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돌상 같은 생일상

암환자 그를 사랑하는 아내

by 본비 은혜

"많이 늦은 돌상이야.

너 어려서 돌상 못 받았지?

실타래 어디 있니? 만 원짜리 한 장도 올려놓고, 연필 어디 있니?

너 뭐 잡을 거야?"


몇 해 전,

친구 생일에 친구가 운영하는 작은 옷가게에 셋이 모였다.

풍선이랑 풍선주입기 세 개를 준비해서는

다 같이 불어서 꾸미는데, 풍선은 빵빵 터지고

그때마다 우리도 빵빵 웃음이 터진다.

반백년 살아가는데 우리 갈수록 어려진다고 까르르까르르 별스럽지 않은 대목에서도 배꼽 잡고 웃는다.


"우리, 추억할 일들을 많이 만들어 놓자.

그래야지 이다음에 심심하지 않게 두고두고 얘기하지~

내일보다 젊은 오늘, 이쁜 사진 많이 남기자!"


그 흔한 카메라봉도, 카메라 삼각대도 하나 없어

선반에 세워둔 휴대폰 셀카기능을 살려 팔을 쭈욱 펴서 손바닥 인증하고자 애달프도록 손을 편다, 휴대폰 카메라가 사진을 찍어주도록 박수를 친다, "찰칵!"하고 외친다.

한 장 한 장 찍기가 힘들지만 사진을 찍으며 웃었다.

사진을 보고 또 웃는다.


내 최애 친구 생일이었다.

결혼 시점이 2년밖에 차이 나지 않은 데다 아이들 나이가 엇비슷하고, 남편의 나이도 같고, 딸 둘도 같고, 무엇보다 가까이 살아서 아이들을 동반한 추억으로 얘깃거리가 풍부한 친구다.

아이들이 한참 중, 고등학교 다닐 땐 서로 바빠서 아이들은 고사하고 우리도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이제는 우리의 손과 우리의 시간이 필요하지 않은 딸들에 친구는 잠시 허무하다며 공허감에 빠졌었다.


친구는 딸들에게 최선이었던 엄마고, 늘 딸만 바라보는 엄마였었다.

주말이면 김치랑 반찬 만들어 서울에 사는 딸내미 원룸에 가서 청소해 주고 오는 게 낙이였는데, 직장을 잡은 딸들은 주말이 바빠 보이는데, 간다고 하기가 눈치가 보였단다.

착한 애들은 오지 말라는 말을 못 하고 불편해하는 것 같단다.

그러면서 이렇게 나이 드는가 싶다고 빈둥지증후군에 힘들어했다.


나는,

"너 하고 싶은 거 다 하느라 바쁜 것이지 않느냐?"며 책망하 듯한 말을 들었었다.

서운하게 들린 말을 곱씹어서 생각하니 그 말이 틀린 말도 아니기에,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늘 있었다.


나는 열심히 일 한다고 생각했는데,

달리 보면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이었다.

지금도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고자 하는 계획을 꾸민다.


나는 친구처럼 '딸들에게 최선인 엄마였나?'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열심히 만들어 먹인 때도 있었지만, 안 그런 적이 많고, 원룸에 청소를 해주고 온 적은 한 손에 꼽고도 남는다.

다만, 최선을 다해 기도했었고, 기도할 뿐이다.

그래서 아직은 허무와 우울을 느끼지 않고 산다. 고맙게도.


친구는 바쁘게 살아내서 빈둥지증후군에서 벗어났고, 쪼들렸던 생활에서 이젠 삶에 여유가 있어 살뜰히 나를 챙겨준다.

내 생일엔 가족들보다 먼저 직장으로 선물을 챙겨 들고 축하해 주는 고마운 친구다.


지금이야 친구부부가 사이가 좋지만,

내가 둘째를 낳기 전에는 조금 힘들었다.

가끔 밤에 전화가 오면 우는 친구 달래주고,

힘든 친구를 만나러 밤중에 나가 차 안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 친구는 자기 때문에 우리 둘째가 늦어진 거라고 종종 미안해하며 웃는다.

그럴지도, 아닐지도.


꽤 오랫동안 친구내외를 놓고 기도를 했다.

이혼하고 싶다고 해도 말린 터라,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 이름을 부르면서 기도를 해왔었다.

소중한 친구의 행복한 가정을 위해서.

위기가 왔다가도 남편을 지극히 사랑하는 친구는 그때마다 넘겨냈다.

그리고 늘 세트로 움직이는 지금은 알콩달콩 보기 좋다.

고맙게도 보기 좋다.


이제 얼마 지나면 내 생일이 온다.

생일날에는 내 직장 근처 함박스테이크 맛집에서 부부동반 넷이서 먹자 했는데.

그가 꼭 사주겠다고 했는데.

함박스테이크를 못 먹어도 되니, 일어나 미역국에 밥 한 숟가락만 먹어주면 좋겠다.

그는 다시 밥을 못 먹고 있다.


삶은 얄궂게도 롤러코스터다.

여러 가지로 다시 힘들어진 친구 얼굴에 그늘 한점 없이 밝게 살도록,

더 환하게 웃도록 내가 뭔 일을 또, 자주 계획해야겠다.

앞으로도 오래오래 서로의 생일을 챙기면서 행복하게 살아낼 우리를 그려본다


내가 있어 좋지?

네가 있어 좋다!


다음엔 뭘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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