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생일의 재발견

암환자 그를 사랑하는 아내 - 병실에서 생일축하

by 본비 은혜

2022년 1월 소한의 추위를 지난 어느 날,

추워도 너무 춥네, 춥다 하면서 운전대에 손 올려 출근하면서 흘깃 바라본 나무, 풀들은 이슬이 얼어붙어 아름다운 풍광들이 눈에 들어왔다.

뜬금없이 문득,

감사가 밀려왔다.

출근하기 싫다고 하면서 나섰지만, 직장이 있는 것에 감사하고,

추워야 볼 수 있는 상고대.

서리꽃들을 따듯하게 볼 수 있는 것에, 아직도 대 자연의 감동을 느끼는 감성도 건강한 눈을 주심도 감사했다.


내 가족이야 당연한 감사이고, 하나씩 내 주변을 떠올려봤다. 그 바쁘고도 짧은 출근길에.

그러다 내 친구들이 떠올랐다.

남편보다, 자식보다 먼저 알게 되고 오랜 추억을 만들어가는 친구들이 떠오르면서 이 친구들이 있음으로 내 삶이 풍성해져 감이 비로소 깨달아졌다.


'우리가 몇 년 동안 만났더라?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니까....'

친구들이 한 명씩 떠올라, 이름을 부르며 그 친구들의 소망을 담아 짧은 기도를 했다.

친구들에게 무엇을 해주면 좋을까? 어떻게 환한 웃음을 짓게 할까?

갑자기 숙제를 만들어냈다.

내 생일을 앞두고 말이다.




2022년에는 꽃값이 정신없이 올랐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플로리스트들이 목소리를 낼 정도다. 도매시장에 꽃값이 급격하게 치솟아 도소매 분리와 화훼업계유통시스템 개선을 위해 힘을 모았던 때였다. 경매시스템이나 유통체계에 문제가 있는지 개선을 요구하는 청원이었다. 오죽했으면.

겨울이라는 계절적 한계와 이러한 상황에서 꽃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물론 돈에서 자유하다면 걸리는 게 없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내가 제일 잘하는 것은 꽃바구니 제작이라, 고공행진의 꽃값을 아랑곳하지 않고 계획대로 꽃을 구입했다.

'계획대로'란 나의 생일에 맞춰 친구의 부모님 중에 제일 연로하신 어머님께 꽃바구니 선물을 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유인 즉, 내가 즐겁고 기쁘게 사는 이유 중 하나는 친구가 내게 있음이요,

또 그 부모님은 내가 어렸을 적에 놀러 가서 복숭아며, 느타리버섯이며 솜씨 좋으셨던 엄마의 밥을 즐겨 먹은 것에 많이 늦은 보답이기도 했다.

친구를 낳아주신 것에 감사하는 내 마음을 담고 싶은 것이고, 나를 알아봐 주실 때 기쁘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꽃은 계획한 날짜에 잘 도착해 주었다.

당시 cj택배가 파업 중이었지만, 우리 동네는 파업에 동참하지 않았는지 제 날짜에 잘 와주었다. (사실, 이것도 진작 파악하지 못해서 노심초사하면서 기다렸었다.)

하루동안 물 올림을 하고, 연차 낸 아침에 친구와 친구엄마를 위해 기도하면서 꽃바구니를 만들었다.

증편도 사서 꽃바구니가 쓰러질까 한 손으로 바구니를 잡고 운전하며 가는 길은, 마침 내리는 눈송이처럼 마음이 들떴고 참 기뻤다.


혹여, 길이 엇갈릴까 싶어서 친구에게

" 점심 먹었니?"

"이제 먹으러 가려고"

"엄마 요즘 어디 계시니?"

"00 요양원 주간보호센터에 계셔"

"응, 알았어. 엄마에게 드리려고 꽃바구니 만들었어. 나 친정에 가는 길에 들러서 뵙고 갈게."

밑도 끝도 없이 엄마의 현 위치를 확실히 알고자 톡을 했다.

갑자기 톡에 답이 없다.


친정동네 옆에 00 요양원이 있는 줄 아니까 찾아가기는 쉬웠다.

사업이 바빠진 친구는 엄마를 자주 뵈러 올 수 없음에 많이 속상해하고 안타까워했었다. 엄마는 가끔 기억이 오락가락하신다며 알아보실 때 자주 찾아뵙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형편에 눈물을 그렁그렁했었다.

어머니께 드린 꽃 바구니


내리는 눈이 참 이뻤던 날이다.

요양원에서 000 어르신을 찾아 면회를 신청해 유리문 이편과 저편에서 어머니를 마주했다.

"안녕하세요. 어머니, 저 알아보시겠어요?"

"그럼, 알지. 00 동네 은혜지?"

역시 알아봐 줄 때 찾아뵙는 것이 옳구나 싶었다.

꽃바구니를 직원에게 전달하고, 앉으신 어머님 옆에 꽃바구니를 놓고 사진 한 장 찍어주십사 부탁을 드렸다.

달랑 한 장 찍어주신 사진은 참 귀했다.

증편을 드리면서 어머님 좀 잘 챙겨주십사 청탁하며 나눠드시라고 했다.

어머님은 늘 누구를 보면 돈을 주시고 싶어 하신다더니, 내게도 돈을 주시려고 하셨다.

꼬깃한 천 원을 주시고 싶어 하셨다.

"그거 받으면 친구한테 혼나요. 어머니"라고 했는데,

돌이켜 생각하니 기분 좋게 받는 것이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일 텐데 아차 싶었다.




그 우아하신 어머니께서 지난 주일에 소천하셨다.

어머니 마지막 가시는 길을 뵈러 갔어야 했는데, 갈 수가 없었다.

내가 안 보이면 불안해하는 그를 두고 갈 수가 없었다.

어머니께 죄송하고 친구에게 미안하기가 그지없다. 마음이 무겁다.


나는 대한(大寒)의 추위에 태어났다.

추운 날에 태어나서 그런지 따듯한 것을 참 좋아한다.

나나, 우리 친구들이, 내 주변사람들 모두 따듯한 온기로 훈훈해졌으면 좋겠다하는 마음으로 산다.

이렇게 할 수 있는 마음, 손길이 내게 있음에 감사한데,

지금은 더없이 소중한 그에게 온전히 할애하고 있다. 후회를 덜하기 위해서 말이다.


제는 내 생일이었다.

친구네 부부랑 생일날에 함박스테이크를 같이 먹자고 했는데, 많이 아주 많이 속상하고 서운하게 그 선물은 받지 못했다.

시어머님은 집에 환자가 있으면 생일이든 제사든 안 하는 거라고 하셨는데,

난 못 말리는 며느리, 그의 아내다.

일이 있어 여주에 가서는 점심엔 돈가스로 생일 축하를 받고, 생일을 기억한 친구가 급히 나와서 생일 축하한다며 예쁜 케이크를 들려주어 병원으로 가지고 왔다.

때맞춰 멀리 있는 딸이 병원으로 작은 주황장미를 보내왔다.

유난스럽다고 할 수도 있지만,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는 그와의 생일을 그냥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촛불을 같이 불어 끄고, 케이크는 요양보호사님과 간호사님들과 나눠 먹었다.

모두들 내 생일을 축하해 주셔서 좋았다.


"생일인데, 선물을 못해줘서 미안해"

" 아냐, 2년 전 생일날 자동차 선물 사주면서 당분간 생일 선물 없다고 미리 얘기했었어. 기억하지?"

"응. 그랬어"

"그러니까 이번 생일선물은 안 주는 게 맞아. 미리 줬잖아"


하루하루를 귀하게 여기니, 병실에서도 추억이 쌓여간다.

병실 옷장에 오래전 케이크 앞에서 찍은 사진을 붙여놨다. 그와 얼굴을 붙이고 활짝 웃는 사진을!

그의 생일은 더운 여름인데, 그땐 어떤 이벤트를 해야 할지 벌써부터 고민해야겠다.


하나님! 저를 밝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26.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