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환자 그를 사랑하는 아내
새벽 내내 그는 몹시 힘들어했다.
이른 저녁부터 깊은 잠에 들었다가도 한밤중이 되면 고통 때문인지, 아니면 잠이 깨서 고통이 밀려오는 것인지 괴로워하며 몸부림쳤다.
진통제를 맞고도 채 두 시간이 지나지 않아 다시 진통제를 찾았고, 간호사가 몇 번이나 다녀간 뒤에야 겨우 아침을 맞았다.
나는 피부트러블 때문에 먹은 약 기운에 취해 비몽사몽이었다. 졸음을 유도하는 성분 탓에 그가 나를 찾았을 때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그를 온전히 지키기 위해서라도 저녁 약은 이제 먹지 말아야겠다.
아침이 되니 그는 밤사이의 사투를 보여주듯 초췌한 모습으로 눈조차 뜨지 못한다.
새벽에 맞은 진통제 기운 때문인지 깊이 잠든 그를 보며 결국 눈물이 터져버렸다. 숨죽여 울어보지만, 그는 울음소리만 들리면 깨어 울지 말라 다독이니 마음 놓고 울 수도 없다.
아침 식사도 거부한 채 잠든 그의 곁에서, 나 또한 입맛이 써져 그저 손을 잡고 기도만 할 뿐이다.
요즘 밥을 맛있게 먹으며 '이러다가 살이 오르겠네'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오늘 아침, 문득 아무것도 입에 넣고 싶지 않은 순간이 찾아왔다. 그때 깨달았다. 맛있게 먹을 수 있을 때 먹어두는 게 낫다는 것을. 어떤 감정이든, 어떤 상황이든 영원히 계속되는 것은 없을 테니.
그렇게 오전은 슬픔의 무게에 짓눌려 보냈다.
그때, 아끼는 해설사 후배에게서 찾아와도 되겠느냐는 연락이 왔다.
필요한 것을 묻기에 망설임 없이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부탁했다. 여긴 외진 곳이라 커피 한잔도 귀한 곳이다.
그는 내게 꼭 점심을 먹고 기다리라며 신신당부했고, 나는 그의 말대로 억지로 몸을 일으켜 식당으로 향했다.
식사를 조금 마치고, 마침 배달 온 꽃 박스를 들고 병실로 돌아왔다.
사실 일반 병원에서는 꽃 반입이 금지되지만, 이곳 호스피스 병원은 환자와 보호자의 슬픔을 위로하는 힘을 알기에 너그러이 배려해 주는 듯하다. 일전에 작은 미니 장미 다발을 꽂아두었을 때, 병실을 찾은 모두가 활짝 웃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이는 그 기쁨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어 해, 그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주황빛 장미를 서둘러 주문했다.
꽃은 더 이상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롯이 나를 위한 위로가 되었다.
그 덕분에 멈추지 않던 눈물이 멎었고, 거둬지지 않던 슬픔을 비로소 받아들일 수 있었다.
혹여나 추위에 얼세라 겹겹이 쌓인 꽃 포장은 실로 대단했다.
보온덮개, 완충 비닐, 무성한 신문지에 싸여 온 꽃들을 하나씩 풀어내며, 내 안의 슬픔도 하나씩 풀려나갔다.
꽃가위도 꽃병도 없는 병실이지만, 문구용 가위와 다 마신 아이스커피 용기만으로도 충분했다.
온돌바닥에 주저앉아 장미를 다듬는 내 모습 위로, 지난날 왕터에서 꽃을 만지던 행복한 시간들이 겹쳐졌다. 그리고 어느샌가, 찬양을 흥얼거리는 내가 돌아와 있었다.
꽃을 배우고 그 매력에 빠졌던 일이 참으로 잘한 일이었음을, 그것이 결국 나를 살리는 길이었음을 오늘에야 깨닫는다.
이웃을 위한 일이라 생각했는데, 꽃은 나를 지켜주는 가장 따뜻한 안전지대였다.
그가 보고 싶어 하던 이들에게 진작 연락해 와 달라 했더니, 오늘 모두가 다녀가 주었다.
생전 처음 받는 목욕 서비스에 긴장해 피곤했을 텐데도,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자 힘이 나는지 표정이 더없이 밝다.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는 효과는 그에게 모르핀의 몇 배가 되는가 보다.
그가 웃으니 나도 웃고, 우리 모두가 웃는다. 아침 같았으면 울음바다였을 병실이 웃음꽃으로 가득 찼다.
살면서 요즘처럼 사람이 그리웠던 적이 있었나 싶다.
그를 반가워하며 웃게 해 준 그들이 그립고도 고맙다.
일상의 추억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들, 삶을 풍성하게 하는 진정한 거름은 바로 그들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