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미국으로 옮겨왔을 때,
아들은 초등학교 2학년으로 학교생활을 시작했다.
미국에 와서 아이를 키우며,
나는 ‘잘 자란다’는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놀고 있는 아이가 가장 많이 자라고 있다는 걸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때 나의 눈을 가장 먼저 끈 건
아이들의 방과 후 액티비티였다.
방과 후라 하면
수학 학원, 논술, 과학 수업부터 떠올렸던 나의 예상과 달리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면
각자가 고른 ‘좋아하는 것’으로 하루를 이어가고 있었다.
축구, 승마, 미술, 피아노, 농구, 테니스.
아이들은 공부보다 먼저,
몸과 감정으로 세상을 배우고 있었다.
미국의 초등교육은
지식을 쌓는 일보다
감정, 창의성, 사회성, 협력, 리더십을
‘사람의 기본기’로 여긴다.
그래서 아이들은 스스로 선택하고,
해보고, 실패하면서 배운다.
부모의 역할은
방향을 정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그 선택을 믿고 기다려주는 사람이 된다.
아들은 피아노와 축구를 10년 넘게 이어왔다.
처음엔 그저 재미였다.
하지만 시간이 쌓일수록
그 안에는 어려움도 함께 자랐다.
피아노는 운동처럼
실력이 계단식으로 오른다.
아무리 연습해도 늘지 않는
‘평지의 시간’이 반드시 찾아온다.
어린 아이에게 그 시간은 가장 견디기 힘들다.
그럼에도 몇 번의 평지를 넘으며
아들은 성취의 기쁨보다
인내의 리듬을 먼저 몸에 익혔다.
축구에서는 또 다른 배움이 있었다.
아이들은 처음엔 골 넣는 법을 배우지만
시간이 지나면
공을 빼앗긴 뒤 다시 달려가는 법을 배운다.
패스를 주고받으며 협력을 익히고,
감정을 조절하고,
때로는 팀을 위해 자리를 비우는 법을 배운다.
축구장은 작은 사회였다.
규칙이 있고,
팀이 있고,
내가 주인공이 아닌 순간도 존재하는 곳.
그리고 나는
아이를 키우며 함께 자랐다.
성적이 아니라 과정에서 피어나는 성장,
경쟁보다 협력에서 오는 기쁨,
정답보다 진심 어린 시도가
더 오래 남는다는 것을 배웠다.
아들이 피아노와 축구를 통해
자신만의 리듬을 찾아갔다면,
나는 그 옆에서
기다림과 신뢰의 리듬을 배웠다.
아이를 앞서가려 하지 않는 법을,
뒤에서 지켜보는 용기를 배웠다.
인생의 배움도 어쩌면 학교와 닮아 있다.
기록으로 남지 않아도,
점수로 증명되지 않아도,
과정 속에 남는 흔적이
결국, 한 사람의 태도가 된다.