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산되지 않는 하루 (가을)

― 차라리 울어버렸다면

by 김성훈


아이와 하루를 보내고 나면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남는다.


울음의 이유도,

웃음의 근거도 아닌 것들.


하루의 끝단에

가만히 고여 있는 찌꺼기.


아이를 재우고 난 거실에는

낮의 잔해들이 흩어져 있다.


뒤집힌 그림책,

씹다 만 과자,

짝을 잃은 작은 양말.


양말 하나를 집어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는다.


치우면 그만인 것들인데,

나는 가끔 그것들을 오래 바라본다.


그날,

나는 아이에게 이유 없는 짜증을 냈다.


아이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잠시 멍하니 나를 올려다보더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제 인형을 챙겼다.


차라리 울어버렸다면

정산이 빨랐을 텐데.


그날 저녁,

아이 밥그릇에 붙은 밥풀을

몇 번이나 떼어냈다.


물을 묻혀도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뱉은 말은

허공에서 흩어졌지만,


아이가 남긴 그 짧은 침묵은

지워지지 않는 잔여물이 되었다.


가을은

그런 것들을 다시 보게 만드는 계절이다.


끝난 줄 알았는데

끝나지 않은 감정들.


웃음으로 넘겼다고 믿었지만

여전히 손끝에 걸리는 것들.


나는 이 잔여물들이

아이에게 닿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그것들을 완전히 치우는 일에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창밖의 나무는

조금씩 비어간다.


잎은 이유 없이 떨어지고,

바닥에는

어제와 다른 얼룩이 생긴다.


모든 흔적이

의미를 가질 필요는 없다.


다만,

남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사람을 지치게 하는 것들이 있다.


이제 나는 덜 말하기로 한다.


대신

남겨진 것들을 오래 바라본다.


아이의 생에 닿지 못하고

내 안으로 굴러 들어온 것들.


그리고

아마 끝내 정산되지 않을

내 몫의 부채들.


가을은

무언가를 잃는 계절이 아니다.


더 이상 지울 수 없는 것들이

조용히

바닥을 드러내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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