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환자 그를 사랑하는 아내
샘물호스피스에 온 지가 벌써 나흘 째가 되어간다.
간호사님이 여기는 기적이 많은 곳이라고 했었다.
정말 간호사님 말처럼 죽을 먹는다. 아주 맛있다며 먹는다.
작고 얇게 썬 동치미 무도 잘 먹는다.
시금치 콩나물국이 나왔는데 시금치가 달다 하며 먹는다. 신기한 일이다.
아무것도 못 넘기던 사람이 죽을 먹는다.
잠을 엄청 많이 자던 사람이 깨어 있는 시간이 많다.
이 자체가 신기한 일이다.
주말 동안 그의 친구들이 다녀갔다.
그가 좋아하는 친구들이 순서대로 다녀갔다. 약속도 하지 않았는데 어쩌면 그렇게 타이밍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게 다녀가게 되는지? 서로 현관쯤에서나 마주칠까?
한 사람이 가면 한 사람이 오고 그 사이사이 또 그가 그렇게 보고 싶어 하던 사람들이 다녀갔다.
한 달을 훨씬 넘도록 깎지 않은 머리는 더벅머리가 되어 얼굴만큼이나 엉망이다.
월요일이면 미용봉사자들이 온다는데, 주말 동안 방문객이 많을 때에 멋진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서 아쉬운 마음뿐이다.
친구들은 눈물을 참으며 또 우스갯소리를 하며 그가 잠시 통증을 잊도록 시간을 보내주고 갔다.
어쩐지 컨디션이 좋다 싶은 날은 어김없이 주일날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여서 그가 그렇게 회복되는 것처럼 참 좋은 모습이 보였던 게 고맙고 좋았다.
그렇게 토요일과 주일이 지나고 월요일이 되었다.
그가 좋아하는 알바트로스 사장이 신맛 커피를 내려 갖고 온다 했는데. 그는 아침에 다시 힘이 없다며 눕는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커피 맛을 한 모금 마셔보게 하고 싶은데 어떡하지?
"한숨 자고 있어. 조사장이 천천히 올 거야" 그가 잔다.
11시가 다 되어서 그가 기다리던 조사장이 텀블러에 아이스 아메리카노 신맛 커피를 담아가지고 왔다.
잠에서 깨선 반가워하며 알바트로스 모든 가족들의 안부를 물으며 보고 싶다는 말을 한다.
커피를 두 모금을 시원하게 마시며, "역시 맛있어. 역시 맛있어."
조사장은 그의 퀭한 모습에 눈물을 애써 참느라 눈자위가 벌겋다.
그가 알바트로스 카페와 사람들의 안부를 디테일하게 묻는다. 역시 그답다.
가게 문을 열어놓고 왔으니 어서 가보라며, 서둘러 보냈다.
조 사장은 몇 번이고 나도 잘 챙기라는 말을 하며 또 오겠다는 말을 하고, 다음엔 그이가 귀여워하는 아들을 데리고 오겠다는 말을 하고는 갔다.
참 만난 지 얼마 안 되는 사이이고, 사귐이다.
그런데 진심이, 진심만 보이는 사람들이다.
어쩌면 그는 나에게 재미나게 살길 바라며 인연을 확장시켜 준 것 같다.
그 확장의 장소는 왕터 테릴기와집이었다.
왕터는 나에게 다양한 인연을 돈독하게 하고,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던 열린 집이었다.
요즘 들어 그 집에 대한 생각이 많아진다.
호스피스 병원은 면회가 좀 편하다.
그래서 많은 지인들이 병실로 찾아와도 눈치를 안 봐도 된다. 분당에 있을 땐 면회가 안되어 복도까지 나가야 하니 그가 많이 힘들어했었다. 그게 아니면 007 작전을 해야 했고.
그 병원에서 한 달을 지내고 나니, 가끔씩 나도 모르게 방문객들을 보면서 불안한 나를 본다.
'숨어! 얼른 나가야 돼'
병실을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을 통해서 배운 게 있다.
세심함의 끝판왕으로 다양한 것들을 정성껏 준비해 온 친구가 있는가 하면, 밥과 반찬으로 섬겨주시는 분과 봉투를 주고 가시는 분들이 있었다.
힘내라고 주는 무거운 봉투를 받고, 고민을 한 아름 하기도 했다.
살면서 내가 다 갚아가야 할 숙제들이다.
그중에 마음이 아프고도 생각이 많아지는 봉투가 있었다.
병원으로 찾아오기까지 기름값도 버거울 언니가 봉투를 주고 갔다.
녹록하지 않은 그의 후배가 봉투를 주고 간다.
너무나도 뻔히 어려운 게 보이는, 너무나도 훤히 그 돈이 얼마나 귀한 지를 분명하게 알겠는 봉투가 있었다.
그래서 그걸 못 받겠는데, 마음을 다해서 준비한 마음이 전해져 봉투에 눈물이 툭 떨어졌다.
과부의 두 렙돈처럼, 귀한 정성이다. 사랑 그 이상이다.
"하나님, 저들의 삶을 부요하게 주세요. 저 귀한 마음을 주님이 갚아주세요. 안타까운 삶을 주님이 채워주세요. 저는 다만 기도만 할 뿐입니다."
그는 병실에서 나를 가르치고 있는 중이다.
그의 생명을 다 바쳐서 나를 가르치고 있는 중이다.
우리는 아주 아프고도 비싼 수업료를 내며 인생을 배워가고 있는 중이다.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값지게 살아내야 한다는 것을 그가 그의 몸을 던지며 가르치고 있는 중이다. 귀하게, 가치 있게 배워놔야겠다.
그는 나에게 더 가르칠 게 많은지,
죽을 먹고, 딸기도 몇 알 먹고, 손톱도 깎고, 보험료 청구도 다 했다.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평생 보험료 청구 한 번을 안 해 본 아내를 위해, 그는 걱정이 태산이었을 것이다.
어마어마한 금액의 병원비를 냈으니, 다만 얼마라도 돌려받고 받기를 바라면서
딸을 조수 삼아 보험료 청구를 위해 이것저것 챙기라고 가르친다.
내가 챙겨도 못 미더워하면서
"엄마는 이런 거 못하니까, 엄마 항상 잘 챙겨라" 며 잔소리가 시작이다.
그가 살아있다는 증거다. 끝까지 아내 사랑은 지극하다.
그가 더 살아있으려면, 내가 더욱 몰라야 한다.
오십을 넘어도, 그와 삼십 년을 넘게 살아도 나는 그에게 늘 물가에 내놓은 아이 같은가 보다.
되레 아이들이 더 씩씩하고 똘똘하다고 말한다.
아무려면 어떠냐?
내가 그렇든지 아니든지, 그가 나를 위해 잔소리한다는 건 살아있다는 증거지.
고통이 덜 하다는 감사한 일이지.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서도 나를 챙기는 모습을 본다.
"엄마에게 물어봐서 해, 엄마 오면 해"
"똑같은 거로 사. 네 거랑 똑같은 거로 사"
"기침해? 보일러 틀어! 감기 걸리면 안 돼"
기침 두 번 하니, 자다 말고 말한다.
그와 나와의 결혼생활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말이다.
그가 깨어서 나에게 잔소리를 열시간해도 난 즐겁게 들어야 한다.
그래도 그의 마음은 다 갚아지지 않는다.
잠결에 텀블러에 담아 둔 조사장의 커피를 내가 마시는 소리를 들었나 보다.
"내 커피 다 마시지 마!" 커피는 양보 못 할 기세다.
"알았어! 남겨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