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정을 인정받은 아이는 오래 버틴다

by 제이

“실기 시험 보고 왔는데, 잘 못했나 봐. 아이가 너무 울어.”
“고생한 건 아는데… 이럴 거면 과외비를 그렇게 썼나 싶어.”


언니의 메시지를 읽고 한동안 답을 보내지 못했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나에게 첫 조카는 조금 특별하다.
회사 일이 바빴던 싱글 시절에도 퇴근길에 일부러 우회해 언니 집에 들렀고,
피곤한 날에도 한두 시간은 얼굴을 보고 왔다.
숙제를 하다 졸던 모습,
내가 오면 괜히 더 떠들던 얼굴,
잘했다고 하면 눈을 반짝이던 표정까지.
나는 그 아이의 시간을 꽤 많이 알고 있다.


그 아이가 지금,
‘입시’라는 이름의 문 앞에서
주저앉아 울고 있다는 사실이
마치 내 일처럼 마음을 무겁게 했다.


바로 1년 전, 나 역시 그 시간을 통과했다.
그래서 언니의 마음도 이해했고,
무엇보다 제일 속상한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고 있었다.
부모보다 먼저,
아이 자신일 것이다.


“우리 애는 맨날 놀아. 오락만 해.”


지난 몇 년간 아이의 고등학교 시절 동안
부모들과 대화할 때
내가 가장 듣기 싫어했던 말이다.


이 말은
누가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
기대에 못 미친 성적 앞에서 나온 푸념일 수도 있고,
적은 노력으로도 잘하는 아이를 둔 부모의
은근한 자랑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이 말을 유독 불편해했던 이유는,
그 안에서 과정이 통째로 지워지기 때문이다.


결과만으로 아이를 판단하는 말은,
때로는
아직 남아 있는 노력의 의지마저
함께 꺾어 버린다.


사람의 능력은 모두 다르다.
같은 시간을 들여도,
같은 노력을 해도
결과가 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끝까지 해보려 했던 태도만큼은
결과와 상관없이
존중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특히 아이의 성장 과정에서
그 과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은
부모다.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그래도 너, 정말 열심히 했어.”
“그 시간, 헛되지 않았어.”

그 말 한마디가
다음에 다시 일어날 힘이 된다.


언니와 조카 역시
입시라는 긴 터널 속에서
그 시점에 할 수 있는 모든 선택을 했다.


많은 비용이 들었고,
결과가 기대에 못 미칠 수도 있다.


하지만 부모로서 그때 내린 결정도,
아이로서 끝까지 버텨낸 태도도
모두 그들의 최선이었다.


입시는 숫자로 끝난다.
하지만 아이의 마음에 남는 것은
숫자가 아니다.


누군가 내 노력을 보고 있었는지,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날 자리가 있었는지다.


결과는 언젠가 지나가지만,
과정을 인정받은 기억은
아이를 오래 버티게 한다.


지금 아이에게 필요한 건
더 나은 결과가 아니라,

지금까지의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확신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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