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나는 생각보다 더 멋진 사람일지도 모른다
"어떻게 잠이 안 올 수가 있어?"
예전의 나는 불면을 호소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디서든 머리만 대면 잠들던 나였기에, 밤을 지새우는 고통은 그저 막연한 상상 속의 일이었다. 잠이 안 올 땐 도대체 뭘 하느냐고, 신기한 듯 묻던 나의 질문이 누군가에게는 얼마나 배부른 소리였을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커피 한 잔의 대가는 혹독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위해 여주 출렁다리를 보여주겠다며 늦은 오후에 출렁다리 뷰가 근사한 곳에서 무심코 마신 그 한 잔이 나를 낯선 불면의 세계로 몰아넣어 밤새 침대 위를 유영해야 했다.
일찍 잠들려 애를 써보아도 정신은 점점 또렷해졌고, 새벽 4시가 넘어서야 "제발 한 시간이라도..."라는 간절한 기도를 보태며 겨우 눈을 감았다.
잠이 오지 않는 말똥한 시간, 나는 이참에 꽉 차버린 휴대폰의 해묵은 사진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갤러리의 9할은 가족이었다.
우리는 여행을 참 좋아했고, 네 식구가 모이면 사진을 많이 찍었고 그 사진들은 버릴 사진이 없었다.
참 밝고 건강했던 그 사람, 우리가 사랑했던 집, 그리고 이제는 곁에 없는 반려견 왕이, 왕삼이, 호떡이 까지.
다시는 한자리에 모일 수 없는 그 시절의 조합들이 빛바랜 액자처럼 화면 속에 가득했다.
참 행복하게 잘 살았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문득 겁이 났다.
이 사진들을 마주하면 눈물이 쏟아지지 않을까, 청승맞은 밤이 되지는 않을까.
하지만 신기하게도 눈물은 나지 않았다. 그리운 마음은 여전한데, 나는 슬픔 대신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저 "참 잘생겼네. 참 좋았지, 참 예뻤지" 하며 그 시간들을 가만히 쓰다듬을 뿐이었다.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마음속으로 남편과 긴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눈물은 고이지 않았다.
울보였던 내가 울지 않는 것, 그 자체가 내게는 경이로운 치유의 순간이었다.
억지로 청한 두어 시간의 짧은 잠을 깨우며 아침이 왔다.
눈을 뜨자마자 침대 위에 벌떡 엎드려 기도를 했다.
“하나님, 다만 두 시간이라도 달게 자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문득 깨달았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을 불안해하고 괴로워하기보다, 그저 ‘어제 먹은 커피 탓’으로 돌릴 줄 아는 여유가 내게 생겼음을.
"원래 나는 머리만 닿으면 잘 자던 사람이야"라는 생각을 내려놓기로 했다.
나이가 들고, 육체적인 노동이 줄어들고, 생활 패턴이 변했다면 내 몸도 달라지는 것이 당연하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두려움을 걷어내는 시작이다.
그것이 불면이든 삶이든.
오늘 아침, 나는 나를 새롭게 세웠다.
‘누구나 달라져. 어제와 똑같아야 한다고 고집 피우는 게 아니라, 변화한 나를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 되자.’
그렇게 생각하고 다짐하니 내가 조금 멋있어 보였다. 아니, 사실 아주 많이 멋지게 느껴진다.
아무렴, 나는 김은혜니까.
스스로를 인정하니 하루가 산뜻하게 피어난다. 내가 더 단단해진다. 다행이다.
혼자가 된 이 삶을, 나는 꽤 잘 살아낼 것 같다.
먼발치에서 나를 보고 있을 그 사람도 분명
"역시 내 아내, 김은혜답네!"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응원해주고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