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빛나는 별일수록 빨리 타기 쉽다는데, 당신은 내게 그런 별이었나 봅니다.
어디서든 유독 돋보였고, 주변을 환하게 밝히던 사람. 그래서인지 당신은 남들보다 조금 서둘러 밤하늘 너머로 건너갔습니다.
봄비가 내리는 저녁입니다.
퇴근길, 문득 냉동실에 둔 문어와 지난가을에 얻은 배추가 베란다 스티로폼 박스에 있는 게 생각났습니다. 시원하게 국을 끓여 딸아이와 마주앉을 생각에 전화를 걸었지만, 자기 관리 중인 딸은 "패스"라는 짧은 답을 보내옵니다.
커다란 냄비를 꺼내려다 이내 손을 접습니다. 나의 큰 손은 늘 당신과 함께 먹을 분량을 기억하는데, 이제 그 국을 함께 비워줄 당신이 없다는 사실이 새삼 주방을 낯설게 만듭니다. 결국 국 냄비 대신 딸기 한 접시를 씻어 소파에 앉았습니다.
거실 벽에는 당신의 맘에 쏙 들었던 커다란 TV가 걸려 있습니다. TV 보기를 좋아하던 당신을 위해 내가 더 부추겨 샀던 선물. 당신은 딱 한 달간 그 화면 속 세상을 행복하게 누비다, 이 커다란 유산을 내게 남기고 떠났습니다.
영화를 보려다가 당신의 휴대전화를 열었습니다.
모임 총무였던 당신의 회비를 친구들에게 보내주려는데, 인증서가 만료되었다는 창이 뜹니다. 일주일 넘게 당신의 전화를 들여다보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사망신고를 마친 세상의 행정이 당신의 흔적을 지워낸 모양입니다. 차가운 팝업창 하나가 날아와 꽂힙니다.
갤러리 안에는 당신이 아끼던 비행기 사진들이 가득합니다. 강변 둔치에서 창공으로 비행기를 띄울 때는 세상의 모든 걱정과 고통이 다 잊혀 "세상 시원하다"며 아이처럼 웃던 당신. 조금만 건강해지면 꼭 다시 날리고 싶다던 그 보물들은, 이사를 오며 헐값에 처분해야 했지요.
평택에서 온 젊은이에게 하나라도 더 챙겨주며 신나 하던 당신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당신은 본인의 분신을 보내면서도, 같은 취미를 가진 젊은이의 설렘을 먼저 읽어주던 넉넉한 마음을 가진 ,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항암을 하면서 절친 동기들과 다녀온 제주도 여행 사진 속 당신은 유독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여행을 다녀온 뒤, 그 맛집들을 나와 딸에게도 보여주고 싶다며 다시 제주로 향했던 다정한 사람. 사진 속 당신의 곁에선 우리 모두가 웃고 있습니다.
못 보던 당신의 사진들을 내 카톡으로 옮겨두고 잠시 딴청을 피웠습니다. 그때, 내 휴대폰에서 익숙한 알림음이 울렸습니다. 화면에는 당신의 이름이 떠 있어 너무 반가웠습니다.
"어? 여보가 카톡을 보냈네!"
단 30초였습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기쁘고 행복했는데, 갑자기 주변이 모두 정지가 된 듯합니다.
이내 내가 보낸 사진임을 알았지요. 그 찰나의 착각이 너무 달콤해 조금만 더 천천히 알아차릴 걸 그랬다며 혼자 웃었습니다.
이제 나는 당신의 영상을 보며 함께 웃습니다. 세월이 흘러가면 나는 백발이 되고, 영상 속 당신은 여전히 청년으로 남았을 때 나는 어떤 마음으로 당신을 보게 될까요.
함께 갔던 곳을 다시 찾아갈 용기도, 같이 가자 약속했지만 끝내 가보지 못한 곳으로 걸어갈 용기도 이제는 오롯이 내가 내어야겠지요.
우리가 함께한 날들은 결코 짧지 않았는데, 남겨진 영상이 너무 적어 마치 짧은 소풍 같기만 한 밤입니다.
당신이라는 별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서 가장 밝게 빛나고 있습니다.
봄비가 내렸던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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