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하나님이 헷갈리시겠다.

암환자 그를 사랑하는 아내

by 본비 은혜

일상을 사는 사람은 무엇이든 할 만해야 한다.

그 일상을 간절히, 간절히 소망하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오늘 살기 버겁다고 하지 말자.

오늘 일이 많다고 투덜 되면 안 된다.

간절히 그 자리를 소망하는 취업준비생들과 두 발로 씩씩하게 일하기를 소망하는 환자들 앞에서는 무엇이든지 신나게 해내야 한다. 그것이 일할 수 있는, 건강한 우리가 있는 자리에서 해야 할 도리인 것 같다.


그는 고통이 얼마나 심한지 빨리 죽고 싶다는 말을 한다. 빨리 데려가 달라고 한다.

나는 그의 고통이 얼마나 심한지 알 수 없다.

외형상 그는 피를 흘리는 것도 아니고 큰 상처가 보이는 것도 아니다.

살이 빠져 선이 더 날카로워진 얼굴과 복수가 가득 찬 터질듯한 배와 부종이 발까지 내려가 푸석한 발목이 눈에 들어올 뿐이다.

그가 아파하고 힘들어할 때마다 도와줄 무엇이 없다. 고작 "물 좀 먹을까? 괜찮을 거야"라고 손을 쓰다듬거나, 등을 닦아주고, 손을 잡아주는 거 외에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그것뿐이라 "뭐 좀 먹을래"라고 하면 찡그린 얼굴로

"나한테 뭐 좀 먹으라고 하지 좀 마. 나 힘들어 못 먹어. 먹을 수가 없어" 원망 섞인 눈빛을 가득해서 기운 없는 목소리로 말을 한다.


밥 먹고 똥 싸는 것까지도 버거운 그이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어떤 걸 더 해보라고 할 수 있을까?

"여보, 하나님은 참 헷갈리시겠다. 자기가 빨리 죽고 싶다고 데려가 달라고 하면, 하나님은 누구 기도 들어줘야 돼? 지금 당신을 위해서 많은 사람들은 자기를 살려달라고 기도하고 있는데, 정작 당사자는 빨리 데려가 달라고 하면, 하나님은 누구의 말을 들어줘야 돼? 왜 하나님 헷갈리게 해? "

그냥 가만히 힘없이 나를 바라다본다.

"그래 알았어. 그럼 내가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할게. 하나님 아프지만 않게 해 주세요. 고통스럽지만 않게 해 주세요."

그래, 차라리 그게 낫겠다.


마약성 진통제를 5mm를 맞았다.

하루 종일 비몽사몽인 것 같다. 잠을 너무 많이 잔다. 그것밖에 맞을 수 없는 상황이 눈물 난다.

비마약성 진통제는 이미 응급실에서 많이 맞아 효과 없어 잠을 잘 수가 없단다.

그게 너무 센 것 같으니 3mm로 낮춰 달라고 얘기를 했다.

그걸 맞고 잠이 드는 걸 보고 나는 나도 잠을 잤는데, 새벽에 간호사가 몇 번을 왔다 갔다.

잠을 못 잔다. 고통을 참으며 누웠다 앉았다, 누웠다 앉았다. 그가 고작 침상에서 참아내는 방법이다.

" 안 되겠어. 다시 5mm로 놔 달라고 해야겠어. 그래도 그건 의존성은 없는 약 이래.

그냥 나 잠 좀 자고 싶어. "

사실 깨어 있어도 할 게 없고, 눈을 감고 자야 고통을 잊는다.


세상 많은 것들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낚시든 물고기와 비행기, 술, 여행지든 그의 YouTube 채널은 온갖 채널이 추가되었다.

주변 사람들의 일에도 관심이 많아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그렇게 찾아 도와주며 행복해하고,

여기저기 관심이 많아 아는 것도 많고, 먹고 싶은 것도 많은 사람이다.

그 덕분에 나는 많은 곳을 다녀봤고 다양한 것들을 경험하고 맛도 봤다.


작년에 항암을 시작하면서, 그리고 올해 이사를 하면서 그의 옷들을 많이 비워냈다.

그는 은행원으로 양복이 꽤 많았다. 사계절 양복과 좋은 날에 입을 의전용 옷과 살 빠지면 다시 입을 거라는 양복들.

그의 장롱 칸은 없을 것 같은 그의 옷이 그렇게 꽉 찼었다.

셔츠들도 컬러풀하게 많았다. 사실 아직 포장도 뜯지 않은 셔츠들도 몇 벌 있다.

그 옷들을 많이 비워냈다.

입을 일이 없을 거라고 보기 싫다고 치우라고 하면서도 계절별로 한 벌씩은 두었으면 하는 눈치였다.

저걸 언제 입으려고 하나, 하면서 더 생각하지 않고 그가 원하는 대로 두었다.


그가 병실에 올라와서는 나에게 희미하게 들릴까 말까 한 소리로 얘기를 한다.

"올해처럼, 지금처럼만(재발 전) 괜찮다면, 내년에 내년엔 복직을 해 볼까도 했는데, 마지막 1년 직장 생활을 잘 마무리해 보고 싶었는데 그게 안 되네. 내 마음처럼 안 되네. "

그는 2차 휴직원을 작성하고 나에게 등기우편을 보내 달라고 했다.

그는 30년 넘은 직장생활을 멋지게 보람 있게 마무리하고 싶었을 것이다.

2월 22일이면 그는 입사 37년이 된다.

그가 힘들게, 서럽고, 외롭고, 억울해도 참아낸 시간들이다.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우리 가족은 든든한 울타리 안에서 편안하고 편리하게 살았다.

그가 수고로이 일함으로 인해서 우리 가족은 아주 많은 것을 누리고, 가질 수 있었다.


지난 그의 재직 30년 기념일이 되던 해에 뭔가 작은 이벤트를 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작은 현수막을 만들고 케이크와 꽃을 사서 그의 사무실에 갔었다.

그는 작은 사무소 관리자로 있었다.

은행 문을 닫기 전에 들어가,

" 오늘 이 사람 재직 30주년이에요. 같이 축하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오늘 함께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아는 직원에게 부탁을 했다. "오늘 괜찮으시면 이 사람과 직원들이 다 같이 저녁 식사를 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저녁 식사 비용은 이 카드로 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갑작스럽게 미안해요"라고 내 카드를 내밀었다.

그들은 고맙게도 갑작스러운 나의 서프라이즈에 흔쾌히 너무 좋아해 줬다.

"저녁 먹고 2차까지 하고, 천천히 오세요. 제 카드 오늘 쓰시는 데는 한도 없으니 편하게 쓰세요." 짠순이 내가 폼 나게, 아주 행복하게 그의 사무실 나왔다.


생각보다 일찍 밥만 먹고 왔다며, 그가 행복한 표정으로 집에 들어왔다.

어깨에 뽕은 10개쯤 차 올라왔다.

고민 고민하면서 한 작은 선물에 많이 행복해했다. 식사 비용도 많이 나오지 않았다.

그가 우리 집의 가장으로 열심히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내가, 우리가 고마워한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고 싶었다.

늘 받기만 했던 나는 아주 작게나마 그의 기를 살려주고자 했다.

그렇게 나는 어쩌다 가끔 그를 기쁘게 챙겨줬었다. 그게 나의 기쁨이었다.


퇴직 전까지 그를 위한 이벤트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꿈이 되어버렸다.

왕터에서 퇴직 기념 잔치를 해주고 싶었었는데.

그 퇴직기념에 대한 고민은 열두 번도 더 수정했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오늘이 왔다....


이른 나이에 가정을 꾸려 그의 어깨엔 내려놓을 수 없는 짐들이 그동안 있었을 텐데, 그걸 다 내려놓지도 못한 채 그는 누웠다. 그를 바라보면 안쓰러워 눈물만 난다.


어서 빨리 일어나 따듯한 집으로 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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