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환자 그를 사랑하는 아내
스타벅스에서 " 엔도르핀 은혜님! 주문하신 음료가 나왔습니다. "
그 앞으로 가 내가 주문한 토피넛 라테가 담긴 텀블러를 들고 그 걸음이 나 인양 씩씩하게 주차장으로 간다.
'아놔! 내가 언제 도시에서 살고 싶어 했었나?
물론! 내가 도시에 어울리긴 하지. 하하
그렇지만, 나는 막힘없이 천천히 여유롭게 다니는 지금 여주가 좋다고!
어쩌다가 내가 이 아침에 텀블러에 커피를 들고 도시에서 운전을 한단 말이냐고.'
천당 아래 분당이라는 곳에서
분당서울대학교 병원에서 아침을 맞는 것에
고개를 저으며 혼자 생각을 한다.
차 안에는 영화 <인셉션>의 음악으로 한스 짐머의 'Time' 곡이 흐른다.
왜 이렇게 음악이 무거운지.
그런데 왜 또 이렇게 내 마음 같냐?
위로인지 희망인지 모르겠다.
도로는 막힘없이 쭉쭉 도로가 원하는 속도보다 더 낼 수 있게 그렇게 잘 뚫렸다.
어제 새롭게 바꾼 항암제 약도 그에게 이렇게 막힘없이 쭉쭉 암세포에게로 갔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의 회복도 걸리는 거 없이 제 속도보다 더 낼 수 있기를 바란다. 아주 간절히.
언제부턴가 차 안에서 히터를 잘 틀지 않는다.
아주 추울 때 1분~ 2분 틀까? 잘 트지 않는다.
전에는 추워지기 시작하면 히터를 끈 적이 거의 없었다.
지금은 히터를 틀면 잠이 올까 봐 히터를 끈다.
자동차 안의 차가운 공기에서 냉철한 이성을 잡으려고 애쓴다.
나는 냉철한 이성과, 몹시 요동치는 슬픔과, 옅은 희망, 참는 눈물 그 사이에서 힘겨운 겨루기를 한다.
울다가 앞이 안 보여, 사고 나면 안 되니까 다시 차가운 이성 앞서 눈물을 닦아낸다.
도로 위에 있을 시간이 많아지니, 생각도 많아진다.
최대한 현명해지려고 노력한다.
주말 아침 차량이 뜸한 터널을 지나오는데 내가 영화 <그래비티>의 산드라 블록 같다.
비장하게 우주로 나아가는 우주비행사 여주인공이 된 듯하다. 터널의 적당한 빛과 소음이 꼭 그렇게 느껴진다. 중력이 느껴지지 않는 것 같은 착각.
때맞춰 한스짐머의 인터스텔라 음악이 나온다.
쓸데없이 비장하게 운전을 한다.
나는 분당에서 원주로 대단히 재밌게 드라이빙 중이다.
영화 생각을 하다가, 몇 해 전 아주 용감한 행동을 했던 날이 생각이 났다.
그게 뭐냐면 영화 <헤어질 결심>을 남자와 단둘이 본 거다.
탕웨이가 나왔던 영화로 2022년 당시 참 핫한 영화였었다.
그 영화를 어쩌다 둘이 나란히 앉아서 보게 되었다.
어쩌다?
직장 친목회에서 친목행사로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다.
시간대가 비슷한 영화 서너 편 중에서 선택하는 거였는데, 나는 SF영화도, 마블영화도 관심 없고 해서 아무런 정보도 없는 <헤어질 결심> 영화를 선택했다.
나중에 보니, 딱 3명이 선택했다.
'그래, 셋이서 보면 되지. '
그런데 그 한 사람이 사정이 생겨서 영화를 보러 갈 수 없게 되었다.
결국 나하고 관리자 단둘이 그 영화를 선택했기에,
나란히 앉아 팝콘을 하나씩 끼고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나는 영화 볼 때 옆사람 신경 쓰지 않고 몰입해서 보는 경향이 있어, 같이 영화를 보러 가는 가족이나 지인들은 나 때문에 신경 쓰여서 제대로 못 보겠다고, 어쩜 그렇게 영화를 진심으로 보냐고.
칭찬인지 핀잔인지 헷갈릴 그런 말들을 종종 들었었다.
그런데, 그 <헤어질 결심>은 반은 기억나고 반은 기억나지 않는다.
분위기가 이상해질 때가 되면 팝콘에 눈을 두거나, 팝콘을 먹되 옆을 향하여 먹고, 콜라를 마시고.
참 엉성하게 영화를 봤다. 힐끗 옆을 보니 나하고 비슷한 행동을 하고 계셨다. 하하하
참 어색하게 영화를 보면서 후회를 했다가 말다가 그랬다.
나는 그 영화가 야한지 만지, 어떤지도 모른다.
그냥 분위기가 멜랑꼴리해지면 잔기침을 하면서 팝콘만 먹었으니.
영화가 끝나고 영화관을 나오니 다들 난리다.
"어떻게? 두 분이 재밌게 보셨어요?"
" 어. 재밌게 잘 봤어. 영화 좋더라. 잘 만들었더라. 탕웨이가 너무 예뻤어."
솔직히 탕웨이가 예쁜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눈이 높은가?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참 용기 있었던 것 같다.
괴짜 같은 용기, 포기하지 않았던 건 참 잘했다 싶다.
대세에 이끌려 내 주관이 없이 흘러가도록 하지 않은, 그렇게 보내지 않았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참 대견한 일이다. 다시 그 상황이 온다고 해도 나는 똑같이 내 소신대로 보고 싶은 영화를 볼 것 같다.
때론 이목에 이끌려 편리하고자 내 주관 없이 그렇게 그들의 요구대로 따라갔던 적이 참 많았다.
그리고는 이렇게 할 걸, 저렇게 할 걸, 후회를 했었다.
이젠 적당한 선에서는 나를 위한 소신을 지키고 싶다.
누군가를 위한 포기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말이다.
그 영화 선택처럼.
"커피 주문받겠습니다." 할 때, 대세를 따르느라 거의 반사적으로 " 아이스 아메리카노요!"가 아니라,
"저는 대추차요! "라고. 하하하
잠시 자동차 정기점검을 위해 원주로 가는 길이다.
2년 전 신나는 기분으로 찾아왔던 자동차 대리점에 혼자 왔다.
병실을 벗어난 잠깐의 시간, 그곳에 혼자인 게 어색하지만 참아내고 있다.
어색함을 글 쓰면서 이겨내고 있는 중이다.
#엔도르핀은혜 #암환자그를사랑하는아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