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얻은 작지만 단단한 삶의 원칙

by 제이

한국을 떠나 처음 해외생활을 한 곳은 독일이었다. 벌써 15년 전의 일이다.
그 당시에는 아이폰도 없었고, 지금처럼 정보가 풍부하지 않아 모든 것이 낯설었다.
지금이라면 검색 한 번으로 해결할 일들도, 그때는 직접 부딪혀 보거나 주변에 묻고 또 물어가며 방법을 찾아야 했다.
시간도 오래 걸렸고, 에너지도 많이 소모되었다.

언어의 장벽과 흐린 날씨 역시 나를 유난히 힘들게 했다.


그럼에도 익숙하지 않은 환경과 매일 마주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삶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씩 달라졌다.
돌아보면 독일에서 배운 세 가지 작은 원칙이 지금의 나를 만드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첫째, 쉬는 시간을 죄책감 없이 즐기는 태도

독일에서는 휴가가 권리가 아니라 기본값이다.
많은 회사가 한 달에 2~3일씩 ‘의도적으로 쉬는 날’을 갖도록 장려한다.


정착한 지 얼마 안 되었던 어느 날, 남편이 하루 휴가를 냈다.
아이도 어리고, 나 혼자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아 도와주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날 아침, 한국 회사 문화에 익숙했던 그는 괜한 죄책감에 결국 회사로 향하고 말았다.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다시 돌아온 남편은 상사가 했던 말을 전해줬다.

“휴가인데 왜 나왔습니까?
가족을 챙기려고 휴가를 냈다면, 지금 회사에 있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적잖이 놀랐다.
이런 상사가 존재한다는 사실에도 놀랐고, 그들의 삶의 태도가 얼마나 합리적이며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인지 깨달 앗다.
휴식은 죄책감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일부라는 것을 그때 처음 배웠다.


둘째, 검소함과 실용적 소비 습관

독일 사람들은 필요 없는 소비를 본능적으로 경계한다.
‘싸고 오래 못 쓰는 것’보다 ‘비싸더라도 오래 가는 것’을 선택하고, 전기와 물을 절약하는 것은 기본이다.

장을 보기 전에는 일주일치 메뉴를 계획하고 리스트를 만든다.
대부분 동네 마트에 바퀴 달린 장바구니를 끌고 가 그날 먹을 것만 산다.
집 냉장고가 한국이나 미국보다 훨씬 작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접시에 남은 소스를 빵으로 깨끗하게 닦아 먹는 모습도 흔한 풍경이다.

이 작은 습관 속에서 검소함이란 짠돌이 같은 ‘절약’이 아니라, 삶에서 무엇이 정말 필요한지 판단하는 능력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셋째, 시간을 철저히 지키고 계획하는 태도

독일에서는 “독일인의 시간은 따로 있다”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시간 엄수가 강하다.
다른 나라에서는 10~20분쯤 늦는 것이 흔하지만, 독일에선 예외가 없다.

초반에는 약속에 늦을까 항상 긴장했고, 그로 인해 독일 생활이 더 피곤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모두가 시간을 지키니 회의도, 수업도, 약속도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흘러갔다.

그 일관성을 직접 경험하며 나 역시 일정 관리와 계획을 더 엄격히 하게 되었고 시간을 대하는 태도도 한층 성숙해졌다.


독일에서의 5년은 단순한 ‘문화 충격의 연속’이 아니라,
일과 휴식, 소비와 시간 관리를 바라보는 삶의 기준을 바꿔 시간이었다.

그 배움 덕분에 지금의 나는
바쁜 일상 속에서도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더 소중히 여기고 소비 앞에서도 나만의 기준을 잃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독일은 나에게 참 고마운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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