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그의 거친 손마디에서 온 우아함

정갈하고 깨끗하길 바라는 간절함

by 본비 은혜

2월의 마지막 수요일,

봄 날씨 속에서 마음 한구석이 시큰했다.

시청으로 나가는 길에 내 차를 보니, 그의 사망신고 하는 날 맞은 눈으로 꼬질함을 봐줄 수가 없었다.

그가 봤으면 대번 한 소리를 할 것이 뻔하기에 주간 날씨를 확인하고 셀프 세차장을 갔다.

"깨끗하게 타고 다니라"던 그 잔소리가 이제는 그리운 약속처럼 느껴져, 열 명의 남자들 사이에서도 씩씩하게 고압수 건을 들 수 있었다.

그가 넉넉히 충전해 둔 세차카드를 사용하면서 셀프 세차를 잘 배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늘 내게 '깨진 유리창 이론(Broken Windows Theory)'을 말하곤 했다. 이미 더러워진 곳에는 쓰레기를 버리기 쉽고, 한 번 방치된 무질서는 걷잡을 수 없이 퍼진다는 그 법칙. 그는 내 차가 그 '깨진 유리창'이 되지 않기를 바랐다. 차를 소중히 아끼라는 집착보다는, 스스로를 대하는 태도만큼은 늘 정갈하고 깨끗하길 바라는 그만의 신신당부였다.

그를 보내고 난 뒤, 지하주차장에 며칠이고 방치되어 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은 내 차를 보았다. 그가 있었다면 분명 "이게 뭐야"라며 기분 좋은 잔소리를 퍼부었을 더러움의 극치를 보고, 그가 참 좋아하는 그의 친구네 실내 세차장을 찾았다.

"잔소리 좀 들었겠는데요? "

"당연했겠죠 "

그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아는 친구는 껄껄 웃으며 내 차를 새 차처럼 반짝이게 닦아주었다. 물기가 가신 보닛 위로 투명하게 비치는 내 모습 뒤로, 마치 그와 눈이 마주친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자동차는 이미지 입니다.)


하지만 세상을 향한 내 노력과는 별개로 날씨는 야속하기만 하다.

시청 다녀온 날 내린 눈으로 반짝이게 닦아놓은 자동차는 금세 엉망이 되어 허탈함이 밀려오지만, 이제 안다. 다시 세차장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은 단순히 차를 닦는 행위가 아니라, 그가 내게 심어준 '나를 방치하지 않는 마음'을 지키는 일이라는 것을.

내가 머무는 공간이 곧 나라는 생각으로, 그는 내가 어디서든 깔끔해 보이기를 바랐다.

하지만 내 손이 닿는 곳엔 늘 무언가 하나둘 쌓이기 마련이었다. 가족들은 그 풍경을 보며 '또 은혜화'라며 나를 놀렸다. 내가 지나간 자리마다 남는 생활의 흔적들, 어지러운 틈새들. "아이고, 또 은혜화 됐네"라는 장난 섞인 핀잔은 어느덧 우리 집만의 고유한 형용사가 되어버렸다.

사실 조금 억울하기도 하다. 주방과 세탁실, 베란다와 장롱까지 집안 구석구석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없는데, 어쩌다 나는 '무질서의 대명사'가 되었을까. 그 소리가 듣기 싫어 이젠 스스로 부지런히 치우곤 하지만, 가끔은 그 놀림마저 애정가득한 그리운 온기였음을 깨닫는다.

세차 비용이 아까워 번번이 친구네 세차장을 갈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그의 당부를 저버린 채 더러운 차를 끌고 다닐 수도 없었다. 결국 볕 좋은 날,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혼자 셀프 세차장으로 향한 것이다.

내가 지금 닦아내고 있는 것은 차에 묻은 먼지일까, 아니면 내 삶에 자꾸만 내려앉는 '은혜화'의 흔적일까.

반복되는 일상에 지치지도 않게 먼지를 얹는 것은 나였다.

그 무질서한 '은혜화'를 지우기 위해, 애쓰고 있다.

고압수로 굵은 먼지를 씻어내고 스노우폼을 뿌려 때를 불리는 3분 남짓한 시간. 하얀 거품이 차를 덮을 때마다 기억의 거품들도 함께 차올랐다.


세차장에 오면 그는 늘 나를 차 안에 가만히 앉아 있게 했다. 그리고는 커다란 덩치로 차 주위를 빙빙 돌며 누구보다 섬세하게 차를 닦았다.

언젠가 나보다 한 달 먼저 차를 산 친구가 세차장 솔로 바디를 닦았다가 잔흠집 나 속상해하던 에피소드를 들려준 뒤로, 그는 내 차를 마치 아기 다루듯 애지중지 닦아주곤 했다.

그러면서, "세차는 꼭 친구네 가서 해. "

그가 없으면 내가 고생할 것을 알았는지, 그는 전문 세차장을 운영하는 친구를 내게 '보험'처럼 남기고 갔다. 하지만 나는 오늘 그의 손길이 닿았던 그 동선을 따라 혼자 세차를 했다.


걸레를 비비다 문득 멈췄다. 나는 고무장갑을 끼고 세차를 했는데, 그는 추우나 더우나 한결같이 맨손으로 이 걸레들을 빨았을 것이다. 자기 몸 아낄 줄은 모르고, 오로지 아내의 차에 얼룩 하나 남지 않기만을 바랐던 사람. 요즘 세상에 보기 드문, 무조건적인 헌신을 바치던 '은혜바라기' 남편이다.

반짝이게 닦인 차체 위로 오후의 햇살이 부서진다.

차는 새것처럼 깨끗해졌는데, 걸레를 바라보는 내 눈시울은 뜨겁다. 이제야 알 것 같다. 그가 닦아냈던 건 차에 묻은 오물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며 마주할 세상의 거친 풍파들이었음을.

그 손은 나를 그늘 없이, 티 없이 맑은 소녀처럼 머물게 해 주기 위해 스스로 거칠고 투박해지기를 선택한 손이었다. 내가 어디서든 우아하고 깔끔한 모습으로 설 수 있도록, 뒤에서 묵묵히 땀 흘리던 수고로운 손이었다.

다시 그 손이 생각났다. 그 거친 손이 한없이 그리울 뿐이다.


반짝이는 차를 보면서 그의 칭찬을 기대하는 순간, 몇 방울의 물이 차에 흔적을 남겼다. 마음에 남은 그리움의 얼룩 같다. 그냥 두련다. 내가 그의 꼼꼼함을 따라갈 수 없는 덜렁거림을 남겨두고 싶다. 그는 하늘에서도 " 아무렴, 덜렁이 김은혜! ”할 것도 같고, “거봐, 닦아놓으니 얼마나 보기 좋아. 잘했어!"라며 흐뭇하게 웃고 있을 것도 같다.


그는, 가끔 세차를 하고 주유를 가득해서 내 직장 주차장에 살짝 갖다 놓고는 내가 기뻐하는 것을 보며 좋아하던 얼굴이 떠오른다.

나는 그의 정성으로 살았다. 그가 정갈하게 닦아 놓은 길 위에서, 그가 가득 채워준 사랑을 동력 삼아 나는 마음껏 세상에 기대어 살았다.

누가 나를 위해 이토록 깊고 진하게 사랑을 해줄까? 다시 그런 사랑을 받을 수가 있을까?

딸들에게 얘기해 준다.

꼭 너희의 삶을 이토록 귀하게 여겨주고, 아빠처럼 존재 자체로 헌신하는 사람을 만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고 말이다.


반짝이는 차를 보며 이제는 스스로에게 말해본다.

당신이 없어도 이제 내 차는, 그리고 내 마음은 쉽게 '깨진 유리창'이 되지 않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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