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몰라서 행복했던 날

암환자 그를 사랑하는 아내

by 본비 은혜

응급실살이 11일만 인, 2025년 12월 26일 성탄절 특사로 병실에 올라왔다.
왜 지독히도 우리에게만 병실이 안 나왔는지 정말 모르겠고, 그저 병실이 없는 줄만 알았다.


병실에 올라와서는 긴급하게 치료에 들어가, 바로 그에게 쓸 수 있다는 3가지 항암제 중에서 마지막 항암을 시작했다.
2024년 첫 항암으로 세포독성 항암제, 두번째는 표적항암제, 마지막으로 면역항암제를 쓰는 중이다.

벌써 병실에 들어온 지도 13일이 되어 간다.
병원에 오니 가뜩이나 빠르게 느껴지는 시간이 더욱 빠르다.
낮이 몇 시간 있다가 어둑한 시간이 오면 이내 어두워져 하루가 가고,
어둑한 시간 속에서 간호사들이 마치 알람처럼 다녀가면서 아침이 시작된다.

우리는 완화병동에 있다.
완화 병동?
아프지 않게, 고통을 완화해 주는 그냥, 병동의 이름인 줄 알았다.
자그마치 열흘이 넘도록 있으면서도 그냥 그런 줄 알고 씩씩하게 다녔다.


그가 마약성 진통제인 모르핀 주사를 놔 달라고 해도, 두말도 안 하고 놔주고
하루에 두 번도 놔주는 게 이상하면서도, 암 환자에게는 중독성이 없다고 하니 그래도 되는가 했다.
그걸 맞아야 잠도 푹 자고, 고통스러워하지 않으니 그저 그 약물이 신기하고 고마웠다.

어제저녁,
늘 냅다 씩씩하게 걷는 복도를 천천히 걸으면서 벽에 게시해 놓은 게시물들을 읽어봤다.

'완화 병동'에 대한 설명이 잘 나와 있었다.
완화의료 병동은 치료가 아닌 ‘삶의 질 향상’에 초점을 둔 병동이라고.
주로 말기 암이나 중증 질환 환자들의 통증과 증상을 덜고, 편안하게 지내도록 돕는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치료 목적보다는 돌봄을 목적으로 하되, 포기는 아니고 남은 시간을 최대한 편안하고 의미 있게 보내도록 돕는 곳이라고.
완치를 기대하기보다는 통증을 줄여주는 곳이라는 것을 알아버렸다.

그래서 병실이 잘 안 났었던 거구나.

그걸 다 읽고,
병실로 들어오는 길은 막막했다.
희미하게 부여잡은 끈이 너덜너덜 낡아버린 느낌이다.

나의 질린 얼굴을 보면서,
그는 왜 그러냐고 묻는다.
"완화 병동에 대해 지금 제대로 알았어."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고, 얼굴을 돌리면서 말한다.

그래서 그렇게 요양병원이나 호스피스 병원을 알아보라고 내게 말을 했던 거구나.
난 굵었다 얇았다 하는 희망을 부여잡았는데.
그렇게나 나에게 알아봤느냐고 독촉했었던 거구나. 시간이 얼마 없어서 나에게 휴직을 바랐던 거구나.
깜깜한 밤이, 불 꺼진 병실이 다행이었다.
난 알면서도 인정하기 싫었던 건지.
어느 시간은 '괜찮아!' 하며 희망을, 어느 시간은 절망을, 그를 보면서 겨울바람에 흔들리는 여린 나무처럼 흔들거렸다.

억지로 잠든 밤에,
커튼 하나로 분리된 옆 환자 어르신이 호흡이 없다고 새벽 1시 30분에 온 간호사들이 출동을 했다.
늘 맑은 정신으로 말씀은 하셨지만, 심장과 폐의 문제로 호흡이 힘들어하신 분이라 그렇게 위기를 맞는 것이 이상할 것도 없는 상황이다.
잠들기 전 살짝 벌어진 커튼 사이로 앉아서 주무시는 것을 봤는데.

그 밤엔 더욱 힘들어하시면서, "모르핀!"을 그렇게 찾으셨는데.

"환자분~" 하는 소리에 벌떡 깨어 간호사들에게 공간을 내 드리고자 내 보호자 베드를 그의 침대로 당겨 앉았다.
그 긴박함과 소란스러움을 처음 봤다. 고작 커튼 하나 사이에서. 다 느껴버렸다.
사람을 살리는 의술이, 저들의 숭고한 직업임이 느껴졌다.

간호사들이 빠르게 움직이며, 열댓 명의 사람들이 그분을 살려내고자 애를 썼다.

그 움직임에 우리 병동이 다 들썩거리는 듯했다.

우리는 두 손을 마주 잡고,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그 어르신을 위해 기도를 했다.
낮에 주치의는 보호자와 꼭 연락을 해서 만나야 한다고 했는데, 의사는 급박함을 알았을까?

무섭지도 않았다.
놀라지도 않았다.
우리는 그 상황을 받아들였다.

한 사람의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는 이곳이 참 고마웠다.
다 죽어가는 노인도 살려내려는 의지. 그게 참 감사했다.
결국 그분은 중환자실로 내려갔고, 어수선한 병실은 아침까지 그대로였다.
병실에서 멀지 않은 죽음을 바라봤다.


그는 2024년 암선고를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보건소에 가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다.
무의미한 생명 연장은 하지 않겠다면서 연명치료 거부를 신청했다.
나도 시간이 나면 가서 신청할 거다.
그리고 그의 의견에 동의한다.
고통을 부여잡고 삶도 아닌 생명을 유지하는 것,
그것을 고스란히 지켜봐야 하는 가족을 배려해야 하는 것에 동의한다.

이다음에,

이다음에,
우리는 좋은 꿈 꾸는 듯 미소 짓는 마무리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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