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트 위의 수업

아이의 엄마가 아닌 나로 서는 시간

by 제이

외국에서 직장을 다니지 않고 아이를 키우는 전업주부에게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는 많지 않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학교 행사나 자원봉사 덕분에 부모들끼리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가 중학교, 고등학교로 올라가면서

그 연결의 끈은 점점 희미해졌다.


그 무렵, 우연히 시작한 테니스는 나에게 또 다른 세상을 열어주었다.

아이의 ‘엄마’가 아니라, 나 자신으로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 같은 취미로 이어진 우리는 코트 위에서 나이와 직업, 국적을 넘어 조금씩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처음 코트에 나갔을 때는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웃었지만, 정작 하는 일은 공을 주고받는 것뿐이었다.

그저 “좋은 샷이에요.”라는 말로만 이어지는 관계.


그런데 신기하게도, 시간이 지나면서 공 사이로 이야기가 오가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갱년기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누군가는 오랫동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고,

또 누군가는 마음속 불안을 달래기 위해 라켓을 잡았다.


각자의 사연은 달랐지만, 결국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인생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었다.

그래서인지 테니스 코트는 단순한 운동장이 아니라

우리의 작은 미팅룸 같았다.

회의 대신 웃음이 있고, 결론 대신 위로가 있는 공간.


자주 함께 연습하는 두 분은 나와 같은 학부모다.

테니스는 우리에게 ‘엄마’가 아닌 ‘나’로 존재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공간이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난 뒤,

오전의 짧은 시간 동안만 느낄 수 있는 해방감.

그 시간은 잠시지만, 우리에겐 하루 중 가장 솔직한 시간이었다.

전업맘인 우리에게 코트장은 마치 ‘오전학교’ 같았다.


라켓을 들고 땀을 흘리는 동안, 우리는 다시 학생이자 친구로 돌아갔다.

그리고 운동 후 쌓인 좋은 에너지와 기분으로

오후에는 우리의 진짜 프로젝트 — ‘아이 챙기기’ — 가 시작된다.


엔지니어인 에드는 철저한 분석형 인간이다.

같이 랠리를 하다 공이 아웃되면, 그는 곧바로 원인을 찾아 나선다.

각도, 바람, 스트링 텐션, 스윙 속도까지 — 모든 요소를 계산한다.

나는 그냥 감으로 테니스를 치지만,

그는 언제나 데이터를 믿는다. 진정한 엔지니어다.


문제는, 그가 실수를 분석하느라

가끔은 그 실수를 웃어넘길 타이밍을 놓친다는 것.

코트 위에서도 그는 여전히 회의 중이다.


심리 상담가인 안젤리카는 완전히 다르다.

공을 칠 때에도, 대화를 나눌 때에도 배려심이 묻어난다.

그 앞에서는 나도 모르게 무장 해제된다.

내 감정을 부끄러움 없이 표현하게 만들어주는 친구.


그녀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정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대신 적절한 질문을 던져 나 스스로 답을 찾게 도와준다.

테니스 코트 위에서도, 카페에서 수다를 떨 때도 마찬가지다.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제시는 나와 비슷한 시기에 테니스를 시작한 친구다.

실력을 높이기 위해 늘 최선을 다하는 열정 파다.

그만큼 승부욕도 강해서, 경기를 할 때는 항상 승패에 신경을 쓴다.

일주일에 네댓 번씩 코트에서 시간을 보내는 그녀를 보면,

무언가에 몰두할 때 100% 열정을 쏟는 모습이 부럽기도 하고, 가끔은 그렇게 몰입하다가 부상이 오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그리고 나는, 그들 사이에서 공을 주고받으며 하나를 깨닫는다.

테니스 코트 위의 사람들은 서로 다르고, 살아온 배경도 다르지만 각자 최선을 다하며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방법이 있다.


공을 주고받는 동안, 우리는 서로의 리듬을 맞추고,

서로의 삶을 잠시 엿보며 이해하게 된다.

코트 위의 하루는, 그 자체로 작은 인생 수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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