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아스 강독

운명과 영혼의 서사시

by 이성주


Prologue: 어떻게 읽고 무엇을 얻어갈 것인가.

안팎으로 변화의 물결이 거센 시대이다. 경제 문제만이 삶의 주된 문제 인 듯, 경제만을 외치는 시대지만 그러한 세상의 시류 속에서도 자기 삶의 중심을 잡는 문제에 대해 고민해 봐야 할 시점이다. 코로나 19로 인해 격변한 인류의 삶의 양식과 그로 인해 맞이하게 될 새로운 표준(New Normal)은 복잡다단한 일상의 층위를 맞이하고 있는 일반적인 생활인들에게도 분명한 도전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도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감내할 것인가? 변화의 물결 앞에서 주저앉을 것인가 아니면 시대 흐름을 읽어내는 통찰력을 발휘해 정상에 오를 것인가? 이 도발적인 질문에 대한 해답을 필자는 ‘고전’에서 찾았다. 세상엔 많은 책들이 있고, 많은 학문 분야가 있다. 경제학, 경영학 처럼 사회의 작동원리를 실용의 관점에서 분석한 학문도 있고, 부동산 학처럼 실물 경제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학문도 더러 있다. 그런데 ‘고전’은 어떠한가? ‘고전’은 우리가 사는 경제 문제와는 밀접한 관련이 없을지 모른다. 다만, 고전은 인류의 시간이라는 혜택을 받아 오랜 시간 영속성을 거치면서 변하지 않는 삶의 진실을 전달하고자 한다. 필자는 이 ‘변하지 않는 삶의 진실’에 주목했다. 실용 학문과는 다른 고전만이 가지는 삶의 진실과 그 층위속에서 뚜렷하게 나타나는 인간사의 다양한 측면을 살펴보고 싶다는 욕구가 강했다.

그래서 ‘고전 중의 고전’이라 불리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강독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는 책 1권이 다시 24개의 작은 부분으로 이루어진 한 편의 ‘서사시’이다. 결국 문명은 서양에서 태동했다고 보는 것이 올바른 관점이라면, 일리아스는 ‘서양 최초의 서사시’이자 ‘세계 최초의 서사시’라고 불러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필자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의 전 24장의 내용을 중요한 전투를 중심으로 간략하게 강독하며 소개할 예정이다. 우리가 전부를 읽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여유가 없다면 중요한 장면을 위주로 간단한 ‘요약’을 통해 전체를 위한 발판으로 삼아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된다.

결국 이러한 고전 강독을 통해 필자는 세태나 시류에 앞서 급격한 정보 통신 혁명에 도달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고전 만이 갖고 있는 ‘느림의 미학’과 ‘진중함의 미학’을 찾아내고 싶다. 항상 빨리 해내는 것을 강권하는 사회에서 조금 멀리 보고 천천히, 그러나 반듯하게 고전작품을 강독하고 읽어가는 작업도 매우 가치있는 일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그럼 이제 호메로스와의 대화를 시작하자.


제1권: 아킬레우스의 분노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아카이오족에게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안겨주었으며 숱한 영웅들의 굳센 혼백을 하데스에게 보내고 그들 자신은 개들과 온갖 새들의 먹이가 되게 한 그 잔혹한 분노를! 인간들의 왕인 아트레우스의 아들과 고귀한 아킬레우스가 처음에 서로 다투고 갈라선 그날부터 이렇듯 제우스의 뜻을 이루어졌도다.”


다음은 일리아스 1권 1행의 구절이다. 일리아스는 처음부터 무엇에 관해 노래를 하는 작품인지를 명확하게 정의해 놓았다. 바로 아킬레우스의 ‘분노’이다.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상관이었던 아가멤논에게 처음은 분노를 보인다. 그의 분노의 화살은 이후 트로이군의 헥토르에게 향하고, 결국 헥토르를 처참하게 살해한다. 다만 그의 ‘분노’는 헥토르의 시신을 다시 돌려줌으로써 가라 앉게 된다.

즉 아킬레우스의 분노가 어디서부터 시작해 어떻게 전개되고 어떤 방식으로 가라앉게 되는 지에 대해 말하는 작품이 일리아스이다. 학자들은 이를 가르쳐 ‘특수 주제’라고 표현한다. 작가는 아킬레우스의 분노라는 특수주제를 바탕으로 트로이 전쟁이라는 ‘일반 주제’를 은연중에 표현하려고 한다. 특수 주제와 분노 주제가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 일리아스의전체를 이룬다. 아킬레우스는 분명히 분노하지만 우리는 그의 분노만을 지켜보는 것이 아니다. 그의 분노가 일으킨 트로이 전쟁의 치열함과 그 과정에서 인간과 신들의 분투 역시도 살펴보게 된다. 그러면 도대체 왜 아킬레우스는 ‘분노’했는가? 자신의 상관이었던 아가멤논이 그의 여인을 빼앗았기 때문이다. 사실, 아가멤논에게도 전리품으로 여인이 배당되었다. 하지만 그 여인의 아버지는 아폴론 신을 모시는 제사장이었고, 제사장의 딸을 취한다는 것은 분명히 아폴론신을 노하게 할 일이었다. 하지만 딸을 되찾으러 온 늙은 제사장에게 아가멤논은 딸을 돌려줄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노인장! 지금 이곳에서 지체하거나 아니면 차후에라도 찾아와 속이 빈 함성들 사이에서 다시는 내 눈에 띄는 일이 없도록 하시오. 그때는 홀도 신의 화환도 그대를 돕지 못할 것이오. 그대의 딸을 돌려주지 않겠소.”


딸을 절대 내어 줄 수 없다는 아가멤논의 으름장에 겁먹고 좌절한 노인은 자신이 모시는 아폴론신에게 가서 자신의 딸을 빼앗은 저 희랍군 총대장에게 벌을 내려 달라고 간청한다.


“은궁(銀弓)의 신이시여! 내 기도를 들어주소서. 오오 스민테우스여! 내 일찍이 그대를 위하여 마음에 드는 신전을 지어드렸거나 황소와 염소의 기름진 넓적다리뼈들을 태워올린 적이 있다면 내 소원을 이루어주시오. 그대의 화살로 다나오스 백성들이 내 눈물값을 치르게 하소서.”


노인은 아폴론사제 앞에 가서 자신의 딸을 모욕한 희랍군에게 벌을 내려 달라고 간청한다. 자신을 봉양하는 사제의 깊은 울음을 듣게 된 아폴론은 사제의 딸을 구해줘야 겠다고 마음먹는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성난 어깨 위에서는 화살들이 요란하게 울렸다. 그가 다가가는 모습은 마치 밤이 다가오는 것과도 같았다. 그가 함선들에서 떨어져 앉아 화살을 날려보내자 그의은궁에서 무시무시한 소음이 일었다.”


아폴론은 전통적으로 은궁(銀弓)의 신이다. 다만 그가 쏘는 화살은 그 자체의 위력도 매우 강력했지만 전염병을 퍼지게 하는 독까지 담겨있었다. 독이 퍼지는 화살을 퍼붓는 아폴론 신의 공격으로 인해 위기에 처한 희랍군은 대응 방안을 논의한다.


“신이 노여워하시는 까닭은 서약이나 헤카톰베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사제 때문이오. 아가멤논이 그를 모욕하며 그의 딸을 돌려주지도 않고 몸값도 받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란 말이오.”


가장 확실한 해결책은 역시 아가멤논이 강제로 빼앗은 크뤼세스란 여인을 다시 노인에게 돌려주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아가멤논은 자신의 아리따운 전리품을 되돌려주는 것을 극구 꺼렸고, 심지어 자신의 아내보다 전리품으로 주어진 여인을더 사랑하게 될 것 같다고 공공연히 떠든다. 다만 아무리 총대장 아가멤논이라도 주위 희랍군 참모들의 설득과 압박에는 어찌 할 수 없었다. 그는 여인을 돌려주겠다고 결심한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지 않고 자신에게 배당된 여인을 제사장에게 돌려주는 대신 아킬레우스에게 배당된 ‘브뤼세이스’라는 여인을 빼앗는다. 이것이 아킬레우스가 결정적으로 ‘분노’하게 된 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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