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암환자 그를 사랑하는 아내
임종실의 존재 여부를 두고 그와 한참을 실랑이했다.
나는 열흘 동안 매일같이 그 복도를 오가면서도 단 한 번 본 적이 없는데, 그는 고작 세 번 지나친 3층 첫 번째 방이 분명 '임종실'이라며 고집을 피웠다. 입실하던 날과 목욕을 다녀오던 길, 그 짧은 찰나에 본 것이 전부이면서 말이다.
"세상에 임종실이 따로 어디 있느냐"며 한참을 옥신각신하다가, 결국 우리 병실 문 앞에 계시는 요양보호사를 불렀다.
임종실이 정말 있느냐는 물음에 요양보호사는 당황한 기색으로 우리 눈치를 살피며 되물었다.
"그건 왜 물으세요?"
대답을 피하는 보호사의 태도와는 상관없이, 보호사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만은 흔들림 없이 또렷했다. 자신의 기억이 틀림없음을 증명받고 싶어 하는, 아주 형형한 눈빛이었다
보호사는 예민한 질문에 잠시 눈치를 살피더니, 이내 그의 단호한 눈빛에 밀려 입을 열었다.
겉으로는 '열매실'이라 적혀 있지만, 그곳이 존엄한 마지막을 준비하는 임종실로 쓰이는 공간이 맞다는 것이었다.
그는 거보라며, 자신이 똑똑히 확인하지 않았느냐고 기운 없는 목소리를 높였다.
왜 내 말을 믿어주지 않느냐며 서운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그저 '임종실'이라는 명패가 붙어 있지 않아 없다고 말한 것뿐인데, 그의 눈은 나보다 훨씬 깊은 곳을 보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그 방 앞에 사람들이 유독 많이 모여 있던 날들이 있었다.
나는 그저 우리처럼 면회객이 많은 집인가 보다 하고 무심결에 지나쳤는데, 그는 그 엄숙한 공기를 예민하게 읽어냈던 모양이다. 목욕하러 가는 짧은 길목에서 그는 삶의 마지막을 배웅하는 풍경을 놓치지 않고 눈에 담았던 것이다.
결국, 이번 싸움은 그의 완승으로 끝났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지 않았던 나의 무심함이, 찰나를 예리하게 포착한 그의 확신 앞에 무릎을 꿇은 셈이다.
'임종실'을 검색하니, 임종실은 2024년 8월부터 일정 규모 이상의 병원에 설치가 의무화된, 환자가 가족과 함께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마련된 소중한 공간이라고 한다.
그는 언젠가 임종실에 대한 내용을 본 적이 있다며 내게 조곤조곤 설명해 주었다.
하지만 나는 들어본 적 없는 것이라 끝까지 내 말이 맞다고 우겨댔으니, 그 마음이 얼마나 답답했을까.
돌아보니 '환자니까 잘 모를 것'이라며 적당히 넘기려 했던 나의 오만한 본모습이 보였다. 미안한 마음에 진심을 다해 사과를 건넸고, 그는 기다렸다는 듯 그간 서운했던 마음을 꺼내 놓으며 우리는 차분히 오해를 풀었다.
요즘 그는 자신의 정신을 붙잡기 위해 처절하리만치 애를 쓴다. 낮잠을 자거나 이른 저녁부터 잠들면, 고통스러운 불면의 밤이 찾아온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밤새 뒤척이며 나를 번거롭게 할까 봐 미안하다는 그이는, 눕고 싶은 유혹을 이기려 두 팔로 몸을 지탱한 채 꾸역꾸역 시간을 견뎌낸다.
"TV라도 볼까?" 하는 나의 물음에 그는 "아니, 그냥 너랑 얘기하는 게 좋아"라고 답한다.
시계를 보며 깨어 있는 것조차 버거운 상태에서도, 나를 위해 오후 내내 정신을 맑게 유지하려는 그 의지가 실로 경이로웠다.
어제처럼 잠을 이루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면서도, 그는 의료진의 말이라면 전적으로 신뢰하는 '착한 환자'가 되어, 간호사와 처방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누는 모습에서 고통 없이 편안하고 싶은 간절함이 읽혔다.
그의 굳은 의지를 확인한 간호사는 오늘 밤 수면제 처방을 어떻게 조절할지 상세히 설명하며 동의를 구했고, "간호사님이 참 친절하시네"라며 위로에 안도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지탱하려는 그의 고군분투 곁에서, 나는 오늘 다시 한번 그를 깊이 존경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이 밤, 그가 푹 자길 바라며 자판 소리에 혹시나 깰까 봐 노트북을 켜지 않았다. 전등을 다 끄고 누우니 잠은 오지 않고 상황은 답답하지만, 나보다 몇십 배는 더 답답할 그를 생각하며 휴대폰을 켰다. 화면의 작은 불빛에 의지해 글을 적는 이 순간, 모두의 애씀 덕분에 그가 곤히 잠들었다.
그가 깨어 있어 함께 웃을 수 있었던 감사한 하루.
내일 아침, 그가 숙면을 취한 뒤 아주 좋은 컨디션으로 다시 하루를 시작하길 간절히 기도해 본다.
2026.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