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날에 다시 떠올리는 시어머니

by 제이

며칠 뒤면 시어머니 제사다.
제삿날이 가까워질수록 이상하게 어머니 생각이 더 난다.
살아 계실 때는 미처 몰랐던 마음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또렷해진다.


남편은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그 후 어머니는 혼자 두 아들을 키우셨다.
결혼을 준비하며 ‘홀어머니’라는 말에
막연한 선입견과 두려움을 품었던 것도 사실이다.


결혼 첫해, 어머니는 나름의 기강을 세우려 하셨던 것 같다.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들이 많았고,
그 시간은 생각보다 나를 힘들게 했다.
지방에 사신다는 이유로 한 번 오시면
2~3주씩 머무르셨는데,
신혼집에서 시어머니와 몇 주를 함께 보내는 일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버거웠다.


초인종 대신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오시던 순간,
주방 그릇의 자리가 하루아침에 바뀌어 있던 날들.
한 달에 한 번씩 먼 지방에서 보내주시던 먹거리들.
무엇을 보낼지, 언제 도착하는지,
받았는지, 맛은 어땠는지 묻는 연락들.
사랑이라는 이름의 그 모든 관심이
그때의 나에겐 숨이 막힐 만큼 무거웠다.


그렇게 오 년쯤 감정을 쌓아 두다
끝내 어머니 앞에서 펑펑 울고 말았다.
어머니는 내 모든 점이 못마땅해 보였고,
함께 있으면 모든 행동이 조심스러워졌으며,
항상 내가 무언가를 잘못했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는 점까지.
힘들었던 마음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털어놓았다.
이대로라면 이혼까지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는 고백도 했다.


그날 처음 알았다.
시어머니와의 갈등이
가정을 실제로 흔들 수 있다는 걸.


우리는 세 시간을 이야기했다.
어머니는 내 말을 끝까지 들으셨고
“이렇게까지 힘들 줄은 몰랐다”라고 하셨다.
한 번의 대화로 모든 것이 바뀌지는 않았지만,
어머니는 조금씩 달라지려 노력해 주셨고
나 역시 마음을 열어보려 애썼다.


어머니를 진심으로 알아가며
그분이 가슴에 사랑이 가득한 분이라는 걸 느끼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절의 나는 그 사랑을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 세대의 방식과는 달랐을 뿐,
그 시대의 어머니가 자식에게 줄 수 있었던
최선의 사랑이었음을
아이를 키우며 조금씩 깨닫는다.


아직은 아들이 결혼과는 거리가 있는 나이지만,
언젠가 인생의 동반자를 데려온다면
나 역시 나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건네고 싶다.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연결되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곁에 서는 어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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