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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

내 평생 목욕탕 버프, 우리 엄마

by 김씨네이야기

나의 지난 글을 보면 너무 티가 나겠지만, 나는 언제나 YES MAN 인 우리 아빠 쟁이였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언제나 무서운 사람, NO 밖에 못하는 사람, 얘기해 봤자 좋은 소리 못 듣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멀게만 느껴졌던 엄마와 나와의 거리는 차츰차츰 돈독한 모녀의 관계로 이어져 나가고 있다. 보통 딸들은 엄마의 습관, 엄마의 옷차림, 엄마의 분위기를 많이 따라가기 마련이다. 우리 남편이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 왜 네가 편한 옷을 좋아하는지 알겠다며, 말투가 그냥 장모님이랑 똑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부정하고 싶어도 어쩔 수 없다. 난 엄마의 딸이니까!


엄마는 아주 어릴 적부터 나를 목욕탕 문화에 접하게 해 주셨다. 내 기억에는 거의 1주일에 한 번씩은 주말이 되면 이른 아침 나와 함께 목욕바구니를 챙겨 집 앞 목욕탕으로 향했다. 단 한 번도 목욕탕에 가는 게 싫었던 적이 없었고, 놀다 보면 구운 계란을 사가지고 와 엄마는 1개 나는 2개를 항상 먹게 했었다. 목욕탕 문화에 빠르게 접했던 나는 갈 때마다 짐이 늘었었다. 갖고 놀 인형들과, 목욕탕 친구들과 함께 나눠 먹을 요구르트까지.. 지금 I가 되었지만 파워 E였던 나는 갈 때마다 목욕탕 버프들을 만들었다. 단! 즐겁게 노는 시간은 하루였고, 또 쿨하게 헤어지며 '다음에 또 놀자'라는 말을 남겼지만, 그 이후 다시 만나 두 번째로 함께 놀았던 친구는 없었던 것 같다. 성인이 된 후 자취를 시작한 후에는 엄마에게 물려받은 목욕탕 문화를 나는 혼자서 이어 나가는 중이다. 나의 목욕바구니는 그때와 지금이나 여전하지만 바뀐 점이 있다면, 그 어느 누구에 말을 걸지 않고 조용히 때를 밀고 온다는 것, 등을 시원하게 밀지 못하고 오는 것! 아직도 나처럼 딸과 함께 오는 가족들이 많은 걸 볼 때마다 엄마와 또다시 함께와 등까지 밀고 가는 그날을 상상하곤 한다. 지금 저들의 시간이 너무나도 소중하다는 것을 나는 오지랖퍼가 되어 꼭 말해주고 싶다. 아주 가끔 엄마와 목욕탕을 갈 때면 우리 엄마는 '이래서 딸이 있어야 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나 역시도 엄마와의 짧은 1시간 반 목욕하는 시간이 가장 힐링이 되는 시간인 것을 우리 엄마는 알까. 내가 그리운 만큼 우리 엄마는 얼마나 더 그 시간들이 그립고 간절할지, 어릴 적 습관적으로 갔던 우리의 추억들이 이제는 너무나도 소중한 시간이 되어 버렸다.


올해 환갑을 맞이하는 우리 엄마, 우리 가족은 인도네시아가 그리울 엄마아빠를 위해 발리 여행을 작년부터 준비했다. 코로나 중 맞이한 아빠의 환갑은 한국에서 소소하게 온 가족이 모여 보냈지만, 늘 남의 이벤트를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준비했던 엄마이기에, 해외여행을 꼭 함께 하고 싶었다. 나는 슈퍼 J 이기에, 공항에서 발리로 떠나는 그 순간부터, 돌아오는 날까지의 계획을 엑셀파일로 늘 정리하고 떠난다. 그 파일을 부모님께 공유했을 때, 엄마는 나에게 장문의 카톡을 보냈다. '너의 준비성과 늘 미리 계획하는 습관들은 아빠를 참 많이 닮았구나. 다만 이런 것들이 너에게 스트레스가 되지는 않을지 너무 많은 것들을 걱정하고 준비해야 하는 성격이 엄마는 많이 걱정이 되는구나. 엄마아빠에게도 그리고 시댁에도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엄마의 카톡을 확인한 후 내 자리에 엎드려 눈물을 흘렸다. 말하지 않아도 나를 너무나도 잘 아는 우리 엄마는 나의 습관들로 인해 혹여 내가 아프지는 않을지, 그렇게 카톡을 통해 마음을 전했다. 며칠 안 남은 발리 여행이 벌써부터 아쉽고, 너무나도 빨리 지나갈까 겁이 난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나의 보물, 나의 부모님 그리고 우리 남편과 함께하는 짧은 시간이 엄마에게 더할 나위 없는 행복한 시간으로 다가가기를 오늘도 기도해 본다.


Dear Mom,

엄마 60년이 다되도록 부족함 없이 오빠와 나를 키워줘서 늘 고맙고 미안합니다. 한국에서 함께하는 이 시간들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행복한 시간들인데, 혹여나 엄마아빠가 괜히 돌아온 건 아닌지 후회할까 가끔 걱정이 됩니다. 이곳에서의 삶이 부디 더욱더 행복하기를, 그리고 더 많은 추억을 쌓기 위해 내가 노력하는 만큼, 엄마 아빠도 건강 관리를 위해 최선을 다해주었으면 합니다. 나를 위해, 우리 가족을 위한 엄마의 희생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기에 나도 나의 주어진 삶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볼게요. 나의 평생 목욕탕 버프, 우리 엄마 오늘도 내일도 앞으로도 엄마를 제일 많이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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