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장 싫어하는 음식
두 번째 달의 첫 주 월요일. 민희는 이제 완전히 참사랑의 집의 일원이 되었다. 거주인들도 민희를 가족처럼 대했고, 민희 역시 이들을 진심으로 아꼈다.
오늘 메뉴는 비빔밥이었다. 각종 나물과 고기, 계란, 고추장을 넣어 비벼 먹는 음식. 영양학적으로도 균형이 잡혀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메뉴였다.
"오늘은 비빔밥 어때요?" 민희가 정희 씨에게 물었다.
"좋아요. 다들 비빔밥 좋아하니까."
아침 준비를 시작했다. 시금치나물, 콩나물, 당근, 호박을 각각 볶았다. 쇠고기도 양념해서 볶아놓았다. 밥 위에 예쁘게 올릴 준비를 마쳤다.
거주인들이 하나씩 모여들었다. 민수가 제일 먼저 나타났다.
"와! 비빔밥이다! 저 비빔밥 좋아해요!"
혜진도 환호했다.
"비빔밥 최고예요!"
하지만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새로 들어온 거주인 태우가 비빔밥을 보자마자 얼굴이 굳어졌다.
태우는 30대 중반의 남성으로, 2주 전에 참사랑의 집에 왔다. 지적장애 2급으로, 말을 할 수 있지만 감정 표현이 서툴렀다. 민희는 아직 태우를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태우야, 비빔밥이야. 먹자." 정희 씨가 말했다.
하지만 태우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싫어요."
"왜? 비빔밥 맛있는데."
"싫어요. 저 안 먹어요."
태우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태우야, 괜찮아. 다른 거 해줄게." 정희 씨가 진정시키려 했다.
하지만 태우는 주방 쪽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저 음식 싫어요! 저거 나쁜 음식이에요!"
민희는 당황했다. 나쁜 음식? 비빔밥이 왜 나쁜 음식일까?
태우는 자기 방으로 뛰어 들어가 버렸다. 문을 쾅 닫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에요?" 민희가 정희 씨에게 물었다.
"글쎄요... 태우가 비빔밥을 거부한 건 처음이에요."
유미가 출근해서 상황을 파악했다.
"태우가 또 그러네요. 요즘 자주 그래요."
"자주요?"
"네, 특정 음식을 보면 거부해요. 지난주에도 된장찌개를 보고 똑같이 반응했어요."
민희는 고민에 빠졌다. 태우가 왜 특정 음식을 거부하는 걸까?
오후에 유미와 함께 태우의 방으로 갔다. 태우는 침대에 앉아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태우야, 괜찮아?" 유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태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침에 왜 화났어?"
"..."
"비빔밥이 싫었어?"
태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왜 싫은데?"
태우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목소리가 떨렸다.
"예전에... 그 집에서..."
"어느 집?"
"전에 살던 집에서... 비빔밥 주면서... 욕했어요..."
민희와 유미는 서로를 바라봤다.
"누가 욕했어?"
"아저씨가... 밥 먹으라고 던지면서... '이것도 못 먹냐'라고... 욕했어요..."
태우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그래서 비빔밥 보면... 무서워요... 그때 생각나요..."
민희의 가슴이 먹먹해졌다. 태우에게 비빔밥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학대받았던 기억, 두려움, 상처가 담긴 음식이었다.
"태우야, 미안해. 몰랐어." 민희가 말했다.
"선생님... 잘못 없어요... 저만... 이상한 거예요..."
"아니야, 태우야. 너는 이상하지 않아."
유미가 태우의 손을 잡았다.
"무서운 기억이 있는 거야. 그건 당연한 거야."
태우가 유미를 바라봤다.
"그래도... 저만 안 먹으면... 다른 사람들 불편하잖아요..."
"그렇지 않아. 우리는 네가 편한 게 중요해."
민희가 말했다.
"태우야, 앞으로는 비빔밥 안 해줄게. 대신 태우가 좋아하는 음식 해줄게."
"정말요?"
"응, 정말이야. 그리고 태우야, 다른 음식 중에도 싫은 게 있으면 말해줘."
태우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된장찌개도... 싫어요... 그것도 그때..."
"알았어. 된장찌개도 안 해줄게. 아니면 태우 것만 따로 해줄게."
태우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선생님... 저 때문에 너무 힘들지 않아요?"
"전혀 안 힘들어. 태우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그날 저녁, 민희는 태우를 위해 특별 메뉴를 준비했다. 비빔밥 대신 김치볶음밥으로.
태우가 조심스럽게 식당에 나타났다. 자신의 자리에는 다른 음식이 놓여 있었다.
"이거... 저 거예요?"
"응, 태우 특별 메뉴야."
태우가 밥을 한 숟가락 떠서 먹었다. 그리고 눈물을 흘렸다.
"왜 울어, 태우야?" 민수가 물었다.
"아니에요... 그냥... 고마워서요..."
다른 거주인들도 태우를 이해했다.
"태우 오빠, 괜찮아요. 우리는 다 다르잖아요." 혜진이 말했다.
"맞아요... 준호 오빠도 냄새 싫어하고, 저도 매운 거 못 먹잖아요."
수정이 조용히 말했다.
"우리... 다 다른 거... 좋아요..."
태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밥을 계속 먹었다.
다음 날, 유미가 민희에게 태우의 과거 기록을 보여줬다.
"태우는 이전 시설에서 학대를 받았어요. 음식을 강제로 먹이면서 욕을 하고, 때리기도 했대요."
"그래서 특정 음식에 트라우마가 있었군요."
"네, 그 시설에서 자주 나왔던 메뉴가 비빔밥이랑 된장찌개였대요."
민희는 한숨을 쉬었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선생님이 이해해 주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이전 시설에서는 '편식하지 마라'며 억지로 먹였대요."
"그럼 더 트라우마가 심해졌겠네요."
"맞아요. 태우한테는 음식이 공포였을 거예요."
일주일 후, 태우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식사 시간에 웃기도 하고, 다른 거주인들과 이야기도 나눴다.
어느 날 아침, 태우가 민희에게 다가왔다.
"선생님..."
"응, 태우야?"
"저... 질문 있어요..."
"뭔데?"
"다른 사람들은 비빔밥 좋아하잖아요... 제 때문에 못 먹는 거 미안해요..."
민희가 태우를 바라봤다.
"태우야, 네 잘못이 아니야."
"그래도..."
"우리는 비빔밥을 다른 날 먹을 수 있어. 하지만 태우의 마음은 다른 걸로 대체할 수 없어."
태우가 눈물을 글썽였다.
"선생님... 저... 언젠가는 비빔밥 먹을 수 있을까요?"
"먹고 싶어?"
"아니요... 지금은 무서워요... 근데... 언젠가는... 무섭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민희는 태우의 손을 잡았다.
"괜찮아. 천천히 가자. 억지로 할 필요 없어. 네가 준비됐을 때, 그때 다시 도전하면 돼."
"정말요?"
"응, 정말이야."
두 달 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태우가 스스로 민희에게 말했다.
"선생님... 저... 비빔밥... 한 번 먹어볼래요..."
"정말? 준비됐어?"
"네... 여기서는... 안 무서울 것 같아요... 선생님이랑 다른 사람들이 있으니까..."
민희는 조심스럽게 비빔밥을 준비했다. 그리고 태우 앞에 놓았다.
태우가 숟가락을 들었다. 손이 떨렸다.
"괜찮아, 태우야. 천천히." 민희가 옆에 앉았다.
태우가 비빔밥을 조금 떠서 입에 넣었다. 그리고 천천히 씹었다.
눈물이 떨어졌다.
"무서워?" 민희가 물었다.
태우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맛있어요... 처음으로... 맛있어요..."
다른 거주인들이 박수를 쳤다.
"태우 오빠, 잘했어요!" 혜진이 소리쳤다.
"태우야... 대단해..." 수정이 말했다.
태우는 눈물을 흘리며 비빔밥을 계속 먹었다. 이제 그에게 비빔밥은 공포가 아니라 치유였다.
그날 밤 일기에 썼다.
'열한 번째 깨달음: 싫어하는 음식 뒤에는 이유가 있다. 때로는 나쁜 기억이, 때로는 트라우마가 숨어 있다. 음식을 억지로 먹이는 것은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것이다. 태우를 통해 배웠다. 진정한 치유는 기다림과 이해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민희는 감사한 마음으로 잠들었다. 태우가 다시 비빔밥을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음식 때문이 아니라, 사랑과 이해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