 술 한 병을 들고 집을 나섰다.
그이는 위스키 컬렉터였다. 술 한 잔 마시지 못하는 사람이 왜 술을 모으냐고 물으면, 그는 “좋은 날이 오면 친구나 지인들에게 좋은 술 한잔 돌리고 싶어서”라고 답하곤 했다. 결국 본인은 그 ‘좋은 날’의 술 한 잔을 나누지 못하고 떠났지만, 남겨진 술들은 이제 그의 유언이 되어 고마운 이들에게 하나둘씩 전달되고 있다.
우리 부부의 ‘왕터살이’에 봄은 참으로 바쁜 계절이었다. 나는 모종 가게를 방앗간처럼 들락거리며 꽃모종을 사다 날랐다. 커피 한 잔, 점심 한 끼 값을 아껴 산 모종들이 정원 구석에 심어지면 티도 나지 않았지만, 5월에 예뻐질 모습과 6월의 꽃놀이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내 용돈이 기꺼이 그 흙 속으로 스며들어도 참 신나고 재미난 시절이었다.
그 무렵, 제법 큰 꽃집을 운영하던 그의 친구 권 사장은 매년 봄이면 꽃모종을 트럭 가득 싣고 와 우리 집 주차장에 내려놓고 가곤 했다. 내가 주저하며 다 구입하지 못했던 꽃모종 앞에서 내가 얼마나 신나 했었는지? 안 먹어도 배부른, 부유한 정원사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수국 모종을 사러 가면 내가 산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덤으로 실어주던 넉넉한 사람이었다. 먹는 것보다 눈에 들어오는 예쁜 것에 더 설레는 나에게, 그는 더할 나위 없이 고마운 은인이었다.
“여보, 꼭 그 친구분을 초대해서 이 예쁜 정원에서 식사 대접해요. 주신 꽃들을 이렇게 잘 키우고 있다고 자랑하고 싶어.”
나의 간곡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지역사회봉사로 바쁜 친구를 모시는 일은 쉽지 않았고, 무엇보다 남편은 병세로 인해 누군가를 맞이할 에너지가 없었다. 휴직 후 시간이 많아진 남편이 권 사장을 만나러 가면, 친구는 언제나 맛있는 밥을 사주며 그를 위로했다.
남편은 친구 권사장을 만나고 돌아오면 오늘 무엇을 먹었노라 아이처럼 이야기하며, 본인의 부재 시에는 꼭 권 사장을 챙기라고, 좋은 술 한 병을 보내주라고 당부하곤 했다. 그리고 남편이 떠나던 마지막 길, 권 사장은 그가 그토록 소원하던 주황색 장미 바구니로 친구의 마지막을 아름답고도 눈물겹게 배웅해 주었다.
오늘 드디어 그 숙제 하나를 마쳤다.
꽃집으로 가는 중에 전화를 하니 축구 시합 중이라며 직원에게 주고 가라고 해, 못 뵐 줄 알았는데 어느 틈에 가게로 와서 나를 맞아주었다.
짧은 인사를 나누고 돌아오는 길, 그가 더 사무치게 생각났다. 친구들 중 누구보다 젊고 활기찼던 그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시렸다.
돌아오는 길에 추모공원에 들러 참 선하고 밝음이 좋았던 그를 한참 그리워하다 집으로 왔다.
현관 앞에 멈춰 선 나는 다시금 무거운 정적과 마주했다. 밖은 지나치게 화려한 생기로 빛나는데, 문을 닫고 들어온 이 공간은 지나치리만큼 생기가 없다.
집은 원래 이렇게 적막이 흐르는 곳이었을까. 아니면 그의 부재가 온 집안의 생기마저 앗아간 것일까.
먼지 하나까지도 멈춰 있는 것 같은 이 고요함이 너무나 낯설다.
찬란한 봄볕 아래, 나는 차마 밖으로 내뱉지 못한 눈물을 조용히 삼킨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나를 위한 저녁을 준비하며, 가여운 엄마가 되지 않기로 했다.
상실의 무게에 짓눌려 잠시 나를 놓았던 순간, 식자재들은 생기를 잃고 시들었다. 버려지는 음식물들 앞에서 문득 정신이 번뜩 들었다. 도마 위를 두드리는 칼 소리가 정적을 깨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아이들에게 나의 슬픔이 짐이 되게 할 수는 없다. 아이들의 삶은 그 자체로 얼마나 바쁘고 소중한가. 그들은 이 찬란한 봄을 마음껏 누려야 하고, 그 아름다움 앞에서 오롯이 기쁘고 행복해야 한다. 나를 걱정하느라 그들의 봄이 그늘지는 것을 나는 원치 않는다.
<단 한 번의 삶>에서 기억에 남는 내용 중,
인류학자 클리퍼드 기어츠는 말했다. "누구나 수천 개의 삶을 살 수 있는 조건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결국에는 그중 단 한 개의 삶만 살게 된다"라고.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조용한 절망 속에서 살아간다"라고. 그의 말처럼, '조용한 절망'에 빠져 살기에 남은 시간을 흘려보내기에 내 단 한 번의 삶은 너무나 소중하다. 그의 몫까지 남김없이 살아내려면, 나는 이제 조금 더 바빠져야 하지 않겠나. 그가 남긴 에어컨 숙제를 해결하고, 그가 아끼던 술을 친구에게 전했듯, 나는 이제 그가 사랑했던 이 세상을 정성껏 돌보며 살아가야 한다.
든든하게 저녁을 먹고 나니 차갑던 몸에 온기가 돈다. 비로소 눈물을 닦고 거울 앞에 서서 마음을 다진다.
집은 여전히 고요하지만, 이제 그 고요는 '생기 없음'이 아니라 다음을 준비하는 '평온함'이라 믿고 싶다.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의연하게, 그가 사랑했던 이 봄날의 햇살 속으로 한 걸음 더 밝게 걸어 들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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