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암환자 그를 사랑하는 아내
2025년 12월 16일 응급실을 향해 가는 내 차 안에서
그는 다시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음을 직감했다고 했었다.
그걸 부정하고 싶었다.
왜냐하면 그래도 꽤 괜찮았으니까.
응급실 생활 11일 만에 병실로 올라가 22일 만에 퇴원을 했다.
병원에서 앞으로 최선의 치료는 요양병원으로 옮겨가 몸을 회복하면서 항암을 계속하는 것이었는데,
간성 혼수가 가끔 찾아오고, 섬망 증세도 있었던 그는 선택지 없는 차선으로 고가의 요양병원은 스킵하고 바로 호스피스 병원으로 옮겨왔다.
2026년 1월 16일 화창한 겨울날 샘물호스피스 병원으로 왔다.
여기서 기적처럼 죽을 먹고, 기운은 없지만 또렷한 정신으로 친구들을 만나 옛 얘기와 함께 당부를 하면서 좋은 시간을 보냈다.
연말 정산 시즌이라 회사 내 직원에게 대리인 지정하여 연말정산도 부탁하고, 병원비 청구까지 다 끝냈다.
여긴 천국이라며, 진작에 이러한 삶을 알았다면 봉사도 많이 했을 텐데, 아쉬워하며 이 병원에 감사함을 잊지 말라고 내게 이것저것 하기를 바랐다.
참 고맙게도 병문안 오신 분들이 준비해 온 것들을 맛보며,
'맛있다', '고맙다'며 꼭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었다.
까다로운 입맛은 신 음료도 그냥 신 음료가 아니라, 몇 가지를 먹어보고 '이거!' 특정상품을 고집했고,
내가 사 온 요구르트는 달다며, 또 특정 브랜드를 고집해 공수를 했었다.
그는 병석에서도 삶에 대한 의지와 자기주장이 확실했었다.
그래서 그렇게 먹고, 툭 털고 일어 설 줄 알았다.
'마지막 선물'처럼 열흘동안 꿈같은 날들이 지나갔다.
믿고 싶지 않았던 회광반조의 시간이었던 것인가?
27일부터 그는 달라졌다.
잠을 유난히 많이 자면서, 헛소리를 한다. 가슴이 철렁하게.
소변보고 싶은 욕구와 소변이 나오지 않는 몸의 상황에서 한 시간마다 깨, 일어서서 괴로워했다.
의식이 있든 없든, 간호사는 환자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그의 귀에 "환자님! 소변줄 끼웁니다."를 고지하고
노련한 남자 의사 선생님은 소변줄을 삽입했다.
소변은 저절로 나오지만, 극심한 요의로 한 시간마다 깨서는 소변을 보겠다고 난리다.
인지의 부조화.
자기 몸에 이물감이 자꾸만 소변을 보고 싶은 욕구로 나타나는지, 그도 나도 괴로웠다.
소변줄을 뺄까 봐 그의 양손을 부드럽게 잡고, 귀에 계속해서 얘기를 해야만 했다.
"여보, 소변줄 끼웠어요. 우리 응급실에서 소변줄 한 사람들 봤지요? 그거야. 이제 소변보려고 안 해도 돼. 잘 나오고 있어. 괜찮아, 괜찮아."
그 옆에 내가 있음을, 계속 확인시키며 그를 달랬다.
그렇게 몇 분을 다독이면, 스르륵 다시 잠에 들었다.
다시 귀에 대고 그에게 고마운 마음을 얘기하는 그 일을 셀 수 없이 했다.
그런데, 자꾸 격하게 반응을 할 때가 있었다. 이상하다?
다른 곳 소독하러 온 간호사님에게 얘길 하니,
이상하다 하면서 튜브 관을 만지고 나니 훨씬 수월하게 배출이 된다. 뭔가 불편했었구나.
교회에서 목사님들이 다녀가셔도 자느라 전혀 반응이 없더니,
이뻐하는 큰 딸이 와도 눈을 안 뜨더니,
그가 자나 깨나 염려, 걱정하던 마음속의 아픈 손가락인 친구 내외가 오니 눈을 뜨고 쳐다봤다.
그가 많이 사랑하고, 친구의 상황에 많이 아파했음이 느껴졌다.
내내 자다가,
잠이 깬듯해서,
알아듣는 듯해서,
"오늘 신목사님이 다녀가셨어. 옷 사드려야 하지?"라고 물으니,
들릴 듯 말 듯한 어눌한 목소리로 "옷 사드려, 사드려" 명확한 당부를 한다.
신 목사님에 대한 사랑이 컸음을, 고마움이 컸음을 알겠다.
저녁 회진에 나이 많으신 의사 선생님이 그를 꼼꼼히 보시고 가시더니
잠들기 전에,
간호사가 나를 살짝 불렀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임종 전 증상과 환자를 위해 가족이 해야 할 일들을 적은 종이 한 장을 내밀면서, 사실 이 종이가 필요가 없는 가족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우리는 긴 시간 동안 아름다운 이별을 위해 미리 준비를 해왔었다.
장례 때 쓸 영정사진으로 웃는 사진과 꽃까지도 골라놨다고 하니, 보기 드문 가족이라며 본인을 감동시키고 많이 배우는 가족이라는 말을 하셨다. 빛과도 같은 시간 동안 우리가 해 왔던 일들을 간호사와 잠시 나누면서, 이제 곧 이별의 시간이 왔음이 자연스럽게 알아졌다.
그동안 큰 딸아에게는 임신 중이고 멀리 있어, 우리는 임산부를 안심시키고자 많이 숨겼었는데 호스피스 병동으로 오고 난 후 현실을 마주해서 큰 딸은 많이 힘들었다고 했다.
임신 중인 몸으로 아빠의 투병과 임종이라는 큰 파도를 마주해야 하는 큰 딸아이의 마음이 얼마나 시리고 무거웠을지 감히 헤아릴 수 있을까? 멀리 있다는 미안함과 우리의 배려 섞인 '비밀'이 딸에게는 준비되지 않은 이별의 충격으로 다가왔는지, 부산에 가서 심리상담을 받으며 조금은 건강한 모습으로 왔다.
큰 딸은 우리가 곧 겪을 큰 이별 앞에서 남은 가족들은 꼭 심리상담을 받자며 심리상담소를 알아놨다.
맏딸로 엄마와 동생의 안녕을 바라는 마음 가득한 책임과 사랑이 느껴졌다.
그래, 그러자! 꼭 심리상담을 받자!
회광반조(回光返照)의 '기적의 시간'도 끝이 나는가 보다.
긴 이별에 앞서 정신이 또렷했던, 끝나가던 상황에서 '마지막 반짝임’의 시간도 이젠 끝이 나는가 보다.
네 식구가 한방에서 자는 것을 제일 좋아했던 그를 위해 두 딸과 나는 병실 바닥에 나란히 누웠다.
따듯한 병실에서 행복한 얘기를 하면서 우리가 현재 그와 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행복을 만들었다.
"여보, 우리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
얘기를 들었는지 고개를 움직이다 다시 잠에 빠졌다.
"우리는 끝까지 함께였고, 아빠는 정말 행복하게 떠나셨어"라고 웃으며 말할 수 있는 소중한 심리적 유산을 오늘 우리는 만들었다.
2026.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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