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서 살다 보면 연말에
한국에 있는 부모나 형제와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해가 더 많다.
시대는 좋아져 페이스타임으로 얼굴은 볼 수 있지만,
함께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는 시간까지 건너오지는 않는다.
그럴 때면 다른 외국 친구들이 부럽다.
부모를 만나러 다른 주로 떠나거나,
식구들이 모두 한 집에 모여 연말을 보내는 모습들.
그 풍경 앞에서
우리 가족만 떨어져 있는 듯한 적적함이 밀려온다.
그 공백을 해결하는 우리만의 방식은 여행이다.
여행을 떠나면
늘 반복되던 나의 생활 반경에서 벗어나게 된다.
익숙한 마트, 늘 가던 길,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로부터 멀어진다.
그 순간 나는 완벽한 타인이 된다.
체크인 카운터에서 내 이름이 불릴 때,
그 이름은 나의 역할을 부르지 않는다.
그저 여권 속 한 사람일 뿐이다.
그 순간이 나는 이상하게도 가장 편안해진다.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곳에 도착했을 때의 해방감이 있다.
그것은 가면을 쓰는 자유가 아니라,
기대에서 벗어나는 편안함에 가깝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상태.
그렇게 타인이 되고 나면
이상하게도 나는 나에게 더 가까워진다.
무엇을 좋아하고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어떻게 반응하고
무엇에 쉽게 지치는 사람인지가 또렷해진다.
연말에 가족이 모이지 못하는 외로움은
시간이 지나도 완전히 익숙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그 빈자리를
우리만의 방식으로 채우기로 했다.
낯선 도시에서의 저녁 식사,
새로운 도시를 알아가며 바쁘게 흘러가는 하루,
그리고 함께 있다는 감각.
여행은 도망이 아니라
잠시 내려놓는 시간이다.
그 덕분에 다시 돌아오는 일상이
조금 덜 무겁게 느껴진다.
올해 연말도 우리는 여행을 간다.
다른 가족들처럼 한 식탁에 모이지는 못하지만,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견디는 대신
움직이는 쪽을 선택했다.
우리 방식으로
서로의 곁에 머무는 연말을 보내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