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좀 더 주세요 (겨울)

— 닫히지 않은 곳 —

by 김성훈


병원 냄새는 늘 그 겨울로 나를 데려간다.


그해 겨울, 강원도의 군부대는 온통 하얗게 닫혀 있었다.

복귀 행군 중 찾아온 복통은 맹장염이라는 진단으로 돌아왔고,

눈 때문에 오래 돌아 춘천 국군병원 수술대에 올랐다.


조금만 늦었어도 위험했을 거라는 말을 들었지만,

그날의 나는 그 말이 얼마나 가까웠는지 굳이 헤아리지 않았다.


회복기에 접어들 무렵, 병동 식사 당번을 맡게 되었다.

배정된 곳은 정신병동이었다.


철문은 늘 잠겨 있었고, 안으로 들어갈 때마다 신원 확인을 거쳐야 했다.

문이 닫히면 공기가 달라졌다.


소리는 낮아지고,

냄새는 바닥으로 가라앉아 있었다.


나는 배식대 뒤에서 김치를 담당했다.


그를 처음 본 건 배식 첫날이었다.


환자복을 입은 한 남자가 줄 맨 앞에 서 있었다.

나이는 가늠하기 어려웠고,

표정도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처음부터 나를 보고 있었다.


시비를 거는 눈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무언가를 요구하는 눈도 아니었다.


그의 시선은 나를 향해 있었지만,

나에게 닿아 있지는 않은 것 같았다.


나는 이유를 붙이지 않기로 했다.

그저 배식대의 소란 속에 그를 묻어두려 했다.


그는 매번 같은 자리에 섰다.

같은 시간, 같은 거리에서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김치를 퍼 올릴 때도,

식판을 내려놓을 때도

그의 시선은 움직이지 않았다.


카레가 나온 날,

그가 내 앞에 섰다.


나는 평소처럼 김치를 담아주었다.

카레 메뉴라 양은 충분했다.


그가 입을 열었다.


“김치 좀 더 주세요.”


낮고 일정한 목소리였다.

감정은 섞여 있지 않았다.


나는 식판의 빈칸에 김치를 더 얹었다.

그는 식판을 밀지 않았다.


주변에서 국자가 부딪히는 소리가

조금 멀어진 느낌이 들었다.


“김치 좀 더 주세요.”


뒤에서 수저 부딪히는 소리가 멎었다.

나는 김치를 한 번 더 담았다.

붉은 김치가 식판 위에 겹겹이 쌓였다.


잠깐,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김치 좀 더 주세요.”


“더 드릴 수가 없습니다.”


말은 공중에서 멈췄다.

그는 같은 말을 반복했다.


간호사가 다가와 그를 데려갔다.

그는 끌려가면서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날 오후,

잔반을 수거하다 그의 식판 앞에서 멈춰 섰다.


김치는 그대로였다.


젓가락 자국 하나 없이,

붉은 덩어리처럼 식어 있었다.


나는 짧게 웃고 식판을 치웠다.


병동을 나서려던 순간,

돌아서기 전부터 알 수 있었다.


이미 누군가

가까이 와 있었다는 걸.


그는 바로 뒤에 서 있었다.

처음 보았을 때와 다르지 않은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같은 억양으로 말했다.


“김치 좀 더 주세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몸 어딘가가 벌어져

서늘한 바람이 새어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수술 자국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닫히지 않았던 곳인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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