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쉰둥이 아들의 유산

암환자 그를 사랑하는 아내

by 본비 은혜

그는 아버님 쉰 살, 어머님 마흔넷에 태어난 '쉰둥이' 막내아들이었습니다.

상상할 수 있는 그 이상의 사랑을 먹고 자란 귀하디 귀한 자식으로 그의 백일 날, 잔병치레 없이 무탈하게 자라길 바라는 어머님의 지극한 정성은 여주초등학교 앞에서 하교하는 백 명의 아이들에게 수수떡을 먹이는 정성으로 피어났습니다.

하지만 운명은 그 '금이야 옥이야' 귀한 아들을 순탄하게만 두지 않았습니다.

1972년 8월, 남한강 유역을 덮친 대홍수는 여주 시가지의 65%를 집어삼켰습니다. 소양천 앞, 지대가 낮았던 어머님의 집에서 건진 것이라곤 겨우 솥단지 하나뿐이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복토가 되어 흔적도 없지만, 70대 어르신들은 여전히 혀를 내두르며 그때의 물난리를 기억하곤 합니다.

그 귀한 아들은 어머니의 마음과는 달리 일찍부터 삶의 현장으로 뛰어들어야 했습니다.

새벽 공기를 가르며 신문을 배달했고, 다방을 돌며 껌을 팔았습니다. 데이트하는 연인들에게 껌을 내밀면 서로 잘 보이려 흔쾌히 사주곤 했다며 웃던 그의 이야기 뒤엔, 배고픔을 견디지 못해 남의 집 앞에 놓인 두유를 몰래 마셔야 했던 가난한 소년의 허기가 숨어 있었습니다. 그는 지금도 병석에서 그때 그 두유를 찾습니다. 그 미안하고도 고소했던 기억으로 다른 것은 넘기지 못할 때에 그 두유만 마셨습니다. 그 집들을 기억하면서 미안함을 꼭 말하면서 말입니다.


은행원이었던 그의 손은 결코 은행원의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연애 시절, 내 손을 잡던 그의 거칠고 투박한 손이 때론 보기 싫기도 했지만, 이제야 깨닫습니다. 그 손은 어머니를 지키고 삶을 일궈온 훈장이었다는 것을요.

연애 기간은 짧았습니다. 집 전화 한 대가 유일한 소통 창구이던 시절,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던 어머님의 "업빠(오빠) 바꿔주마" 하시던 다정한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선합니다.

쉰둥이 아들이 장가를 가던 날, 신혼집에 자신의 책상을 내려놓자마자 그는 안방에서 나를 붙들고 아이처럼 엉엉 울었습니다. "우리 엄마 불쌍해서 어떡하냐고, 나만 바라본 엄마 좀 잘 대해달라"라고.

어렸던 우리는 그렇게 신혼방에서 함께 울었습니다. "내가 잘할게, 내가 정말 잘할게." 그 약속이 우리 부부의 시작이었습니다.


그 약속을 지키려 참 부단히도 노력했습니다.

매주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버스를 타고 여주 본가로 향했습니다. 하룻밤을 자고 주일 예배를 드린 뒤,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특별식을 대접하고 돌아오던 그 길들. 힘들 법도 했지만, 우리를 기다리는 부모님의 환한 미소 때문에 쉰둥이 아들 내외는 그 길을 오랫동안, 참 행복하게 다녔습니다.

시부모님의 마지막 사랑이었던 아들을 향한 지극한 사랑은 며느리와 손녀딸들에게로 고스란히 내려왔습니다. 둘째를 낳았던 그해 여름, 푹푹 찌는 무더위 속에서도 두 어르신은 며느리를 위해 정성껏 사골을 고으셨습니다. 땀으로 범벅이 된 채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10여 분 거리를 달려오신 그날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땀방울을 뻘뻘 흘리며 건네주신 그 사골 국물은 단순히 기력을 보충하기 위한 음식을 넘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뭉클함과 깊은 깨달음을 제게 주었습니다. 그날 어머님은 아들에게도 다 말하지 않은 얘기들을 저에게 풀어주셔서 어머님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날의 기억은 이후 시부모님과 겪을 수 있는 그 어떤 어려움도 극복해 낼 수 있는 단단한 힘이 되었습니다. 그 지극한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저 또한 두 분을 진심으로 공경하며 가족의 소중함을 굳건히 지켜올 수 있었습니다. 부모님의 숭고한 사랑이 아들에게로, 그리고 다시 저와 아이들에게로 흐르며 우리 가족을 지탱하는 가장 따뜻한 뿌리가 되어주었습니다.

시부모님의 귀한 '쉰둥이'로 자란 남편 역시, 부모님께 배운 대로 오직 가족만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부모님의 숭고한 사랑을 등불 삼아 평생을 성실하게 살아온 그 아들이, 이제는 말기 암으로 호스피스 병상에 누워 있습니다. 병색이 짙어 야위어가는 남편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한여름 땀을 흘리며 자전거를 타고 오시던 시아버님의 모습이 겹쳐 보입니다. 야윈 얼굴마저 아버님을 똑 닮은 그를 보며, 남편이 평생 짊어지고 온 '가족'이라는 짐의 무게를 느낍니다.


부모님이 아들에게 주었던 그 지극한 사랑과 헌신은, 이제 병상에 누운 아들을 통해 다시금 제 가슴속에 아프고도 깊은 울림으로 남습니다. 비록 남편의 몸은 야위었으나, 그 안에 담긴 가족을 향한 사랑만큼은 그날의 사골 국물처럼 여전히 진하고 뜨겁게 흐르고 있습니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부모님이 물려주신 사랑을 온몸으로 실천하며, 남겨진 가족들에게 영원히 꺼지지 않을 사랑의 온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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