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리니의 소금통
광기와 천재성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하지요? 특히 그 광기의 주인공이 극단적이고 충동적인 살인마인데, 예술이나 학문에 있어서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다면 어떨까요. 왠지 모르게 오싹하면서도 묘한 경외감이 느껴질 것입니다.
16세기 중반 이탈리아, 직관과 수학적 대칭을 중시했던 전성기 르네상스 예술은 점차 기교와 과장을 중시하는 매너리즘(Mannerism) 양식으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당시 엘리트들 사이에서 은밀하게 공유되던 복잡한 상징을 모르면, 예술품을 해석하는 것조차 난해해지던 시대였죠.
바로 이 시대적 배경 속에서, 역사상 가장 매혹적이고 위험한 보석 세공사가 이탈리아에 등장합니다.
그의 이름은 벤베누토 첼리니(Benvenuto Cellini).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극단적으로 충동적인 인물이었으나, 보석 세공 기술만큼은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천재였습니다.
그는 거슬리는 사람을 공격하고 심지어 살인도 몇 번이나 저지른 범죄자였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교황 바오로 3세와 프랑스 국왕 프랑수아 1세는 그의 압도적인 실력을 활용하기 위해 범죄를 눈감아주었죠. 말년에 그가 남긴 자서전을 보면, 자신의 범죄를 영웅적인 행위로 치켜세울 정도로 오만하고 기고만장한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이 미치광이 천재가 프랑수아 1세의 주문을 받아 제작한 궁극의 걸작이 바로 살리에라(Saliera)라 불리는 황금 소금통입니다.
작품에 사용된 재료는 순도 90% 이상의 고순도 금, 화려한 에나멜, 그리고 최고급 흑단목 등입니다.
특히 이 소금통의 입체적인 황금상은 금덩이를 녹여 부은 것이 아니라, 고순도 금판을 망치로 수없이 두드려 형태를 잡는 타출 기법(Repousse)으로 성형되었습니다.
이 기법을 완벽하게 구사하려면 작업 중간중간 불에 달구는 열처리를 반복해야 하는데, 자칫 실수할 경우 가열 부위에 치명적인 균열이 갈 수 있어 극도의 주의가 필요합니다.
또한 황금상 곳곳에 박힌 매혹적인 청록색은 색 유리 가루를 금속 표면에 올린 뒤 고온의 열로 녹여 만든 에나멜(Enamel)입니다. 에나멜은 보석에 비견되는 아름다운 색감을 보여주지만, 열처리를 조금만 잘못해도 유리가 깨져버리거나 금속에서 탈락해 버리는 고난도 기술입니다.
작품의 기하학적이고 복잡한 형태를 고려하면, 첼리니의 손끝은 가히 당대 최상급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디자인 역시 매너리즘 시대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얽혀 있는 두 나체상은 각각 땅의 여신 케레스(Ceres)와 바다의 신 넵튠(Neptune)을 묘사하고 있으며, 이는 각각 귀한 향신료인 후추와 소금에 대응됩니다. 즉, 케레스 옆에 있는 화려한 신전 모형은 후추통, 넵튠 옆에 있는 정교한 배 모형은 소금통을 의미합니다.
두 신이 다리를 교차하며 관능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는 것은 일종의 예술적 기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바다와 땅이 만나는 해안선과 두 자연의 완벽한 결합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것입니다.
이 엄청난 황금 조각을 떠받치고 있는 기단부는 검은 흑단목으로 제작되었습니다. 그 위에는 사계절을 상징하는 정교한 조각상과 적색 에나멜 장식, 그리고 바람의 신과 녹색 에나멜 장식이 빈틈없이 놓여 있습니다. 양념통의 받침대에 당대의 우주적 질서를 완벽하게 축소해 표현해 낸 것입니다.
첼리니의 소금통은 후기 르네상스 매너리즘의 전형적인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당시 금값과 맞먹었던 값비싼 소금과 후추를 세상에서 가장 우아하게 먹고 싶다는 군주의 허영, 그리고 금속을 다루는 기술적 완벽함에 대한 살인마 천재의 광적인 집착. 이 두 가지가 만나 탄생한 역사상 가장 기묘하고 압도적인 걸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