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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의 노을이라고

by 규린종희

그때 나는

가난한 화가들이

이국에서 건너온 잡지를 넘기는 틈에 끼여 말라버린 물감냄새를 찾아 킁킁거렸다

어쩌면

김흥수의 붉은 상징을 길어 올리면서

감각과 감각 사이를 예리하게 찌르는

마광수의 문장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아니

희고 긴 사라의 손가락이 파고든

3번과 4번 요추 이끼 낀 골짜기를

뽀드득뽀드득 걷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지금 나는
어제 접은 노을을 열어 어제에 갇힌 오늘을 풀며

붉은 그의 입술을 다녀간

사라의 노을 한가운데 있다


-그림. 설희. 종이 수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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