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을 맞아 간만에 집에 온 아들을 위해
그동안 먹고 싶다던 음식을 하느라
주방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엄마 아빠, 없는 동안 생일도 못 챙겨서 준비했어요.”
아들은 작은 봉투 두 개를
남편과 나에게 각각 건넸다.
내 봉투 안에는 다이어리와 향초가,
남편의 봉투 안에는
그 지역에서만 살 수 있다는 커피 원두가 들어 있었다.
내가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걸 기억해
다이어리를 골랐고,
아침마다 커피를 내리는 아빠를 떠올리며
원두를 샀다고 했다.
고마웠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 내 손에 남아 있던 건
선물이 아니라,
접힌 종이 한 장이었다.
엄마와 아빠에게
각자 다른 말로 적어 내려간 손 편지.
같은 사랑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아이는 그 사랑을
같은 방식으로 받아 적고 있지는 않았다.
엄마에게는
늘 곁에 있어준 시간에 대해,
아빠에게는
삶의 태도와 진로에 대해 건넸던
현실적인 조언들에 대해
고마움을 적어 두었다.
그 편지를 읽다 문득,
몇 년 전부터 내가 엄마에게 해오던 일이 떠올랐다.
생신이 다가올 때마다
나는 다른 선물 대신 손 편지를 써왔다.
어떤 선물보다도
그걸 가장 오래 간직하신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늘 말했다.
“이건 나중에 혼자 읽어도 다시 마음이 따뜻해진다”라고.
나는 그저 그렇게 하고 있었을 뿐인데,
아이에게는 그것이
‘주는 방식’으로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무언가를 준다는 건
물건을 고르는 일이 아니라,
마음을 어떻게 전할지를
고민하는 일이라는 걸.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반복해서 본 방식은
어느새 몸에 남는다.
그래서 그 손 편지는
어느 날 갑자기 생긴 아이의 표현이라기보다,
시간을 건너 전해진 태도에 가까웠다.
할머니가 엄마에게,
엄마가 나에게,
그리고 내가 아이에게
말 대신 보여주었던 사랑의 방식.
아이에게 남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잘 설명했는지가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곁에 있었는지였다.
결과보다 과정을 말하던
나의 말들보다,
그 말을 말없이 살아낸 시간들이
아이의 편지 속에
먼저 도착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