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만 명의 병졸들이 쇠뇌를 들고 적을 향해 발사합니다. 창으로 무장한 병사들이 거대한 방진을 만들며 돌진하는 기병대를 격파합니다. 고대 중국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종종 등장하는 웅장한 전쟁 신(Scene)이죠.
전국시대는 전쟁의 양상이 근본적으로 크게 변화한 시기입니다. 전국시대 이전인 춘추시대가 귀족들이 전차를 타고 벌이는 일종의 패거리 싸움이었다면, 전국시대는 전 백성을 동원한 끔찍한 총력전에 가까웠습니다.
국가가 수만, 수십만 명의 군대를 동원해 적국의 백성을 학살하고 영토를 초토화시켰습니다. 이런 전쟁 양상의 변화는 대체 왜 일어났을까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가장 핵심적이고 치명적인 이유는 바로 철(Iron)이었습니다.
교과서에서는 철기 시대를 '문명의 진보'라고 아름답게 포장하지만, 그 화려한 진보의 뒤편에는 수십만 명의 백성들이 무참히 갈려나가고 죽어갔던 피비린내 나는 진실이 숨겨져 있습니다.
기원전 800년경, 중원은 이미 서방의 유목민을 통해 철기 기술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 시기의 철은 가마에서 철광석을 1,200도로 구운 다음, 숯과 공기를 이용해 철광석 속 산소를 빼내서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만든 철을 해면철(Sponge Iron) 혹은 연철(Wrought Iron)이라고 하는데, 내부의 탄소 함량이 0.1% 이하로 매우 낮아 무기로 쓰기엔 상당히 물렀습니다.
그러나 기원전 500년경 중국에서 거대한 기술적 혁신이 일어납니다. 산소를 불어넣어 주는 풀무라는 기구와 가마의 소재를 개량하여, 내부 온도를 1,400도 가까이 끌어올리는 방법이 고안된 것입니다. 중국인들은 이 초고온 가마에 철광석과 숯을 같이 넣고 철광석을 완전히 녹여내는 데 성공합니다.
이렇게 녹인 쇳물을 틀에 부어서 굳혀 만든 것을 주철(Cast Iron)이라고 합니다. 주철은 탄소 함량이 2% 이상이라 몹시 단단했지만, 무른 연철과 달리 충격을 받으면 쉽게 깨져버렸습니다.
주철 무기로 적의 청동제 갑옷을 내리치면 오히려 무기가 박살 나 버렸기에, 무기로는 제한적으로만 사용되었습니다. 대신 당시의 공학자들은 이 주철을 대량으로 녹여서 가마솥이나 농기구를 만들어 냈습니다.
비극은 바로 여기서 시작되었습니다. 쇳물을 틀에 붓기만 하면 되는 주철의 생산성은 당대 어떤 소재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이었습니다. 튼튼한 주철 농기구가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자 단단한 땅을 개간하기가 훨씬 쉬워졌고, 농업 생산성은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이는 곧 엄청난 인구 증가로 이어졌습니다.
전국시대의 권력자들은 이 막대한 인구를 전쟁에 활용하기 위해 조세제도와 징병제를 치밀하게 정비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백성들은 농번기에는 국가가 대여해 준 농기구로 뼈 빠지게 농사를 짓고, 농한기인 휴지기에는 어김없이 병사로 징집되었습니다.
게다가 한나라 시기에 이르러 초강법(炒鋼法)이라는 혁신적인 제철 기술이 개발됩니다. 초강법은 펄펄 끓는 쇳물을 저어가며 산소에 노출시키는 극한의 공정입니다. 산소를 쇳물 속 탄소와 반응시켜 날려 보내면, 철의 탄소 함량을 1% 내외로 줄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철을 강철(Steel)이라고 부르며, 적당히 유연하면서도 강도가 매우 뛰어나 치명적인 무기로 쓸 수 있었습니다.
결국 철광석을 완전히 녹인 다음 탄소를 빼내는 제철 기술이 도입되면서, 강력한 강철 무기의 양산화가 가능해졌습니다. 이에 한나라 대에는 수십만 명을 철기로 무장시켜 적군을 무참히 도륙하는 총력전이 일상화되었습니다. 그야말로 끊임없이 죽고 죽이는 대량 학살극이 시작된 것입니다.
강철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것은 개인이나 작은 공방 규모로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때문에 전국시대 말기의 국가들, 심지어 통일 왕조인 한나라조차 대규모 징용과 노예제, 그리고 극단적인 분업화를 결합해 생산성을 강제로 끌어올렸습니다.
대표적으로 한나라의 전성기를 이끌었다고 칭송받는 한무제는 매년 한 달씩 백성들을 징용했을 뿐만 아니라, 멀쩡한 사람들을 범죄자로 전락시켜 거대한 국영 제철소를 돌렸습니다. 제철소는 좋게 말하면 철저한 분업, 나쁘게 말하면 지독한 탈숙련화를 통해 가동되었습니다.
한무제의 터무니없는 악법인 염철전매제(鹽鐵專賣制, 철과 소금을 국가가 독점하는 법)를 어긴 수많은 백성들은 하루아침에 범죄자가 되어 국가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이 노예들은 강철을 만들기 위해 방호복 하나 없이 펄펄 끓는 쇳물을 막대기로 휘저어야만 했습니다. 초강 공정은 일산화탄소가 엄청나게 방출되기에 늘 질식의 위험이 도사렸고, 장기적으로는 쇳물의 무시무시한 빛과 열기에 노출되어 시력이 영구적으로 손상되거나 전신에 끔찍한 화상을 입었습니다
강제로 징용된 자들은 고열 속에서 하루 종일 풀무를 돌려야 했습니다. 1,400도에 육박하는 거대한 고로 아래에서 이들은 수시로 탈진해 쓰러졌습니다. 관절은 빠르게 마모되어 30대만 되어도 제대로 걷는 것조차 불가능해졌습니다. 그리고 전쟁이 터지면, 이 병든 노동자들은 다시 징병되어 자신들의 피땀으로 만든 강철 무기를 들고 적진을 향해 고기방패로 내던져졌습니다.
즉, 국가는 백성들의 고혈을 쥐어짜 강철을 만들고, 그 강철로 다시 백성을 무장시켜 사지로 밀어 넣은 것입니다. 그 지옥 같은 과정 속에서 백성들이 유의미한 기술을 전수받는 일 따위는 극단적인 탈숙련화로 인해 전무했습니다.
주철 기술은 폭발적인 인구 증가를 가져왔지만, 후대의 강철 제작 기술과 결합하여 역사상 유례없는 대규모 살상극을 유도했습니다. 지배층은 오직 강철 생산량과 군인 수를 늘리기 위해 살인적인 세금과 징용, 염철전매제 같은 터무니없는 법으로 백성들의 숨통을 조였습니다.
아버지는 국영 제철소로 끌려가 관절이 파열되며 강철 무기를 벼려내고, 징병된 자식은 누군가의 아버지가 만든 강철 무기에 몸통이 꿰뚫려 죽어가던 비극의 시대. 이것이 바로 우리가 '문명의 진보'라고 칭송하는 철기 시대의 참혹한 민낯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