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을 싸지 않는 아침이 이렇게 허전할 줄은

by 제이

Bob Odenkirk이라는 미국의 배우이자 코미디언이 있다.
그가 최근 한 팟캐스트에서 “가장 부러운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을 받자 이렇게 답했다.

“Anybody who’s still got little kids at home growing up.”
즉, 집에 아직 어린아이들이 자라고 있는 사람들.

그에게 그 시절은
매일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분명했고,
가족 안에서의 역할이 완벽히 정해져 있었으며,
존재 이유가 설명 없이도 눈앞에 놓여 있던 시간이었다.
그래서 그는 “아이들이 어릴 때”를 인생에서 가장 충만했던 시기로 기억한다고 했다.


그는 이렇게도 말했다.

“When they grow up and leave, you suddenly have to ask yourself who you are again.”
— 아이들이 다 커서 떠나면, 갑자기 ‘나는 누구인가’를 다시 묻게 된다.

그 말에 담긴 그리움, 아빠로서 최선을 다했던 마음,
그리고 시간이 지나버린 한 시절을 향한 애틋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 인터뷰를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나는 이 이야기에서 눈을 떼지 못했을까?

아마도 지금의 나와 너무 닮아 있어서일 것이다.


“자, 이건 아빠 도시락, 이건 아들 도시락. 어서 차에 타. 이제 학교로 출발하자.”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미국에 와서,
몇 달 전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아침마다 내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이다.


급식을 주는 한국과 달리,
이곳에서는 엄마가 도시락을 준비하는 게 일상이다.
남편은 회의 시간이 애매해 종종 끼니를 거르곤 했고,
그때부터는 아들 도시락을 챙길 때
‘인심 쓰듯’ 남편 도시락도 함께 싸게 되었다.


그렇게 매일의 하루가 도시락으로 시작되던 나의 아침.
하지만 아들이 대학으로 떠난 지금,
이제 그 풍경은 사뭇 달라졌다.

아직까지도 아침이 되면 도시락을 싸야 할 것처럼 자동으로 몸이 움직인다.


도시락을 싸지 않아도 되는 아침이 이렇게 허전할 줄은 몰랐다.

그건 일이 줄어서가 아니라, 내가 필요했던 자리가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아들이 집을 떠난 후 나는 나름 새로운 삶을 잘 살아보려 노력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찾아온 여유를 즐기고,
그동안 미뤄왔던 일들을 하나씩 정리하며
“이제 나만의 시간을 보내도 되겠지”라고 스스로를 다독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마음 한 켠에는
텅 빈 방처럼 숨겨지지 않는 허전함이 늘 남아 있었다.


그러던 중 Bob Odenkirk의 인터뷰를 보고 나니
마음속에 고이 접어두었던 한 감정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아, 나는 삶의 방향과 목적을 잠시 잃었던 거구나.

지난 18년 동안 나는 분명한 목표를 품고 살았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고,
행복한 가정을 만들고 싶었고,
아이를 중심에 두고 매일의 선택과 행동을 이어왔다.
그 시간들은 분주했지만, 동시에 어떤 질문도 필요 없었다.
사는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고민할 틈조차 없을 만큼 선명한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아이는 떠났고
나는 오랜만에 누리는 자유 속에서
다시 나라는 사람과 마주하고 있다.
엄마로서의 역할 뒤에 숨어 있던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천천히 다시 묻는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결국 부모라는 역할도 한 시절의 계절일 뿐,
그 계절이 지나가면
우리는 다시 ‘나’로 돌아온다.


아이를 키우던 시절이
가장 충만했다는 그의 말이
이제야 이해된다.
그때의 나는 분명히 필요했고,
분명한 사람이었으니까.


지금의 허전함은
무언가를 잃어서가 아니라
다시 나를 써 내려가야 할
빈 페이지가 생겼다는 신호인지도 모른다.

아이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언젠가는 이 페이지 앞에 서게 된다.

아무도 대신 써주지 않는,

오롯이 ‘나’의 이름으로 시작되는 페이지 앞에.


같은 페이지 앞에 서 있는 모든 분들이

각자의 속도로,

멋진 첫 줄을 시작하길 응원합니다.



이전 11화편지는 그렇게 도착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