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하게 입은 젊은이의 손목에서 반짝이는 금통 시계, 롤렉스의 최고급 모델인 '데이 데이트(Day-Date)'는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는 마법 같은 매력이 있습니다. 톱니처럼 화려한 플루티드 베젤과 찰랑거리는 프레지던트 브레이슬릿이 엄청난 빛을 반사시키면서 말이죠.
물론, 6천만 원이 훌쩍 넘어가는 그 데이 데이트가 진품이라는 보장은 없을 겁니다. 롤렉스는 전 세계에서 짝퉁이 가장 넘쳐나는 브랜드이기 때문이지요. 비록 가짜일지라도 그 특유의 화려한 생김새는 정품과 분별하기 어렵기에, 저렴한 가격에 과시욕을 든든하게 채워주는 짝퉁 금통 롤렉스에 대한 수요는 결코 끊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시계가 점차 대중에게 보급되던 19세기에도 회중시계와 알버트 체인이라 불리던 회중시계 줄은 현대의 롤렉스에 비견되는 물건이었습니다. 특히 황금으로 만든 금통 회중시계와 체인은 지금의 금통 데이 데이트처럼 엄청난 부의 과시 아이템이었습니다.
문제는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 기준, 제대로 된 회중시계의 가격이 상상을 초월했다는 점입니다. 정교한 영국제나 스위스제 무브먼트에 금통 시계 케이스와 금줄을 맞추는 것은, 현대의 기준으로도 롤렉스 데이 데이트를 사는 것과 맞먹는 엄청난 지출이었습니다.
일반적인 노동자는 회중시계를 구하기조차 어려웠고, 무리해서 구하더라도 당시 저가로 유통되던 노브랜드 스위스제 무브먼트에 나중에 현금으로 바꾸기 쉬운 은(Silver)으로 케이스와 시계줄을 맞추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현금이 필요할 때는 케이스와 줄의 은을 전당포에 맡겨 마치 마이너스 통장처럼 돈을 융통하곤 했지요.
그러나 돈을 어느 정도 벌지만 진짜 금통 시계를 살 자본은 없었던 중간 계층(하급 사무직과 숙련 노동자들)은 은제 시계로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대신 그들은 육안으로는 금통 시계와 감별이 어려운 S급 짝퉁 소재인 핀치벡(Pinchbeck)으로 케이스와 시계줄을 만들고, 거기에 저렴한 무브먼트를 박아 넣는 선택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핀치벡이라는 소재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사실 이 소재는 구리(Cu)와 아연(Zn)을 섞어 만든 합금, 즉 황동(Brass)의 일종입니다. 일반적인 황동은 아연의 함량이 30% 이상으로 높아 공기 중에서 변색에 취약하고 미묘하게 탁한 노란색을 띱니다.
반면 핀치벡의 경우, 아연의 함량을 무게비 기준 20% 이하로 절묘하게 줄여 진짜 18K 옐로우 골드와 거의 완벽하게 동일한 색상을 구현해 냈습니다. 게다가 황동 특유의 변색 문제도 크게 개선되었죠.
핀치벡 시계는 평범한 노동자들의 은제 시계처럼 전당포에 맡길 수 있는 환금성(換金性)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외관만큼은 당대 최고급 금통 시계와 전혀 다르지 않은 완벽한 짝퉁이었습니다. 현대로 치면 가짜 금장에 저가 일본산 무브먼트를 넣은 '가짜 금통 롤렉스'와 완벽히 똑같은 위치였던 셈입니다.
놀랍게도 19세기 초반 짝퉁 시계의 대명사로 쓰이던 핀치벡의 태생은 나름 최고급이었습니다. 1720년대 런던의 시계 장인이었던 크리스토퍼 핀치벡이 이 합금을 처음 선보였을 당시 이 소재의 주된 용도는 다름 아닌 귀족들의 '여행용 주얼리'였습니다.
18세기 유럽은 귀족들이 마차를 타고 대륙을 여행하는 문화가 융성했지만, 치안이 몹시 좋지 않아 노상강도가 들끓었습니다. 이 때문에 귀족들은 진짜 황금과 보석으로 만든 고가품은 저택의 금고에 안전하게 두고, 여행 중에는 가짜 황금인 핀치벡으로 똑같이 복제한 모조 장신구를 착용해 강도 피해를 막았습니다.
나름 귀족들의 호신용 애장품이던 핀치벡의 품위는 19세기 초반 산업혁명이 본격화되며 바닥으로 추락했습니다. 금속 가공업자들이 핀치벡을 이용해 가짜 금통 시계나 싸구려 공예품을 대량으로 찍어내며 대중 시장에 뿌려댔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19세기 중반에 이르러서는 '핀치벡(Pinchbeck)'이라는 단어 자체가 '겉만 번지르르한 싸구려 모조품'을 뜻하는 모욕적인 명사로 사용될 정도였습니다.
한동안 천박한 싸구려 취급을 받던 핀치벡은 20세기 초반에 이르러 또 한 번 반전을 맞이합니다. 유명 디자이너들이 핀치벡을 활용한 주얼리 등을 다시 선보이며 가성비 좋고 아름다운 장식 소재로 인식을 바꾸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1950년대 중반부터는 거센 앤틱(Antique) 열풍 덕분에, 100년 전에 정교하게 제작된 빅토리아 시대의 핀치벡 공예품들 중 일부가 진짜 황금 공예품보다 더 비싸게 거래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결국 핀치벡은 '장기적으로 모든 것은 평균에 회귀한다'라는 통계학의 진리를 역사적으로 증명해 준 소재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귀족의 호신용품으로 화려하게 태어나 싸구려 짝퉁으로 추락했다가, 다시금 귀한 앤틱 예술품으로 부활한 핀치벡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보면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