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우 이은주 Feb 21. 2024

봄이 온다고 셀레는 지천명

54살이 되었다.

원하지도 바라지도 않던 폐경은 소리없이 찾아와 밤이면 잠못 드는 불면의 밤으로 낮이면 사람앞에 서기도 민망할 정도로 땀이 났다가 식었다가를 반복한지도 벌써 4달째. 처음엔 무섭고 두렵기도 했다. 

산부인과 병원을 찾아가 약처방을 받고 잠시 멈칫거리며 참아 볼까 하고 그대로 폐경기를 맞이하며

대신 부채를 곁에 두었다. 열이 오르고 땀이 날때 그 잠시 잠깐 스쳐가는 3분 정도의 시간을 즐기기로 했다.

강의를 하면서 수강자들에게 민망할것 같아 한겨울에 반팔셔츠를 두벌이나 샀다. 암워머로 추울때 팔을 가리고 순식간에 식은땀이 나는 찰나의 시간에는 암워머를 눈치 채지 않게 슬쩍 벗어 놓으며 두어달을 견디다 보니 이것 또한 즐길만한 한열왕래인것이다. 

겨울이 가니 얼어 붙은 동토에도 새싹이 돋고 언 땅에도 꽃이 올라 온다. 지난 초겨울 그 추운날 이곳 마을 수로 공사를 한다고 잘 자라던 몇십년은 족히 된 듯한 매실나무를 포크래인으로 파서 옆 언덕베기에 눞혀 놓았다. 워낙 험한 수로길 옆이라 엄두도 못내고 그저 나무가 말라 죽으면 뚝뚝 가지를 자르고 잘라 처리할 요량이었나 보다. 며칠 전 매일 아침 가던 산책길인데 그 누운 매실나무에 히끗히끗 꽃망울이 보인다.

아! 생명은 그렇게 허옇게 뿌리를 드러내고 추운 겨울을 난 누운 나뭇가지에서도 꽃으로 피어나고 있었다.

에처러운 마음에 옮겨다 마당가에 심을까 생각도 했건만 옮길 수 있는 여력이 내게는 없음이 안타깝다. 

피지도 않은 꽃망울이 더 많은 가지 몇개를 꺽어와 차실에 꽃아 두었더니 금새 큼직큼직 꽃으로 피어 난다. 따뜻한 히터 바람이 겨우내 꽁꽁 얼었던 가지 끝에 햇살처럼 파고 들었나 보다. 기다렸다는듯 이내 차실 안을 꽃 향기로 가득 채운다.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며 차실을 찾아 온 손님들 마다 한 마디씩 꽃인사를 건네며 미소를 짓는다. 꽃 몇송이에 차실안은 금새 사람향 가득 넘치고 겨우내 그저 멋적던 사이에서도 화두가 꽃으로 떠 올라 가슴을 열어주니 어느새 너나 없이 봄이야기에 바쁘다. 

화무십일홍 며칠 가지 못한 꽃을 치우던날 햇살이 따사롭고 바람마저 감미로와 그런지 마당 한켠에 치운 나뭇가지로 벌들이 날아 들었다. 이제 벌들 꽃향에 취해 마당가를 빙빙 돌며 날아 다닌다. 꽃 몇송이가 며칠 내내 사람의 가슴도 흔들더니 벌의 더듬이에도 날아 들어 꽃 향에 취한듯 춤을 춘다 .


많은 생각이 엎치락 뒤치락 거리며 중년을 넘어 간다. 젊어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사람다움의 삶

노사연의 노랫 구절이었던가. 늙어 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어떤 일에도 예전 같지 않음이 느껴진다. 불같은 가슴을 못이겨 마구 솥아내며 상대의 가슴에 상처주는 말도 서슴없이 했던 불혹의 세월도 지천명에 바라보니 별거 아닌 일이다. 그 뭣이라고 헐헐헐 웃지는 못할지언정 칼날 같은 말은 속으로 삼켜내며 겨울 동장군 서슬퍼런 시린말도 이젠 따뜻하게 감싸며 그대에게 전한다.


이제나 

저제나

언제라도 그대가 온다면

분분이 휘날리는 꽃잎처럼 말하리라.

이제는 우리 좀 느긋하게 세상을 바라보자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