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절대 빼앗길 수 없는 한 가지

암환자 그를 사랑하는 아내

by 본비 은혜

비가 내려서 그랬나?

간밤 우리 병실 네 사람은 간만에 단잠을 잤다.


우리 보호자들은 피곤해서 푹 잠들었지만,

환자 두 분은 약의 도움을 받아서 잤다.

그저께 밤에는 수면유도제를 먹고 잠들었는데, 그 약으로 낯선 남편의 모습이 보였다.

왜 그러지?


의사 회진 때,

모르핀 주사 때는 없던 모습이 보였다고 물어보니,

간이 안 좋은 사람에게는 수면유도제가 해독이 안되어 길게 가는 경향이 있단다.

깨어야 할 시간에 깨지 않고, 섬망의 모습도 있을 수 있단다.

그가 딱 그랬다.

차라리 모르핀 주사를 맞는 게 낫겠다 싶다.

수면유도제가 그에게 더 무섭게 작용을 했다.


어젠 모르핀 주사를 맞고 잠들어,

아침에 훨씬 깔끔한 모습으로 늦게 일어났다.

나아 보여 마침 온 밥을 먹어보겠느냐고 물었다가,

가뜩이나 큰 눈이, 얼굴 살이 빠져 무섭게 큰 눈이 나를 다그친다.


"안 먹는다고! 못 먹겠다고!

냄새도 맡기 싫으니까 얼른 먹고 치워!"


낮고도 힘겨운 호통을 들으니, 가뜩이나 입맛이 없는데 식욕은 그가 코피를 닦아 버린 휴지와 함께 쓰레기통에 처박혔다.

커튼 하나 사이에 둔 옆 침대 칠순의 환자는 식판 앞에서 내외가 참 다정하다.

"고사리를 무르게 참 잘 볶았어.

이거 표고버섯이야? 내가 느타리는 알아."

시판용 김도 맛있다며, 참기름이 들어갔네 하면서 맛있게 드시는 소리가 들린다.


맛있다며 먹는 밥, 그 시간이 참 소중하다 싶다.

환자들이 밥을 맛있게 먹는다면, 그건 희망이다.

별거 아닌 일상이 사무치게 그립다.

소중한지 몰랐던, 때론 귀찮았던 식사 시간이 이렇게나 부럽다니.

부러움을 넘어서 아리다.


창밖으론 눈발이 날린다.

내리는 눈이 이렇게 슬프게 느껴진 날도 또 없다.


며칠 전 옆 환자의 심폐소생술을 바로 앞에서 본 것이 그에겐 큰 충격인 것 같다.

괜찮다, 아무렇지 않다고 말해도,

이후 그가 느끼는 것은 사뭇 달랐다.

죽음 앞에서, 그것도 내가 죽는다는 것 앞에서 괜찮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다만, 나를 안심시키고자 하는 남자다움인 거지.


2인실이 답답하다고 연신 얘기를 한다.

옆자리 환자의 기침소리가 심상치 않다. 보호자의 기침소리도 내내 불편했다.

게다가 한 번하면 잘 멈추지 않는 딸꾹질 소리가 너무 신경 쓰여 그이는 숨을 못 쉬겠단다.

그가 1년 전 항암하면서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딸꾹질이 심했었기에, 트라우마가 있는 것 같다.

옆 환자의 모든 불편한 것이 본인의 고통처럼 느끼고 있다.

이상한 모습에 서둘러 병실을 옮겨달라고 부탁을 했다.

다행히 오늘 4인실에 창가 자리가 나 그리로 옮겼다.

1인실은 나오지 않으니, 아쉬운 데로 4인실 창가로 갔다.


방이 넓어지니 창도 넓어졌다.

시야가 트여 그는 한결 편안해한다. 그래서 그런가 내내 잔다. 내내 잔다.

갈수록 먹는 게 없어 깨어 있는 시간이 5분도 채 되지 않는다.

오늘은 통틀어 깨어있는 시간이 1시간도 안된 것 같다.

주사를 맞지 않아도 참 잘잔다.

고통이 무뎌지는지, 아파하지도 않고 잠만 잔다.


"내 동생"이라고 저장해 둔 그 좋아하는 처남이 왔는데도, 보고 싶어 했는데도, 왔느냐는 말 한마디 하고는 이내 잔다.

할 얘기가 많을 것 같은데.

토요일에 동생이 온다니 매형이 주는 용돈이라며 적지 않은 돈을 꼭 주라고 당부를 했다.

엄마를 돌보는 동생이 내내 대견하다며, 애쓴다며 보태주란다.

주는 것도 못 보고 잔다.


병실에서 노트북을 꺼내면 글 쓰는 소리를 거슬려해서 조심스럽게 자판을 두드린다,

키보드 스킨커버를 사서 덮고도 최대한 조심스럽게 자판을 누른다.

안 자면 안 잔다고, 소리 나면 소리 난다고 예민했는데,

눈을 떠, 나랑 눈 마주치고 몇 시인지 확인하고는 자라고 말하고는 이내 잔다.

깨어 있어, 내가 노트북을 슬며시 덮는 게 마음이 좋겠다.

내가 조심해서 그런 건지, 그가 힘이 없어진 건지.

바로 잔다.

그 싫던 잔소리가 벌써 그립다.


밤이 되니,

4인실이 더 조용히 느껴진다.

서로 최대한 조심하는 게 보이고, 간병인이 가족이라 그런지 일부러 친절한 척,

잘하는 척하지 않고 말을 아끼는 것도 공동 공간을 쾌적하게 하는 것 같다.

어르신을 돌봤던 조선족 간병인은 잘하는 걸 보여주려는 듯 시도 때도 없이 친절을 과시하는 목소리가 참 커서 우리가 많이 힘들었었다.


병실에서 참 다양한 것들을 체험한다.

세상에, 옆사람 방귀 뀌는 소리조차 부러울 일인지.

생로병사를 바라보면서, 살면서 더럽다 했던 것들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 나를 바라본다.

건강한 몸을 만들어가기 위한 필수조건임을 깨닫게 되니, 이 또한 괜찮아진다.

아이 키우면서도 똥이 더럽다 했는데, 내가 나이가 들어가는 건지.

철이 들어가는 건지.


주일을 지나고 월요일이 되면,

그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있을 예정이라고 아침에 주치의가 슬쩍 나를 복도로 데리고 나가 얘기해 줬다.


"제가 환자분을 보면서 이렇게 저렇게 해봤는데, 잘 안되네요. 지금으로써는 할 게 없어요."


간과 콩팥에 문제가 큰데, 뭐라도 하기엔 너무 고통스럽고 때가 늦었다고.

신장 내과 선생님이 밤 10시에 다녀가면서 얘길 해줘서 이미 들을 내용이다.

더 이상 그를 위한 어떤 것도 없음을 들었었다.


이미 아는 바이고, 단단히 마음을 먹어 눈물이 안 나올 것 같았는데,

그렇게 눈물은 났고,

병실로 들어와 잠든 그이 앞에 앉으니, 더 이상 나올 눈물도 없을 텐데,

허벅지 위로 뚝뚝 떨어진다.

혼자 있으면서 계속 눈물을 닦아냈다.

아무것도 하기가 싫다. 내 몸에서도 에너지가 다 빠져나간 것 같다.


병실을 옮기고, 친구가 다녀간 오후 내내 무기력과 싸웠다.

우울에 넘어졌다. 넘어진 김에 쉬었다.


자정이 지나서 깼다.

휴대폰 갤러리에서 우리의 사진을 찾아보다가 몇 년 전 사진 찍어둔 책 한 페이지를 읽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세우고 노트북을 켰다.

그 한 페이지만 찍어놔서 무슨 책인 줄 모르겠는 아쉬움이 있지만,


유대인으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정신 의학자 빅터 프랭클은 가진 것을 모두 빼앗기고 최악의 상황에 놓인다 해도 우리에게는 절대 빼앗길 수 없는 한 가지가 있다고 했다. 그것은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까에 대한 우리 자신의 선택권이다. 즉,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도 우리에게는 언제나 선택권이 있다. 무기력하게 누워서 천장만 보고 살건지, 일단 밖에 나가할 일을 찾아볼 건지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2024년 1월 5일에 난 대체 무슨 책을 읽고 있었던 거였지?

찾아보려면, 우선 일기장을 찾아야 하는데 일단 그건 냅 두자!

참 기가 막힌 타이밍이다! 나를 위한 안전장치가 곳곳에 있었네.


그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도 나에게는 선택권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겠다.

선택지 앞에서는 망설임 없이 항상 최고와 최선만 생각해야지.

이 또한 후회를 덜한 방법일 테니.

뜬금없기는 하지만, 역시 책 속에 길이 있긴 하구나!


밤이 깊었다.

새롭게 시작되는 오늘, 절대 빼앗길 수 없는 한 가지에 최선을 다해볼 작정이다.


202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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