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미한 변화(봄)

- 말이 닿는 순간

by 김성훈


아이가 처음으로

내 말을 알아들은 것 같던 날,

나는 기쁨보다 먼저

낯선 이질감을 느꼈다.


우연이었을지도 모른다.

옹알이 사이에 섞여 있던 소음이

잠깐 단어의 모양을 흉내 냈을 뿐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날,

아이의 이름을 부르자

아이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나를 보았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시선은

이상하리만큼 또렷하게 남았다.


그날 이후

나는 말을 고르기 시작했다.


아이에게 들릴까 봐서가 아니라,


내가 던진 말이

어딘가에 남아

나중에야 모습을 드러낼 것 같아서.


삶이 눈에 띄게 달라진 건 아니었다.


출근 시간은 여전히 빠듯했고,

거실의 낡은 소파도 그대로였다.

창가에 피기 시작한 꽃들 역시

매년 보던 얼굴들이었다.


다만

방 안의 공기만큼은 달라져 있었다.


아이의 가느다란 숨소리,

막 씻긴 피부에서 나는 물 냄새,

오후 햇빛 속을 떠다니는 먼지.


아직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앞으로도 한동안은

드라마 같은 변화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이제,


내 삶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아주 미미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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