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사망신고를 한 날, 눈이 내렸다

북엇국을 끓여주던 남자와 작별하는 법

by 본비 은혜

하필 오늘이었다.

진작에 고마운 사람들과 저녁 약속을 잡은 날, 미루고 미뤄두었던 그의 사망신고를 마쳤다.

봄날 같던 날씨는 간데없고 눈발이 날렸다. 시청 민원실 창밖을 내다보며 생각했다.

당신이 지워지는 게 슬퍼서 하늘도 저리 눈을 뿌리는 걸까.

지워내고 싶지 않은 마음을 미련이라는 이름으로 붙들고 있다가, 법이 정한 '한 달'이라는 기한에 밀려 오늘을 택했다.


신고서를 내기 전, 마지막으로 혼인관계증명서를 떼 보았다.

어디 쓸데도 없지만, 그저 그가 나의 '남편'으로 명시된 마지막 기록을 기념하고 싶었다.

이제 이 종이 위에 '사망'이라는 두 글자가 올라오면 나는 그 낯섦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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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눈이 내리는 오후에 시청 민원실에서 아무 감정 없이 사망신고서를 작성해서 내고,

어떤 생각도 하지 않기로 작정하고, 시장을 봐서 집으로 왔다.

그리고 고마운 사람들과 저녁을 먹고 맥주를 한잔 했다.




그는 꽤 오래전에 술을 끊은 사람이었다.

담배를 먼저 끊고는 이내 술을 끊었다.

술자리에서 담배 생각이 난다는 이유로 단호하게 술과 멀리했다.


그가 술을 마시지 않고, 취하지 않으니 아내인 나도 그와 맞추어서 술을 마시지 않았다.

그가 취하지 않는데, 내가 취할 수 없으니.

일 년 가야 한두 번 나와 맥주 한 캔을 따서 나눠마시는 정도로 우리 부부는 술을 거의 하지 않았다.


오래전, 회식에서 취해 돌아온 내게 그는 아무 말 없이 다음 날 아침에 북엇국을 끓여주며,

"속 풀고 출근해."

그 한마디에 담긴 사랑과 존중이 얼마나 컸는지 이제야 선명해진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을 텐데도, 사회생활 하는 아내를 이해해 주며 해장하고 가라는 남편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세상에 다시없을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로 이제 세상에 없다.


다음 날 직장에서는 나의 가정사를 살피면서

혼나지 않았느냐는 질문 공세가 있었다.


북엇국을 끓여주면서 "속이 쓰리고, 머리가 아플 텐데 잘 버티고 일 잘하고 오라"고 했다는 말을 하니,

다들 그 남편이 대단하다고 두말도 더 하지 않았다.


몇 년 만의 맥주인데도 취기가 오르지 않는다.

그가 좋아하던 나의 동료들과, 그가 좋아하지 않는 술을 마시며, 나는 그에게 전하지 못한 고마움을 문장으로 대신 써 내려간다.


"여보, 나는 그때 그 북엇국이 너무 고마웠고, 자랑스러웠어요."


그날의 나는 그에게 얼마나 고맙다고 표현을 했을까?

그가 흡족할 만한 감사를 했었기를 아주 오래 지난 오늘에야 갑자기 간절해진다.


하나도 취하지 않는 밤.

내일 아침 그가 끓여주었던 북엇국이 더없이 그리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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